연출가 일기 48

독 / 2013년 ~ 2014년 즈음

by Pia Jong Seok Lee

최근 들어 나에게 가장 큰 근심은, 혼란이다, 정체성에. 무대 예술가로서, 연출가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내가 쌓고 있는 삶과 작품에 힘들었지만 만족했고 그 나아감에 기뻐했다. 돈을 얼마나 벌든, 작품의 규모가 어떠하든,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고, 그저 새로운 작품과 더욱 마음을 내어놓고 싶은 이야기들에만 눈을 꽂았다.


그러는 사이, 틈을 노려 무언가 나를 찾아왔다. 아니 덮쳤다. 돈과 명예, 그것에 대한 욕심. 그리고 남과 비교.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들, 판도라의 상자가 맘 깊숙한 곳에서 열렸다. 그런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집중도 떨어졌다. 가족을 포함해 지키고 소중히 여겨왔던 모든 것들이 두 걸음 뒤로 밀렸다. 대신 그 자리엔 어떻게 하면, 얼마큼 하면, 언제쯤, 이런 질문들과 실행계획이 옅지만 무수한 가설들로 가득 앞섰다.


원인은 사소로웠다. 이미 인정하고 살았던 것들이었다. 배우들과 나의 개런티 차이. 그리고 영향력.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택한 것은 언어가 가진 소통의 한계성을, 음악을 통해, 정서적으로 공유로서 극복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경험으로부터 출발했다. 난 이 장르의 가치와 폭발적인 힘에 매료됐었고, 그 가치와 힘은 나를 지난 십여 년 살게 했던 추진력이었다.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 만들 때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스스로의 발전을 느꼈고, 그 발전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작품들을 경험하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고, 떳떳하며 이 장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시대를 공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안에 최선이 있었고, 그 안에 만족과 선한 주림이 공존했다.


배우들과의 개런티 차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스스로를 젊다 생각했고 그 젊음 속에 끊임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겄에 감사했다. 그런데 여기가 문제였다. 젊음과 끊임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엄습의 본질은 바로 여기다. 왜 내가 감사해야 하는가. 내가 왜 그 감사라는 명분으로 부당한 대우를 인내하고 감수해야 하는가. 하나의 작품이 성공하고, 그 작품으로 배우가 작은 세계이지만 스타가 되고, 그리고 나면 그들의 몸값은 눈에 띄게 오르고 변하는데, 왜 난 십 년 전과 지금의 모든 대접이 같은가. 내 몸값은 변하지 않고, 내 영향력도 변하지 않으며 그저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배우들은 더 많은 곳으로 뻗어갈 수 있는데, 그 뻗음이 시작되면 더 많은 힘을 가질 수 있는데, 난 뭔가. 더 나아가서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머릿속 가득한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과 인물들에 대한 기대들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내 세상을 너무 한정 짓고 살아왔구나. 그리고 이 안에 바라볼 가치가 없구나.


정말 속이 상했다. 아니 실은 지금도 정말 속이 상한다. 한 회에 백만 원, 삼백만 원, 오백만 원, 천만 원. 같은 기간 연습하고, 그만큼의 기간을 먼저 준비하고 계획하고, 그보다 오랜 기간 공연을 지키고 싶어 모니터하고 노트를 하는 나는 그들의 십 분의 일, 오분의 일, 삼분의 일을 받게 된다. 그리고는 나보고 선장이란다. 배는 큰데, 선장의 책임은 막중하고 무거운데, 선장의 급료는 선원들보다 적다. 선원들은 이 배를 잘 운항하면 더 큰 배로 갈 수 있고 더 큰 혜택과 복지가 기다리지만 선장은 이 배를 그저 수리하고 또 언제 이 배에서 내림을 당할지도 모르며 더 작은 배로 갈아타야 할지도, 아니면 운이 좋아 그걸 실력이라 칭찬해 주는 분위기에 휩쓸려 더 큰 배로 가게 되더라도 선장의 급료와 권한은 작은 배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책임과 의무, 그리고 능력에 대한 평가만 남아있다. 젠장.

대단한 자극을 받았고, 자극이 독이 되어 나를 삼켰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극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시스템의 문제이고 자본주의의 문제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시스템은 단번에 바꿀 수도 바뀔 수도 없음을 알고 있다. 대단히 속 상하지만, 내가 연출가로서, 예술가로서 생각과 남아있는 꿈들과 나의 작품들을 만들어 가려면 내 시스템과 내 방향이 조금은, 그리고 적극적으로, 과감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독은 내게 새로운 작품과 장르에 대한 도전 의식을 불처럼 일게 했고, 무언가를 더욱 쓰고, 무언가를 더욱 계획하도록 날 이끌고 있다. 의학의 처방이 그러하듯 독은, 적소에 정확히, 소량을 사용하면 약이 된다. 내게 찾아온 독이 일면 내게 우울과 패배의식, 다량의 음주와 스트레스, 고민, 질투, 시기, 미움, 고독, 대화의 단절, 깊고 검은 사색을 줬지만, 다른 면에서는 어떤 생명의 기운을 태동시켰다. 바라건대 내 안의 독을 통한 태동이 나와 사람들을 더욱 살리는 태동이 될 수 있도록, 그 태동이 선한 뜻에 기반한 태동이 되도록 마음과 몸을 이끌어 가야겠다. 그런데 아주 조금은 더 나쁜 독이 주고 이끄는 대로 내 마음을 두면 어떨까,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을 아직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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