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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 Jong Seok Lee May 23. 2022

연출가 일기 52

빛을 알기에 / 이길 수 없는 것

 12월이 흐른다. 참 추운 12월이 곁을 지난다. 하루의 삶이 흐를 때, 때때로 그 하루를 붙잡기 위해 애쓸 때가 있다. 하루가 담아낸 모든 것들이 소중하기에 다시는 그와 같은 하루를 만날 수 없을까 두려워, 흐른 시간을 애써 잡으려 노력하는 것, 그 노력이 기쁘지만 또 슬퍼 더운 날에도 그럴 때는 춥고, 추운 날에는 더 춥더라, 내게는. 올 한 해 참 많은 일들이 주위를 스쳤다. 어떤 일들은 그 앞에 담대히 맞섰고, 어떤 일들은 겁이나 움츠렸고, 또 어떤 일들은 모른 척 지나 보냈다. 12월이 흐르는데 독한 한기를 느끼는 것은, 부여잡고 싶은 순간들이 그만큼 많아서 아닐까.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참 많은 사람들이 스친다. 그 만남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없다. 길게는 여덟 달, 짧게는 두어 달을 함께 먹고 마시며, 가족보다 깊고 진한 시간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어느 한 날을 정점으로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이별을 한다. 일의 특성상 그 모든 만남과 헤어짐 앞에 담담해야 하는데, 아직 모질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매번 이별할 때면,  마음이 허전하고 아프다. 사람들과의 이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작품 자체와 헤어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보다 더 아프고 더 슬퍼 12월, 지금이 더 추운지 모르겠다. 열정과 기대감, 사랑으로 가득 찼던 어떤 공간에서의 시간들이 어느 한 날을 중심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 세웠던 무대도, 밤새 계획하고 애썼던 조명도, 몇 번을 다리고 빨았던 옷들도, 손에 쥔 먼지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만나 시작하는 다른 삶, 다른 작업, 다른 사랑으로의 새 시작.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직.  


잘 견뎌야지, 보냄도, 맞음도. 괜히 미련 떨며 잡아봐야 금방 잊을 모든 것들인데, 추억 팔며 살면 안 되잖아. 지금이 추억으로 박제되지 않도록, 작업자로서, 예술가로서, 그 삶이 익숙해지지 않아도 연결되고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 춥다, 그게. 이기지도 못하는 술, 버티고 마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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