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상상마루 대표 U로부터 연락이 왔다.<캣 조르바>를 내년에 베트남 국립청소년극장과 쇼케이스를 하려 하는데내년 9월 일정이 어떠냐.9월이면 학기가 시작돼서 가 있기 어렵다. 방학 동안 연습하고 학기 초에 공연하고 올 수 있으면 어떻게든 참여할 수 있겠다. 대표는(이하 프로듀서) 알겠다. 베트남과 협의해 보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캣 조르바>는 2015년에 상상마루 첫 작품으로 올렸던 작품이다. 2014년 여름 졸업한 학교의 행정조교 형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있는데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 한다,그래서 널 소개했다고 전화를 받았고, 그로부터 수일 뒤, 정말 어떤 사람이 전화해 이러이러한 일로 이러이러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한번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는, 가능성 있는 젊은 뮤지컬 연출가로서 한참 들떠있던 때라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잦았고 일 귀한 줄 모르고 교만하게 이래 저래 따지던 때다. 그래서 그 전화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가성비로 인해 의례 떠보는 전화겠거니 했다. 그래서 나도 별 마음을 두지 않았다.
수일 뒤, 그 프로듀서를 만나러 대학로 동숭교회 카페로 갔다.낯선 프로듀서는 날 만나 반갑게 인사했고, 자신은 원래 드라마 제작사에 있었는데뜻이 있어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보통은 그런 만남에서 프로듀서가 질문이 많고, 연출가는 답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그날은, 교만한 내가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왜 직장을 그만뒀느냐, 왜 회사를 만들었느냐, 그게 왜 하필 뮤지컬이냐, 대체 뭘 만들고 싶냐. 알고 보니 나보다 두 살 위인 프로듀서는 두 살 아래 동생 연출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고, 취조하듯 몰아가는 내 질문에 싫은 기색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가족극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솔직히, 우리 뮤지컬 시장에서 가족극은, 그때만 해도 말이 좋아 가족극이지 아동극이었다. 아동극이라 하면, 적은 예산, 경험이 부족한 배우들과 함께 하는 질 낮은 공연을 의미했고엄연히 시장과 관객이 달랐다. 물론 아동극에 뜻이 있어 완성도 높은, 참 아동극에 헌신하는 선배님들도 계셨지만, 대개의 아동극과 가족극은 작업자들에게 선입견을 갖게 하는데환경과 완성도 면에서 이견이 없었다.그래서 나는 그의 답변이 귀하지 않았다. 가족극을 만들고 싶다는 그에게 나는내 정직한 편견을 답했다. 보통의 가족극은 만들고 싶지 않다. 브로드웨이에서는 그러한 종류의 뮤지컬을 키즈 온니라고 하지 않고 키즈 프랜들리라고 하더라. 라이온킹도 위키드도 다 키즈 프렌들리로 구분된다. 키즈 프렌들리를 하고 싶은가, 키즈 온니를 하고 싶은가 되물었더니 그는키즈 프렌들리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하자.라고 말하고 꿈을 꾸며 회사를 설립한 초임 프로듀서의 첫 작품에 손을 잡았다.
말하자면 길다.
뮤지컬 시장에서 이름을 알렸던 2 창작자들, 3 창작자들을 비전제시와 때론 설득을 통해 모았고
누가 봐도 좋은 작품으로 초연을 올리고, 재연을 또 올리고, 지방 투어를 다니고, 우리 학교 재학생들과도 독립된 프로덕션을 만들어 보고 참 여러 일을 함께 겪었지만 작품의 퀄리티와 관계없이 시장단가가 맞지 않아 프로듀서는 아주 많은 고생을 했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국내 시장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 맘껏 해보자고 마음을 맞췄고실제로 가시적인 성과 직전까지 여러 번 도달했었다. 프로듀서와 그런 경험을 공유했었기에 베트남 작업 얘기를 했어도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았다.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뚝심 있게 계속 걸어갔고, 달마다 회의를 열었으며 제대로 된 속은 다 몰라도 도전과 응전, 그리고 응전을 넘은 공격을 진행하며 베트남 국립극장 및 국립 청소년극장과 일을 꾸미고 이뤘다.그렇게 작년 가을, 올해 봄을 거쳐 그가 꾸미고 이룬 일을 하기 위해나와 조연출, 안무가, 음악감독이 하노이로 왔다.
음악감독의 한국에서의 지방공연 일정 때문에이곳의 오디션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워낙은 워크샵이 시작되는 첫날 인 14일(월요일) 오전에 오디션을 치르고 캐스팅 확정을 이룬 후 본격적인 작업을 진행하려 했는데 음악감독의 한국 일정으로 인해 둘째 날 오전으로 오디션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첫날 오전은 내가 맡아 진행하고 오후는 안무가가 워크샵을 진행하기로 협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