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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빛날희 Jul 29. 2022

너와 나를 존중하는 그런 사람들끼리

2년 차 유치원 여름방학

60일 동안 글 한편을 쓰지 않는 나를 걱정해준 브런치 메시지를 보면서 그렇게 많던 글감이 다 어디 갔을까 하면서 이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모든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나의 글들은 유치원 교사하지 마세요라고 느낄 수 있는 불평불만이 가득하였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불편한 현장 분위기, 요구 많은 부모님, 악동 같은 유아들이 서로 맞물려 일은 많은데 알아주는 이 없는 외로운 직업이라는 걸 하소연하듯 줄줄이 쓴 글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2년 차 7개월, 2번째 여름방학을 맞이한 나는 지금 유치원 생활이 좋다.

신기하게 유치원 생활이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잠들기 싫었던 일요일 밤이 부드러워지고 혼자만 있고 싶다는 생각이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관심 없던 선생님들의 생각들에 관심이 생겼다. 

 2022학년도 우리 유치원에는 경력이 많은 선생님 한분과 초임인 선생님 두 분이 들어와 유치원 내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초임인 선생님들의 열정이 기존 선생님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고 하하 호호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해주는 신입 선생님들의 마음씨 덕분에 어색할 수 있는 교사실을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면서 가장 신선한 바람은 적절한 개인성이다. 이전에 내가 유치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나에게 흰머리가 자라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주었던 폐쇄적 집단성 속에서 드디어 탈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각자 맡은 일은 각 자가 알아서 해결하는 분위기가 유치원 생활을 하는 숨통을 만들어주었다. 너무 선선하다. 우선 퇴근 시간이 자율적이다. 원감 선생님이 안 가면 못 가고 부장 선생님이 안 가면 못 가고 똑같이 한꺼번에 퇴근하자는 너무 불만족스러웠던 퇴근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할 일이 끝나면 원감 선생님 눈치를 보지도 부장 선생님 눈치도 전혀 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쳤다는 것에 전제하고 있지만 이 또한 자율적이다. 기한 내 일을 마치면 되는 것이다. 빨리빨리 해결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속도에 맞춰 기한만 놓치지 않고 해결하면 된다는 전제를 다들 인정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로서의 역할이 주도적이 되었다. 모든 일은 함께라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함께가 되면서 느껴지는 자유는 너무 달콤하다. 내 일이 많아서 늦게 퇴근하는 건 억울하지도 않았다. 내 일은 내가 해야지라는 자발성이 푸릇푸릇 자라나고 있었다. 그런 쾌적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즐거워졌다. 내 생각, 내 마음을 표현하는데 벽을 두었던 이전과 달리 이것저것 물어보고 농담도 하면서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간혹 어이가 없을 때도 있다.

물론 아직 유치원에는 수직성을 좋아하시는 우리 원감 선생님과 그 지인으로 구성된 방과 후 선생님들이 계시다. 그들은 방학 기간 중 방과 후 개학에는 방과 후 선생님들이 종일 일하기로 계약서에 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일 일하는 것이 힘들다며 원감 선생님에게 속닥속닥 얘기하더니 원감 선생님은 그 못된 요구를 모조리 받아들여 어물쩡 핑계를 대면서 정규 선생님들이 그 시간을 채우는 것으로 통보하셨다. 누가 봐도 그 속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토로할 정교사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원감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지만 그러려니 그 속에서도 내 이익을 야금야금 찾아가면 되지 하는 여유도 생겼다.

나는 운이 좋다.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를 1년 만에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발 잘못 들인 것 같다는 유치원 교직생활이 이젠 이 정도면 꽤 괜찮다는 생각으로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이번 여름방학 동안은 운동도 꽤나 열심히 해서 만든 몸을 훌러덩 뽑내 보면서 즐거운 여름방학을 맞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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