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 Jul 09. 2022

실패 변주곡-7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그 남자와 두 번째 만남 이후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내 속의 어른이 계속 딴지를 걸어왔다. 

진짜 네가 최선을 다했어? 너 불성실했잖아. 지금 합리화하는구나?

인정할 수 없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불성실하고 약한 아이가 아직도 미웠다. 여전히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나는 아직도 정체되어 있었다. 여전히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못했다. 


 걷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있는 곳, 내가 있는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 멀리멀리, 사라지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그 시선들은 말하고 있었다. 

넌 실패자야. 실패자라고.


 그래도 더 이상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 나아지려고, 극복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일상은 단조로웠다. 나갈 일이 없으니 옷이 필요 없었고 자질구레한 치장도 필요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으니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배고픔을 채울 음식과 내가 있어도 되는 장소만이 내가 필요한 것의 전부였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전처럼 괴로워하지는 않았지만 혼란스러웠다. 난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난 이제 무얼 해야 하지?

수능을 다시 보고 싶었다. 당면한 문제를 당당히 극복해 내고 싶었다. 어쩌면 이 감정은 또다시 이상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고 헛된 소망을 합리화하며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의 연장선일지도 몰랐다. 지금의 어떤 심리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과는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이 무서울 뿐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다. 

시간은 나른하지만 빠르게 흘러갔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저녁 밥상에서 부모님이 물었다. 

"그러게요." 냉소. 

"네가 실패한 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패 변주곡-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