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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l 01. 2022

자아탐색일기 3: 내가 엄마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었다

수치심과 콤플렉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딸은 엄마와 비슷한 성격적 기질을 갖고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 비슷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아는 심리학 이론이다. 그러나 과연 '내가' 엄마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될까? 하는 질문에는 항상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단언했었다. 그러나 아뿔싸, 나도 이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엄마의 분신이 되어 엄마의 삶을 대신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나의 뿌리 깊은 죄책감과 수치심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했었다. 상담시간에 최근에 수치심을 심하게 느꼈던 사건을 꺼냈다. 단짝 친구가 지인의 비밀을 공개적으로 까발린 일이었는데 결국 내가 말을 옮긴 당사자가 되어 심한 자책감과 죄책감, 수치심을 느꼈던 사건이었다. 사실 단짝 친구는 잘못한 것이 없고(내가 입단속을 못 시켰으니), 지인도 괜찮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괴롭고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던 것이다. 지인의 입장이 내가 되었어도 처음에는 뭐야? 하고 당황했겠지만 이후에는 별생각 없이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길만한 일이었다. 


 이런 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뭔가 과거에 그럴만한 감정적 배경이나 트리거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 같았다. 심하면 심한 일이지만 저런 일 가지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하는 것은 어떤 병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니까. 결국은 깊이 들어가 보니 지인에게 미움받을까 봐 두려운 것도 아니었고,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 것은 맞지만 그게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었다. 제일 큰 문제는 못나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나 자신의 문제였다. 못난 모습들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너무나도 쪽팔렸던 것이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감정이어서 대체 이 감정의 기원이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감정의 근원의 단서를 엄마의 삶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k-장녀의 전형 같은 삶을 살았고, 큰외삼촌과 막내 남동생을 돈 벌어 공부시켜 모두 대학 보냈으며 그럼에도 외가에서 대학 못가고 출세 못한 ‘못난 딸’로 배척받아 외가와 의절한 삶을 사는 중이다. 

 여기서 ‘못난 딸’의 수치심이 그대로 나에게로 전이되어 내려왔다고 한다. 항상 누군가를 돌보고 성공시키는 데에 의미를 두었던 엄마는 엄마가 아는 방식으로 내게서 자신의 삶의 보상을 바랐다. 나는 엄마의 대리, 분신이었고, 잘난 딸이었고 사춘기도 없(었다고 믿)는 착한 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어코 성공해야 하는, 넘어지거나 실수하면 수치스러운, 딸이 되었다. 엄마의 감정을 그대로 물려받게 된 것이다. 나의 트라우마처럼 심한 수치심은 이렇게 대를 이어 물려받은 것이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성공시키는 데에 자신의 존재 의미를 두었던 엄마는 결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자와 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콤플렉스는 콤플렉스를 부른다고 한다.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이와 아이를 필요로 한 엄마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항상 누군가를 돌보려 하는 엄마는 아이 같은 남자와 결혼하여 그 남자의 ‘엄마’가 되어 살고 있다. 아마 아빠가 심적으로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엄마는 아빠와 같이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아이가 독립하면 더 이상 엄마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런 상황을 오히려 두려워할 것이라고. 

 나 또한 자녀는 반대 성 부모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폭력적이고 독선적인 성향의 아빠와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귀엽고 어린, 어쩌면 미성숙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아빠와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소름이 돋았다. 엄마는 지금도 아빠와 동생을 공부시켜 성공하고자 한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성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나와 엄마의 심리적 분리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선택한 것이니 엄마의 삶을 안타깝다고 여기거나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엄마의 인생을, 엄마의 바람을 대신 살고 있었다니, 엄마는 나와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물려받은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려면 부모와의 원만한 심리적 분리와 함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디서부터가 엄마의 바램이고 엄마의 감정인지를 구분해내고 그 감정들이 망상임을 인식하는 작업이 필요할 듯하다. 이제는 '좋은 딸'이 되려 그만 애쓰고 나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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