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야학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룰루 Oct 31. 2023

내가 이런 말 할 처지가 아닌데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내가 쓴 브런치 글들을 보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글만 보면 세상 훌륭한 사람이다. 실제 야학에서의 모습은 그러지 못하다. 평소에 실천하지 못하는 점들을 글에서 강조하고 있다. 브런치에서는 합격, 불합격이 중요하지 않다고 잔뜩 떠들었지만, 나만큼 수업 시간에 '시험'이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하는 선생님도 드물 것이다. 언행불일치다. 수업 때가 되면 '이 문제는 반드시 나온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70점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이 정도 문제는 30초 만에 풀 수 있어야 한다' 등 '시험친화적'인 수업을 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사람 성격이 쉽게 고쳐지지 안된다.




 고졸 검정고시가 해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 성적을 내신으로 활용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다. 예전에는 교과서 내용을 위주로 문제가 출제됐는데, 요즘은 사고력을 판단하는 문제들이 부쩍 늘었다. 수능과 상당히 흡사해졌다. 내가 수업하고 있는 국어도 마찬가지다. 국어에서 70점은 받아줘야 합격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문법 문제 난이도가 상당하고(이 글을 읽는 브런치 독자들도 대부분 풀지 못할 문제도 있다.), 문학 지문도 꽤 길어졌다. 덕분에 작년에 우리 야학에서 고졸 합격자는 0명이었다. 고졸의 벽에서 좌절하고 자퇴(?)하는 학생들이 많다. 올해는 한 분이라도 합격시켜야 할 텐데. 이런 쓸데없는 걱정들 때문에 시험에 연연하게 된다.


 나의 조바심에 비례해서 목소리도 커진다.


  "여러분, 시험지를 받으면 무턱대로 바로 푸는 게 아니에요. 지문을 쓱- 보면서 글의 갈래부터 봐야 해요. 지금부터 읽을 글이 어떤 글인지를 알아야 무엇을 유심히 봐야 할지가 판단이 서요. 논설문이 나왔으면 글쓴이의 주장과 근거가 뭔지를 보세요. 소설이 나왔으면 인물의 심정과 상황을 위주로 보란 말이에요. 시험 자체를 멀리서 내다보면서 풀어야 해요. 그래야 문제 속에서 허우적 대지 않죠. 안 그러면 70점을 못 넘겨요."


 오늘은 유독 시험을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급발진을 했다. 엇... 나 왜 이렇게 화내면서 얘기를 하지? 나도 잘 못하는 거라서 그렇다. 이렇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나도 쉽지 않아서다. 오늘도 난 사소한 문제들 속에서 허우적대는 하루였다. 누가 내 험담을 했다는 소식을 건너 듣고, 하루종일 진정이 안 됐다. 애초에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은 사람의 악플에 씩씩대봤자 무슨 소용이 있다고.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쳐다보다가 하루를 허비했다.



 유튜브에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콘텐츠를 본 적이 있다. 카톡 메시지에 '부모님께 효도하자'가 적힌 사람치고 진짜 효자는 없고, 평소에 '인생에 돈이 뭐가 중요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제일 돈에 미친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 하듯, 역설적으로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을 강조해서 생각하게 된다는 해석이었다. 내가 바로 그 예시에요 여러분.


 딱 내가 가르치는 만큼만 살아내면 좋겠다. 금방 위인이 될 것만 같다. 누가 누구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 건지.


 다음 수업시간에는 그냥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사실 저도 잘 못해요. 저도 여러분들처럼 문제 의도도 파악 못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져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제는 안 그러도록 같이 연습해 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