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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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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Dec 03. 2024

나의 첫 이방인 제자

 올해 갓 서른이 된 유안 씨는 우리 야학 최초의 외국인 학생이다. 3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온 그녀는 현재 우리 초등반에서 공부 중이다. 그녀는 현재 낮에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아직 젊은 만큼 더 전문적인 직업을 얻고 싶어 우리 야학에 문을 두드렸다. 자의로 온 것은 아니다. 한국을 잘 모르는 그녀는 이런 공부시설이 있는 줄도 몰랐으나, 그녀를 도와주는 어른들의 권유가 있었다. 그래도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가정을 돌보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다. 그래도 복지사 분의 설득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 입학을 했다. 남편과 100일만 참고 다녀보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다행히 반년이 넘도록 아직까지는 출석을 하고 있다.


 유안 씨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들을 하나씩 부쉈다. 외국인이라고 다 영어를 잘한다고 누가 그랬나. 무심코 우리는 유안 씨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에티오피아는 불어를 사용한다. 그녀는 영어보다 차라리 한국어가 더 익숙하다.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은 곧잘 점수가 나왔으나, 사회를 유독 어려워했다. 공부를 따로 안 해도 합격점수가 나오는 게 사회인데, 유안 씨에게는 그 어떤 과목보다 사회 공부가 버거웠다. 생각해 보니 당연하다. 한국의 지형, 역사, 문화를 한 시간 남짓한 수업시간에 어떻게 속성으로 다 익힐 수 있단 말인가.


 유안 씨가 우리 야학에 적응할 수 있었던 데는 급우들의 도움도 적지 않다. 내성적인 유안 씨에게 한마디라도 일부러 더 걸어주고, 결석을 했을 때는 따로 학습자료를 챙겨준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못 나온다는 유안 씨에게 반장학생은 '어휴 아이도 데려와~ 같이 공부하면 되지!'라고 선뜻 배려를 해준다. 그래서 유안 씨는 종종 학교에 아들을 데려온다. 홀로 아들이 복도에 있을때면 선생님들이 놀아준다. 그런데 여기서도 약간의 호불호가 생겼나 보다. 아들이 언제 오는지를 보면 인기 있는 선생님이 누군지 가늠할 수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데, 말만 들어보면 한국 초등학생과 똑같다. 여기 야학 선생님들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우리와 많이 다르면서도, 신기하게 우리와 비슷하다.


 그녀는 최근 운전면허 필기시험과 전쟁 중이다. 필기 정도야 조금 공부하면 상식선에서 합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외국인에게 이 시험이 결과 만만하지가 않다. 일상회화는 큰 어려움이 없는 유안 씨지만 시험문제에 나오는 단어들은 상황이 다르다. 가령 '고속도로 전방에서 정속 주행하는 차량에 주의'라는 문구만 봐도 외국인에게 버거운 단어 투성이다. 전혀 장애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누군가는 걸려서 넘어지고 있나 보다.


 정형화할 수 없는 것들이 흥미롭다. 배움의 한, 노년의 공부가 떠오르는 여기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청년이라니. 그녀가 이번 학기를 완주할지, 나아가서 고등반까지 우리와 함께할지,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갈지 전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어떤 모양이 되든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2023년, 우리나라는 고령화에도 외국인 증가에 힘입어 인구가 늘었다. 그만큼 이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살아내야 하는 곳이 되었다. 유안 씨가 앞으로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살아나갈지. 그 예측불허 미래를 지켜보는 게 재밌다. 이 땅에서 분투 중인 이방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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