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파리 여행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 첫 번째 여행 때 필수 파리 코스는 다 거쳤기 때문이다. 같은 도시를 여러 번 여행하면 이런 점이 좋다. '여긴 가야 하지 않을까? 남들 다 가는 곳이니까', '이건 꼭 해야 해!'라는 강박 없이, 순수히 내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맘대로 여행할 수 있다. 그러면서 여행지에 애정을 가지게 된다.
피에르 상 레스토랑은 첫 번째 여행에서 잠시 스쳐갔던 한국인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이 레스토랑의 셰프는 프랑스로 입양 간 한국 태생이다. 메뉴는 프랑스 요리지만 식재료는 한국 식재료를 사용한다. 한국 식재료로 만드는 프랑스 음식이라니.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식당이다. 식당명은 오너셰프의 이름 '피에르 상 보이'에서 가져왔다. 한국에서의 이름은 '이상만'이었다고 한다.
전화로 레스토랑 점심식사를 예약했다. 거리 모퉁이에 있는 이 작은 레스토랑 앞 문에는 각종 여행 커뮤니티에서 받은 앰블럼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것만 봐도 '이곳 꽤 인기 있는 곳이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혹 엄숙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 가면 괜스레 움츠러들 때가 있는데, 이곳은 캐주얼해서 맘에 들었다. 이미 식사를 하고 있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많았다. 가게는 밝고 경쾌하되, 시끄럽진 않아서 분위기부터 이미 내 기분이 좋게 만들었다.
이 식당은 메뉴를 고르는 시스템은 아니다. 런치는 3가지 옵션(3 디쉬, 4 디쉬, 5 디쉬)이 있을 뿐이다. 먹을 디쉬의 개수를 말하면 식당에서 그날 만드는 음식을 알아서 가져다준다. 아, 특정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대체 음식을 제공한다. 나는 5 디쉬코스를 주문했다.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를 포함해서 5 디쉬를 맛보았다.
서양 음식만 먹다 보니 니글니글하던 참이었는데 유사 한국음식(?)을 먹으니 조금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산나물로 만드는 샐러드는 새로웠다. 수비드 한 닭고기 스테이크를 쌈장소스와 함께 먹다니. 신기했다. 프랑스 사람들도 쌈장을 곧 잘 먹나 보다. 이 가게 후기를 찾아보니 거의 쌈장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스였다. 프랑스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한식 솜씨라니. 우리 재료를 가지고 이렇게 서양음식을 만들어내다니, 그 창의성이 신기했다. 게다가 맛도 훌륭하고. 음식 재료를 알려주지 않고 편견 없이 먹은 후, 음식은 다 먹은 다음에야 음식의 재료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새로웠다.(한국사람은 식재료를 대강 유추할 수 있다. 외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재료들이라 재밌을 것 같다.)
그사이 피에르 상은 더욱 위상이 높아졌다. 2020년, 프랑스 기차 TGV에 열차 전용 도시락으로 비빔밥을 납품했다. 2022년, 루이뷔통 서울과 협업하여 서울에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다. 비단 나만 재미와 맛을 느낀 게 아니었나 보다.
한 가지 분야에서 두각을 내기가 정말 어렵다. 세상에는 천재가 너무 많아서다. 똑같은 것을 배워도 나보다 훨씬 빨리 습득하는 동료들을 보며 좌절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나는 기술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업계에 있어서 더 크게 와닿는다. 다행히도 두 가지 분야를 동시에 잘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피에르 상도 이에 해당한다. 언젠가는 나도 내 강점 두 가지를 결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내보고 싶다. 한 끼 식사로 좋은 영감을 받아갔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방문한 가게라서 현재와 정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 피에르 상 공식 홈페이지 및 유튜브
식당에 방문 전에 미리 예약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https://pierresang.com/en/in-oberkampf-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