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자취는 로마에서
2014년 8월 24일 밤, 이탈리아 로마.
선명하게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자신을 뽐내듯 어둠을 비추는 것이 아닌 노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길을 안내하고 있는 로마의 중심부인 베네치아 광장을 택시 창밖을 통해 구경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의 내가 이탈리아에 머물게 될 줄은.
시작은 우연이었다.
아시아 여행만 해봤던지라 유럽 여행은 생각지도 못했던 내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인천-로마-밀라노행 비행기 티켓을 사게 됐고 그렇게 이탈리아에서의 6박 7일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로마에서 시작해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에서 마무리가 된 스케치와 같은 짧은 여행은 반드시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2016년 8월 14일, 2년 만에 다시 로마 땅을 밟았다.
이번엔 7일짜리 여정이 아닌 1년짜리 여정을 계획하고 말이다. 한국 나이로 27살이었다.
3년 동안 하던 나름 애정이 있었던 아로마 테라피스트라는 일을 정리하고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던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말 그대로 반해서 한 결정이었다.
그 나라에 살려면 언어를 완벽하게 해야지 않겠냐는 생각에 1년 치 어학원을 등록하고 어학원에서 중개해준 로마의 어느 가정집에 짐을 풀었다.
방 4개, 화장실 3개, 발코니 2개, 주방 1개, 방 두 개 만한 거실 1개의 구조로 된 집이었다. 물론 내 방은 4개 중에 하나. 집 바로 옆에는 17세기 귀족 가문인 도리아 팜필리 빌라와 공원이 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리는 것부터 집의 층고, 방충망이 없는 창문들, 닫힘 버튼이 없는 엘리베이터,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왼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적응이 필요한 열쇠 구멍과 무거운 열쇠 꾸러미, 집주인의 이름으로 배정된 초인종.. 모든 게 달랐다.
그중에서도 제일은 경기도 고양시의 창 밖으로 보이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로마의 창 밖 풍경이었다. 내가 정말로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있구나 실감케 했다.
집주인인 페데리코 아저씨는 아주 반갑게 나를 환영하며 여러 학생들이 다녀갔다는 듯 매뉴얼적인 집의 설명을 해주었고 물론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한국에서 출국을 준비하는 1년 동안 이탈리아어 학원도 다니고 과외를 하며 어느 정도 언어 공부를 했다고 자부하고 이탈리아에 왔지만 막상 원어민의 말을 들으니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은 또 왜이리 빠른지. 그렇지만 눈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대충 웃으면서 "sì, sì(네)"만 반복하며 상황을 이어나갔다.
밤에 도착해 마실 물도 없어 당황하던 차에 페데리코 아저씨가 여기는 수돗물을 먹는다고 했다. 마셔도 되고 요리해도 된다고 하였고 정수기 보급이 일반적인 한국에서 온 나는 조금 찝찝했지만 철저한 공복 상태인지라 다른 방도가 없어 한국에서 가져온 진라면 매운맛을 수돗물에 끓이고 유튜브를 틀어 무한도전 레전드를 벗 삼아 이탈리아에서의 첫날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다음날인 8월 15일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공휴일인 성모승천 대축일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집에서 로마 시내까지 나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공휴일은 일요일과 같은 버스 배차간격이 적용된다는 사실. 공휴일 인지도 몰랐을뿐더러 교통도 서울 같을 거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은 교통 인프라가 잘 되어있고 배차간격도 촘촘해서 버스를 놓쳐도 기다리면 그만이지만 이탈리아는 놓치는 순간 지옥이라는 것을 로마의 대중교통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경유 없이 한 번에 시내로 나가려면 982번이나 44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집 바로 앞에 982번 버스가 구글 맵에서는 곧 도착한다고 하니 타보자 하고 기다리길 40분, 그것은 내 로마 생활의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그저 필요한 것들을 사러 시내로 나가는 것뿐이었는데 버스만 타면 30분 만에 도착할 시내를 한 시간이 훌쩍 넘어 도착했고 도착해보니 작열하는 태양에 온 몸은 땀에 절고 이미 기가 소진되어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도 좋았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이탈리아는 물론 일본, 대만, 상하이, 보라카이, 스페인 등을 여행하며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고 그의 연장선으로 해외에서 살아보며 그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 지금 이탈리아에 와 있으니 땡볕에 버스를 40분 기다려 엔진의 열기로 찜통인 버스를 타도, 이어폰의 노랫소리가 안 들릴 정도의 버스 소음이 날 기다려도, 이따금 돌바닥을 지나갈 때면 디스코 팡팡 수준으로 흔들리는 버스여도 좋았다.
어쩌면 나는 이탈리아에 콩깍지가 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단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