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탈리아 생활의 시작을 함께 했다.
그리스, 러시아, 스페인, 프랑스, 터키, 폴란드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가 이탈리아가 처음이라 이탈리아어가 서툴렀고 무엇보다 공통적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서로는 마음의 문이 없다시피 친해졌고 한 명 한 명 본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함께 그 길을 배웅했고 포옹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기억하자고 했다.
타들어갈 것만 같은 햇빛에 바삭한 건조함을 느끼는 로마 여름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어학원 수업이 끝나면 도시의 구석구석을 함께 탐방했다. 다 같이 이탈리아어가 서투른 마당에 누구는 영어를 잘하고 누구는 영어를 못해 언어의 대부분은 바디랭귀지가 일상이었고 같은 말을 해도 다르게 해석되기 일쑤였다. 인터넷 사전은 우리 사이의 필수 아이템이 되어버렸고 찰나의 소통의 시간이 길어져도 느긋히 기다려주었다.
언어가 완벽히 통하지 않으니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태양에 등 부분이 티셔츠 모양 그대로 타도, 팔에 제모되지 않은 털이 한가득 이어도, 너무 신나면 갑자기 소리는 지르는 타입이어도, 걸음이 너무 빨라 걷다 보면 무리에서 이탈해도, 밥을 늦게 먹거나 너무 빠르게 먹어도, 술을 먹으면 꼭 피자를 먹어야 하는 타입이어도 그것들 그대로가 우리에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렇지만 그룹의 모두가 나처럼 이탈리아에 거주의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방학에 한두 달 여행 목적으로 이탈리아에 온 것이라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서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언제 떠나냐는 질문이 습관처럼 입에 붙어버리기도 했다. 누구는 온지 2주만에 떠나야 하고 누구는 한달 더 남아 좋아하기도 하고 누구는 본국에 잠시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가을이 다가올수록 처음의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져 전혀 다른 그룹이 되기도 했다.
추억을 공유할 날들의 유통기한이 다가옴에 따라 모르는 척 애써 먹먹함을 덮으려 남은 시간을 농도 짙게 보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고향에서는 모든 것이 익숙한 것들 투성이었는데 로마에서는 사방이 온통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었고 서로에게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들로 바꾸어가는 그 시간을 공유하다 보니 애착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들이 마치 통째로 액자에 넣어 보관된 기억처럼 남아버렸다.
카레를 만들려고 양파는 써는 순간에, 로마의 테베레 강의 옆을 걷는 순간에, 일요일 오후 3시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종종 그 친구들이 떠오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락의 빈도수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나의 마음에 그들이 남아 이따금 떠오르며 기억의 한 구석에 남아있듯 그들 마음속에도 내가 계속 머물렀으면 하고 바라본다.
잘 살다가 어느 곳에서 우연히 한 번쯤은 마주쳤으면 하는 친구들. 어디서 무얼 하든지 건강했으면.
비록 가끔이지만 소리 없는 미소를 짓게 하는 그 사람들을 오늘도 마음에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