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수진 Jul 25. 2022

처음 입을 떼는 아이처럼

전혀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 (feat. 의지의 한국인)

어학원 내에서 허락된 언어는 이탈리아어 하나뿐이었다.

그 안에서는 사전도 쓸 수 없고 어쩌다 누군가가 답답해서 영어를 쓸 참이면 선생님들은 단호히 이탈리아어로 말하라고 주의를 줄 정도였으니까. 학원의 정문을 들어오는 순간 다른 언어는 철저히 배제한 채 이탈리아어의 홍수 속으로 다 같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학원엔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알파벳도 모르는 친구, 이미 이탈리아인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는 스페인어 원어민, 매년 휴가 때마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해 이 학원에 오는 친구 등 다양했다.

이탈리아행을 준비하는 1년 동안 한국에서 문법 위주의 수업을 듣고 온 나는 어렵지 않게 첫날의 레벨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배정받은 반은 언어 레벨 B1. 왕초보 레벨 A1이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단계라면 A2를 거쳐 B1에 도달한다. 첫날부터 B1이라니. 역시 선다형 문제풀이에 대단히 최적화된 한국인이라 말할 수 있겠다.


레벨테스트는 그럭저럭 풀었지만 중요한 건 수업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어를 이탈리아어로 가르치니 일단 알아들어야 수업을 이해할 텐데 왕 기초반이 아니어서 그런지 선생님은 입에 모터를 단 것같은 속도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나름 한국에서 모든 문법을 터득하고 와서 자신감이 있었는데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제일 중요한 귀가 뚫리지 않은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 귀가 뚫리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 들리는 게 없으니 입도 뚫리지 않아 머릿속으로 작문만 하다가 시간이 갔고 그러니 대답을 해야 할 때면 웃기만 했다.


짝을 지어 대화를 해야 한다거나 같이 문제를 풀어야 할 때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탈리아어와 언어적 거리가 한국어보다 비교적 가까운 프랑스나 스페인 친구와 짝이 될 때면 그렇게 민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제 푸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먼저 다 푼 짝꿍은 옆에서 기다리고 내 문제풀이가 끝나기를 기다리겠다는 선생님 덕에 열명 남짓한 친구들이 고요함 속에 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기 일쑤. 문제를 눈에 쑤셔 넣듯 읽고 뇌를 쥐어짠 후 답을 쓰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오죽하면 수업을 마친 후 건물을 나와 새파란 로마의 하늘을 보면 해방감을 느낄 정도였으니.

집에 돌아온 저녁엔 숙제를 하기 바빴고 이탈리아어 동사 변형 사이트를 옆에 끼고 살다시피 했다. 한국어도 제대로 공부했던 기억이 없는데 무슨 팔자여서 언어 체계가 아예 다른 남의 나라 말을 이렇게 파고 있는 것인지 가끔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탈리아어는 동사가 거의 다 하는 언어라고 할 정도로 동사의 변형이 규칙, 불규칙할 것 없이 무쌍하고 동사의 주어(나, 너, 그/그녀, 우리, 너희, 그들)에 따라 변화하는 것들을 모두 외워야 하는 언어이자 관사와 성수 일치(단어에 성별이 있다! 처음엔 굉장한 충격이었다)가 매우 중요한 언어임을 알았다면, 아니 이탈리아 행을 정하기 전에만 알았다면 나는 이탈리아를 선택했을까 싶기도 했다. 게다가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원래 그런 경우'가 많은 언어이기도 하다.

~하다 혹은 행동하다의 동사 fare의 현재시제 변형을 예로 들면 나 faccio, 너 fai, 그/그녀 fa, 우리 facciamo, 너희 fate, 그들 fanno 이렇게 여섯 가지 변형이 나오는데 이제 여기서 현재 완료(비교적 쉬움), 대과거, 반과거, 미래, 접속법 현재, 가정법 등등 시제에 따라 변형되는 동사를 모두 외워야 하는 것.
 
깜지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던 시절

깜지의 나라에서 온 의지의 한국인(나)은 동사도 깜지를 하며 외우기 시작했다. 사실 효과를 봤는지는 모르겠다. 깜지를 채웠다는 알량한 성취감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눈앞의 숙제와 지금 당장 부딪히는 단어들을 받아들이는데 급급하던 나는 잠깐 멀리서 숲을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동사 변화의 큰 틀을 이해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임에도 박치기 수준으로 부딪히며 그렇게 이탈리아어와의 시간을 쌓아갔다.


대부분이 한두 달 짧게 체류를 하는 어학원에서 6개월 학생은 드문 경우인데 내가 고인물이 되어 갈수록 귀는 한 겹씩 서서히 열리고 있었고 동시에 입은 뇌의 계산이 필요 없이 툭하고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쌓인 시간만큼 자연스레 "왜 말이 이렇게 돼?"라고 질문 하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서서히 이탈리아어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렇게 로마에서의 6개월을 정리하고 또 다른 6개월을 보내러 피렌체로 이사를 했다. 어김없이 어학원에 출석했고 그곳에서 선생님들께 "말을 참 잘하네?"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감을 충전했다.


그런데 거기서 멈췄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탈리아 대학에 들어가기로 맘을 먹는다.

작가의 이전글 시한부 우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