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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수진 Aug 27. 2022

평범한 저녁에 당한 캣콜링

인생에서 캣콜링이라는 단어를 품게 된 것은 유럽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아시아를 벗어나 더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는 단어.


캣콜링 Catcalling
노상 성희롱의 일종으로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추근거리는 성적인 농담 혹은 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성희롱 적인 행동 또는 언어적 표현.


 유럽여행을 이탈리아로 떠나오면서 스치듯 만났던 길거리의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휘파람들과 "차오, 벨라 Ciao, Bella(안녕, 이쁜이)"라는 소리는 그저 여행객인 나에게 보이는 인사인 줄만 알았다. 아름답다는 칭찬을 받았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뒤에 따라오던 말들은 이탈리아어를 모르던 나에겐 한낱 외국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유모를 그들의 인사에 그저 옅은 미소와 함께 가벼운 목례만 했을 뿐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다음 해 스페인 여행 중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를 가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가던 중 골목에서 만난 그 남자의 인사를 받아주자 대화는 시작됐다. 다짜고짜 갈 길을 막으며 이쁘다는 칭찬과 함께 아래 위로 움직이는 시선이 불편했지만 캐리어를 들어주겠다는 도움 섞인 그의 말에 상황판단이 안 됐던 순간 일은 벌어졌다.

"기차 타기 전에 시간 있으면 우리 집에 갈래?"

찰나의 순간에 위험한 직감이 들어 신속히 대화를 끊고 기차역으로 향했더랬다.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동안 받았던 인사들이 캣콜링이란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휘파람이나 아래 위로 몸을 훑는 시선과 함께 "차오 벨라 Ciao bella 혹은 cara (안녕 이쁜이 혹은 귀염둥이)" 라며 캣콜링이 시작되며 더 나아가 성적인 요구를 한다. 노상 성희롱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마주 보고 웃는 것은 최악의 대처법으로 캣콜링을 하는 남성들을 더 부추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캣콜링의 존재를 모를 때 그저 칭찬인 줄만 알았던 휘파람 섞인 그 말들이 캣콜링이었다니. 더불어 그 성희롱 발언에 웃으며 고맙다고 했던 나의 과거들은 아직도 귀가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녁 약속을 위해 로마 번화가를 거닐면서, 물을 사러 들어간 상점에서 나오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목에서 등 횟수가 반복될수록 이유모를 인사들에 지쳐갔고 매번 내가 만만한가 싶어 화가 나지만 무섭기도 해 대꾸를 하지 않는 나날들이 늘어갔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여름밤의 트레비 분수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클럽에 온 것 마냥 정상적인 데시벨로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던 아름다운 트레비를 뒤로하고 친구와 헤어지자마자 다가온 그 남성은 왜 하필 수많은 인파 중에서 나를 골랐을까. 이탈리아어 실력이 어느 정도 있었고 캣콜링이 지긋지긋하던 그 시기에 잘 걸렸다 싶었다. 안 그래도 반복되는 순간들에 짜증이 났었던지라 여차하면 한마디 할까 싶었으니까.

본인은 한국인 여자 친구들이 많다며 다짜고짜 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거절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나를 뒤따라오며 자기 집에 초대했다. 다시 한번 거절하며 너희 집에  가야 하냐고 묻자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란다. 뻔뻔함에 말문이 막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싫다고   정류장을 향해 걷는  뒤를 따라 밟는  사람을  순간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공포를 느꼈다. 버스까지 따라올까 싶어 인적이 많은 로마의 밤거리를 배회하다 정류장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캣콜링은 주로 길을 걷는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어떠한 대처를 하기도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지만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신원을 모르는 사람에게 대꾸했다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길거리에서 그런 수작질을 하는 사람을 붙잡고 일일이 가르칠 여유도 없거니와 바로잡아 준다한들 들을 사람들도 아니니 털고 잊어버리는 것만이 상책.  

그러나 이것이 단순 캣콜링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이따금씩 인종차별적인 상황과도 직결되기도 한다.


이번엔 토리노에서의 일이다.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낸  로렌조와 영상 통화를 하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토리노 왕궁을 지나 관광지이자 번화가인  조반니 바티스타 성당을 지나는 도중 사람들 속 트램 정거장의  명의 사내가 시시덕거리며  소리로 말을 걸었다.

"Hey~ Ciao cara, dove vai? (안녕 겸둥아 어디 가니?)" 낄낄대는 꼴이 보기 싫어 한국어로 "ㅁㅊㄴ들아냐"라고 소리치자 "니하오!"라며 다시 큰 소리로 웃는 게 아닌가.

"Sono coreana! (나 한국인이야!)"라고 하니 "how are you?"라며 다시 낄낄댔다.  

화가 나 씩씩거리는 모습을 전화기 너머로  로렌조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평소엔 무시했었지만 오늘은 유독 노골적이라 기분이 나빴고 그래서 받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브에서만 보던 캣콜링 영상은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로렌조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인 내가 당하는 모습을 보니 적잖이 놀랐고 그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다수의 캣콜링은 무리 지어 있거나 남자와 같이 있을 때는 당하지 않는다. 주로 무방비 상태로 혼자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당하니 나와 함께 걸었던 그 많은 시간 동안 로렌조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뒤돌아보면 이탈리아에 정착을 하던 1~2 사이에는 많이도 들었더랬다. 물론 이탈리아에서의 모든 순간들에 캣콜링이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열이 가능할 정도의 순간들이었다.

2022년인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캣콜링의 순간을 마주하지만 이따금씩 관광지를 가게 되면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토리노에서 볼로냐로 이사를 오면서 처음 느낀 것은  도시는 굉장히 활발하다는 것과 캣콜링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이젠 이곳의 현지인처럼 보여 당하지 않는걸까? 아니면 캣콜링이 조금은 사라진 걸까. 후자였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캣콜링을 마주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굳이 듣지 않아도  말로 인해 남은 하루를 기분 나쁘게 보내게 되는 누군가의 날에 지난 나의 날들이 스쳐가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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