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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수진 Sep 11. 2022

여기는 왜 다들 무임승차를 해요?

한국과는 다른 이탈리아 교통 문화

몰라도 되지만 미리 알고 가면 좋은 이탈리아의 문화에 대하여.


이탈리아에 살다 보니 심심찮게 받는 질문이 있다.

"여기는  무임승차를 해요?"

이탈리아 생활 초반에 나조차도 이런 의문을 가졌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버스나 트램 표를 안 사고 무임승차를 해도 되나?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누가 검사하지?' 싶은 생각들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볼로냐 버스

일단, 이탈리아의 버스는 모두 저상버스이다.

아주 좁은 골목길을 다니는 좌석이 약 20석이 채 안 되는 미니 버스 또한 저상이고 버스 중간 튜브를 낀 지렁이 같은 모습으로 도심을 활보하는 일반 버스들 또한 저상이다. 미니 버스는 다수가 있는 게 아니니 제외하고 일반 버스를 보자면 총 4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승은 맨 앞과 맨 뒤 문에서 하고 하차는 가운데 두 문에서 하게 된다.

버스가 길기도 하고 앞과 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수의 인원이 타게 되면 한국처럼 누가 돈을 냈는지 체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가만 보면 이탈리아 버스 기사들도 차비 컨트롤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버스 기사도 신경 쓰지 않으니 사람들이 무임승차를 하는 건지, 이쯤 되면 여행객들의 생각처럼 무임승차의 나라로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모든 이가 무임승차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한 달 혹은 길게는 일 년짜리 정기권을 소유한 사람들로 굳이 버스 카드를 찍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르고 봤을 땐 그냥 버스에 올라타고 내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금액을 지불한 것이다. 정기권이 있으면 단말기에 태그 하지 않아도 되니 그들은 그냥 올라탈 뿐인 것. 그러니 모두가 돈을 내지 않고 버스를 탄다고 해서 따라 하지 말자. 나를 반기는 것은 어마어마한 벌금뿐이다.


이탈리아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꼭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 펀칭하기.

우리나라에서 카드를 찍고 버스를 타야 하는 것처럼 이탈리아에서는 버스표에 탑승한 시각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펀칭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버스표는 90분 정도가 유효한데(도시마다 상이) 그 안에 자유롭게 환승이 가능하다. 최초로 올라탄 버스나 트램, 지하철에서 펀칭을 받았다면 환승 유효시간 동안은 펀칭을 하지 않고 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지하철은 1회만 가능할 수도 있으니 변수를 꼭 체크해야 한다) 그러니 최초로 탄 대중교통에서 펀칭을 꼭 해야만 한다. 펀칭을 잊었을 시 어마어마한 벌금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기 때문에..

피렌체 버스 펀칭하기

표를 구매해서 버스를 탔고 펀칭도 했다. 근데 아무도 체크를 안 하는데 꼭 돈을 내고 타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여기서 펀칭의 중요성이 또 한 번 강조된다.

주말이고 주중이고 시간 상관없이 버스회사의 검표원들이 앞문과 뒷문으로 버스에 올라타 불시에 검표를 진행한다. 버스는 이미 출발을 했기 때문에 표가 없다고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게 벌금을 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 창밖을 예의 주시하며 정거장에 도착할 때마다 검표원들이 타는지 안 타는지 체크하는 무임승차를 한 사람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검표원들이 올라탐과 동시에 재빠르게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말이다.


검표원들에게는 펀칭이 되어 있지 않은 표 또한 벌금의 대상이 된다.

표를 사용하지 않고 수차례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케이스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펀칭을 깜빡했을 수도 있다. 어떻게 잘 설명을 해볼 수도 있겠으나 이탈리아의 검표원들은 단호하고 끈질기기 때문에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오고야 만다.

펀칭 기계가 고장 났으면? 버스표에 수기로 탑승 시간과 날짜를 적는다. 그리고 검표원이 오면 기계가 고장 났다는 말과 함께 표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펜이 없네? 펀칭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꼭 남겨놓도록 하자. 이탈리아어가 수려하다면 기계가 고장 났다며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저 펀칭하지 않은 관광객 1로 보이기 십상이니 항시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슬기로운 이탈리아 생활의 첫 번째 지름길이라 할 수 있겠다.

출처 : Tper / 카드로 버스요금을 내보자

그렇다면 번거롭게 꼭 표를 사야만 하는 것인가?

이탈리아에서도 카드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contactless (긁지 않는 비접촉 결제 방식) 카드의 사용이 늘어감에 따라 볼로냐에서는 약 1년 전부터 카드로 버스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 단말기를 도입했다. 한국에서는 아직은 생소할 수 있지만 해외 많은 국가들이 비접촉 결제 방식을 채택함에 따라 요즘은 한국에서도 컨택트 리스 카드를 만들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유럽 나올 때 이 기능이 탑재된 카드를 만들어 나오면 이탈리아 몇 도시에서는 버스표를 사지 않아도 되고 무겁게 동전을 들고 다닐 일이 없어지니 여행이 한결 깔끔해진다.

검표의 경우 내가 지불한 카드를 검표원에게 보여주면 되고 환승 또한 환승 시간 내에 카드를 다시 찍을 필요 없이 버스만 옮겨 타면 된다.


기차의 경우는 어떨까?

펀칭하는 법, 출처 : estense.com /  레지오날레 (완행열차) 표

기차표 또한 펀칭을 사수해야 한다. 드넓은 역에서 기차 찾아 타기도 바쁜데 펀칭까지 해야 하다니!

주요 도시를 관통하는 고속열차나 인터넷으로 티켓을 사 핸드폰에 QR코드가 있는 티켓이면 펀칭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역에서 구매를 해 실물 종이 티켓이 있는 레지오날레 기차(완행열차)의 경우에는 위에 보이는 기계에서 꼭 펀칭을 해야 한다. 기계가 눈에 띄는 곳에 나 여기 있소! 대놓고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플랫폼에서 눈 크게 뜨고 펀칭 기계를 찾아보자.

펀칭을 못했다면 버스표와 마찬가지로 수기로 작성을 하면 퍼펙트, 그렇지 못했을 경우는 행운의 여신이 도와주기를 바랄 수밖에. 누가 봐도 여행객이면 검표원이 수기로 작성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간간히 벌금을 내는 사람들을 목격했으니 이쯤이면 넉넉히 기차역에 도착해 느긋히 펀칭을 하는 편이 더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이탈리아는 불편하지만 여행의 매력을 더 배가시키기도 한다.

큰 틀의 문화가 다른 것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거리가 먼 만큼, 언어가 다른 만큼 미리 알게 되지만 이러한 사소한 부분까지 다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오지 않았다면 버스표를 사기 위해 주변을 배회하거나 불시 검문을 당하는 경험을 인생에서 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 모두 펀칭을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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