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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D 미식가 Sep 14. 2023

[미술의 맛] 쇠라 세잔 고흐 수집한 최고의 컬렉터는?

미술품 컬렉팅에는 안목이 필요하다

수집과 안목

1970년대 별로 읽을거리도 없던 시절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어느 가정집이나 전집으로 있던 대백과사전을 보는 일이었다. 특히 국사 대백과사전의 국보를 보는데 심취되어 있었다.

국보 1호 남대문,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 국보 20호 다보탑, 국보 21호 석가탑, 등등 줄줄 외는 재미로 국보을 탐닉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국보 중에서도 개인들이 소장한 국보들이 있었다. 대개는 도자기나 금불상, 서적들이었는데, 하루는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세어본 적이 있다.


당시 대백과사전에 국보를 많이 소장한 개인의 이름은 전성우와 이병철이었다. 나중에 철이 들고 안 일이지만, 전성우는 간송 전형필의 장남이었고, 이병철은 삼성의 회장이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2000년 기준 문화재청 지정 문화재 중 고(故) 이건희 회장(아마도 상속으로)은 국보 18건, 간송미술관을 운영하던 전성우 이사장은 모두 11건의 국보를 갖고 있었다. 그 밖에도 국보를 소장하고 있는 개인은 20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가야금관(국보138호, 이병철 소장)                           훈민정음해례본(국보70호, 전성우)

이러한 간송과 호암의 ‘국보 사랑’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문화재에 대한 열정과 기본적인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수집하는 과정은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한 영역이다. 전문적인 안목은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많은 수집가들이 컬렉션을 하지만, 성공한 컬렉션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송의 성공적인 컬렉션에는 서예가이며 당대 최고의 고미술 감정가인 위창 오세창의 조언이 있었다. 호암은 우리나라 고고학의 태두인 김원룡 등 다양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미술품에 대한 안목이 없다면 좋은 작품을 수집할 수도 없고, 결국은 실패한 컬렉션이 되는 것이다.


컬렉션의 역사를 쓴 바틀렛 부부 이야기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와 컬렉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프레데릭 클레이 바틀렛(Frederic Clay Bartlett)과 헬런 버치 바틀렛(Helen Birch Bartlett) 부부다.

프레데릭 바틀렛과 헬렌

이들은 1919년 결혼했다. 남편인 프레데릭 바틀렛의 첫 번째 부인인 도라 바틀렛이 사망하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헬렌은 유망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다. 화가인 남편 바틀렛과 결혼하면서, 남편의 미술에 대한 전문성과 그녀의 예술적 감각이 결합해 부부 사이에는 ‘미술품 수집’이라는 새로운 공통의 관심사가 생겨나게 된다.


이들 부부 수집가의 컬렉션은 부인인 헬렌이 결혼한 지 6년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26년, 남편인 프레데릭이 부인의 이름을 따서 <헬렌 버치 바틀렛 기념 컬렉션(Helen Birch Bartlett Memorial Collection‎‎)>으로 명명된 귀중한 작품 25점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영구 기증한다.


그런데 이들 컬렉션이 미국 미술관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것은, 그들이 기증한 그림 25점 중에는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쇠라의 대작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와 고흐의 <아를의 침실>과 세잔의 <사과 바구니>가 그것이다.


쇠라가 영혼을 바친 작품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바틀렛 부부는 결혼생활의 대부분을 유럽을 여행하면서 아트 딜러 등 미술 전문가들과 교류했고 그들이 가진 예술적 영감 등 기본적인 안목에 전문가의 다양한 조언을 더해 인상파 이후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수집했다.


1924년 6월에 부부는 드디어 훗날 미국 미술관 전시를 목적으로 한 작품을 구입한다. 바로 신인상파를 개척한 ‘점묘법’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1859-1891)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이다.

이 작품에는 숨겨진 구입 일화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남편인 프레데릭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곳의 큐레이터가 쇠라의 작품을 추천한다.  "요즘 유럽에서 ‘쇠라’라는 작가가  핫(hot)하다"것이다. 이들 부부는 이 큐레이터의 추천으로 쇠라의 작품을 구입한다. 당시 거금인 2만 4천 달러를 지불했는데,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억 3천여 만원에 달한다.


거금을 들인 쇠라의 작품은 그냥 평범한 작품이 아니었다. 흔히 점묘법으로 그린 쇠라의 대표작 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지만, 쇠라는 이 거대한 3미터의 대작을 완성하기 위해 70여 작품의 드로잉과 습작을 한 끝에 색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인물의 묘사도 여러 차례 시도하는 등 2년에 걸쳐 완성한 '쇠라의 혼'이 들어간 작품인 것이다. 당시 쇠라의 나이는 27세였다. 5년 후 쇠라는 32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쇠라의 이 작품은 1886년 제8회 인상파전에 출품되어 이목을 끌었는데, 색채를 원색으로 환원, 무수한 점으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인상파의 색채원리를 과학적으로 확립했다. 인상주의가 빛에 치중한 나머지 무시한 조형질서를 재정립하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쇠라, 그랑트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캠퍼스에 유채, 207x308cm,1884-86, 시카고미술관

작품을 자세히 보면, 화면 앞줄의 오른쪽 여성을 유난히 크게 표현하고 있으며, 화면 중앙의 여성도 같은 시점의 다른 인물보다 크게 그렸다. 이는 전통의 원근법을 의도적 무시이다. 그리고 화면은 유난히 정돈되고 긴장감을 주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그림을 분석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한 흔적이다.


그밖에 화면 중앙 왼쪽의 나비와 오른쪽의 원숭이 같은 동물들, 중절모를 쓴 남자, 정장차림으로 낚싯대를 잡고 있는 숙녀 등은 남녀 간의 욕망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아래의 그림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쇠라의 습작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작품이다. 습작은 1884년 제작된 것으로, 크기와 완성도면에서는 다소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의 쌍둥이 작품이다.   우연히도 신인상주의를 열었던 쇠라의 대표작 두 점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의 미술관에 있다.

쇠라, 습작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1884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이들 부부의 켈렉션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바틀렛 부부는 이 그림을 컬렉션 하면서 수집방향을 후기 인상파로 정하고, 집중적으로 이 시기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다. 애초에 미술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그림을 구입하려 했기에 후기 인상파 위주의 컬렉션을 생각하했던 것이다.


부푼 희망으로 그린 고흐의 '아를의 침실'

부부가 애정을 가지고 구입한 작가 중에는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도 있다. 그들이 구입한 고흐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아를의 침실>이다.  <아를의 침실>은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며 부푼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고흐는 아를의 침실을 세 점 그렸는데, 부부가 구입한 것은 두 번째 버전이다.


고흐는 자신의 침실을 간결하고 정돈된 분위기로 묘사하며 절대적인 휴식의 방을 표현하고자 했다.

고흐의 말이다.

“나는 흐린 남보라색 벽과 금이 가고 생기 없어 보이는 낡은 붉은색 바닥, 적색 분위기의 노란색 의자와 침대, 진한 빨강의 침대커버, 푸른색 대야, 녹색창문과 같은 다양한 색조를 통해 절대적인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다 “

고흐,아를의 침실 두번째 버전, 72x90cm,1889, 시카고미술관


(좌)아를의 침실 1버전,1889           (우)아를의 침실 3번전,1889

첫 번째 버전은 네덜란드의 고흐미술관에 , 세 번째 버전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세 작품을 비교해 보면 바닥의 색깔과 벽의 색깔, 문의 색깔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며, 무엇보다도 오른편 벽에 걸려 있는 초상화가 다르다. 독자들도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대목이다.


미술사를 바꾼 세잔의 사과

 바틀렛 부부가 구입한 작품 중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세잔의 유명한 <사과 바구니> 그림이다.

폴 세잔, 사과바구니, 캔버스에 유채,  65x80cm, 시카고미술관

폴 세잔(Paul Cézanne,1839-1906)의 사과 그림은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아름답거나 탐스런 정물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림 속 유리병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접시에 담은 과자는 유리병과는 반대로 기울어진 채 윤기를 잃은 모습이다. 왼쪽의 바구니에 담긴 사과는 사과인지 구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성의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구도상 시선의 방향도 다 제 각각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다양한 시선은 미술사에 '입체파'를 탄생시켰고, 원근법과 부피감을 나타내는 명암법을 파괴했다. 그리고 그저 보이는 사과가 아니라 본질의 속성을 가진 사과를 표현했다. 이런 이유로 세잔의 사과는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존재 자체의 사과다. 이 작품은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끌어올렸다.


기증으로 컬렉션의 역사를 쓴 바틀렛부부


이처럼 개인이 미술사에 남을 다수의 명작을 수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력뿐만 아니라 구입에는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가 합쳐져야 명작을 구입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프레데릭과 헬렌의 컬렉션은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의 중요한 컬렉션을 떠나 세기의 컬렉션이 되었다. 그들이 가진 미술작품에 대한 열정과 수집은 미래를 내다본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이들 부부의 미술에 대한 열정만큼 그들이 남긴 명화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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