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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D 미식가 May 29. 2023

[미술의 맛] 세계의 보물 겐트제단화를 아십니까?

반 얀 에이크 형제가 완성한 모나리자 보다 유명했던 세계의 보물

눈 내리는 추운 겨울, 한 소년은 그가 아끼는 반려견과 같이 성당의 그림을 보러 길을 떠난다. 관람료가 없었던 소년은 그가 평생에 보고 싶어했던 그림을 보러 성탄전야에 맞춰 성당을 찾는다. 성탄절에는 무료로 그림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소년과 반려견은 서로를 감싸 안은 채 성당의 종소리 속에 숨을 거둔다.


1970년대 말 어린 시절을 보낸 독자들이면 누구나 TV만화로 보았던 <플랜더스의 개>를 기억할 것이다. 1872년 영국의 소설가 '위다(Ouida)(본명 마리 루이즈 드 라 라메)'가 쓴 아동소설로, 우유 배달을 하는 가난한 소년 네로와 반려견 파트라슈의 우정과 꿈을 그린 내용이다

TV만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루벤스의 제단화를 보는 마지막 장면

소년 네로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가는데, 그가 일생을 통해 보고 싶어했던 그림이 바로 벨기에 앤트워프 대성당에 있는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대표작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십자가에서 풀려나는 예수를 붉은 옷을 입은 사도 요한이 두 팔을 크게 벌려 받치며 흰 천으로 감싸고 있는 이 그림은 중심부 예수의 몸에 집중되는 밝은 빛, 하강하는 모습을 사선으로 표현한 대각선 구도, 그리고 마치 예수와 한 몸처럼 엉켜 있는 주변 인물들의 역동성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다른 그림과 달리 좌우에 작은 그림들이 따로 있는 3폭의 그림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병풍 같은 형식의 그림이다. 바로 제단화다.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 패널위에 유채,4.2m*3.2m


제단화는 중세 후기부터 반종교 개혁 시대까지 카톨릭 성당의 제단 뒤를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인데,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는 반종교 개혁 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제단화다. 그림을 바라보며 경건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거나, 용서를 구하는 그림의 제의적인 기능이 강조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루벤스의 그림이 명작이긴 하지만, 플란다스의 보물 같은 그림은 따로 있다.

바로 오늘의 이야기 <겐트 제단화>이다.


플란다스의 보물, 세계의 보물 ‘겐트 제단화’

일반적으로 벨기에 겐트市에 있는 제단화라는 뜻으로 <겐트 제단화>라고 하지만, 원명은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 Adoration of the Mystic Lamb)> 또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하라(Dutch: De aanbidding van het Lam Gods)>이다. 초기 르네상스 시기인 142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432년에 완성되었으며, 플랑드르 형제 화가인 휴베르트(Hubert)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가 시작과 완성을 한 작품이다.


이 제단화가 유명한 것은 '최초의 주요 유화' 작품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이 작품을 차지하기 위해 약탈과 수난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겐트 제단화>는 유럽 미술의 걸작이자 세계의 보물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다.


이 작품은 접히는 형태로 제작되어 있어 병풍 같은 느낌의 익숙한 그림의 형태이다. 그리고 상징과 기원이 담긴 제의적인 기능의 그림이란 점에서도 우리의 병풍과 유사한 면이 있다.

휴베르트 & 얀 반 에이크, 패널 위의 유채와 템페라,1420~1432, 5.2*3.75m(앞면)

겐트 제단화는 펼친 앞면과 닫았을 때의 뒷면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은 두 개의 수직 병풍 형태로 구성되며 각 면에는 내부 및 외부에 그림이 포함된 이중 접이식 구조로 되어있다. 제단화의 크기는 가로 5.2m이며, 세로는 보통 사람 키의 두 배인 3.75m다. 크기보다 더 놀라운 것은 르네상스 초기에 유화 물감으로 이렇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해낸 기법뿐만 아니라, 화려한 색채까지 더해 숭고함을 자아낼 정도로 경이롭다.


상단의 패널은 하늘의 세계를 나타내며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 사이 중앙에는 하나님, 그리고 옆면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사들, 그리고 가장 가장자리에는 아담과 이브의 형상이 있다. 하단 패널 중앙부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두고 경배하는 성도, 죄인, 성직자 및 군인의 모습이 보인다.


아래 이미지는 제단화를 닫았을 때 뒷면의 모습이다. 뒷면 닫힌 면의 아래쪽 가장자리에 있는 남녀는 이 제단화를 '성 바보 대성당'에 기증한 15세기 초 겐트 시의 시장이었던 요스 베이트(Joos Vijdt) 부부의 모습이다. 기증자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겐트 제단화의 패널을 닫았을때 뒷면 모습

그림을 보는 독자들 누구나 느끼겠지만, 일반적인 성화와 다른 점은 과장되지 않고 사실적으로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물들의 크기와 모습이 우리가 평소에 보는 일반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플랑드르 지방의 르네상스 화풍이 신화적인 다른 유럽의 르네상스 화풍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제단화라는 특징 때문에 그림에는 여러 가지 상징들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망토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앞면 상단의 하느님 오른손이다. 들고 있는 오른손은 축복을 상징하고 있으며, 망토 옷자락에 진주가 장식된 그리스어 비문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REX REGUM ET DOMINUS DOMINANTIUM) 란 내용의 글귀를 새겨넣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입고 있는 얇은 주홍색 모직은 그 당시 직조산업이 발달했던 겐트를 비롯한 플랑드르 도시에서 생산된 옷감을 표현하고 있다.


또 뒷면 벽지 같은 황금 비단에는 펠리컨과 포도나무가 있는데, 포도나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흘린 피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펠리컨은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부리로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상징은 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구절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포도나무와 펠리칸 문양

두 번째로 주목되는 점은 앞면 상단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옆으로 합창과 악기를 연주하는 성가대의 모습이다. 이는 노래하고 연주하는 천사들을 표현한 것인데, 제단의 상단에 둔 이유는 중세 시대부터 천국은 신성한 음악의 음색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은 천사들이 날개 없이 매우 인간적으로 보인다는 점인데, 이는 작가가 알 수 없는 하늘의 격식과 지상의 격식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날개 없는 천사를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노래하는 천사의 모습

세 번째로는 제단화의 중심인물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점이다. 관람객 누구나 그림을 보는 순간 하단의 중심부에 있는 어린 양에게 눈길이 갈 것이다. 어린 양을 중앙에 위치시킴으로서 그림의 주제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양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천사들이 배치되어 있고, 어린 양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피를 흘린 예수를 상징한다.

앞면 하단 중앙부의 주제가 되는 어린양

그 밖에도 어린 양이 있는 오른쪽의 나무와 정원은 사후의 하늘 낙원을 묘사한 것으로 불멸, 끊임없는 영생 그리고 신앙의 치유력을 상징하는 상록 식물, 봄꽃 및 약초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제단화에 묘사된 다양한 유형의 클로버는 모두 세 장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삼위일체를 나타내며, 백합은 일곱 잎으로 칠해져 마리아의 일곱 슬픔과 일곱 기쁨을 상징한다고 한다.

클로버와 백합 그리고 식물들

현대에서도 이러한 놀라운 디테일과 상징을 결합한 작품을 감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15세기 유화 물감이 갓 발명되었던 시기에 이러한 장식미와 숭고함을 가진 그림을 그린 작가가 있었다니 경이로울 뿐이다.

 그는 사후 10여 년 후에 태어난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견되는 혁신의 미술가였다. 그가 바로 플란다스의 작가 '얀 반 에이크'이다.


'플랑드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얀 반 에이크

플란다스는 플랑드르 지방을 일컫는 영어식 표현으로, 르네상스 시기의 플랑드르 지방은 지금의 북부 프랑스와 네덜란드 일부 그리고 벨기에 지역을 포함한 지명이었다.

이 시기에 직조산업이 발달한 겐트와 브뤼헤, 앤트워프와 같은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으며, 그 결과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했다.

 미술사에서 북유럽은 우리가 흔히 아는 스칸디나비아 3국이 아니라,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프랑스 평원 서북쪽인 플랑드르 지역을 일컫는데, 이 지역이 바로 북유럽 르네상스를 이끈 지역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 제단화를 그린 파울 루벤스가 태어나기 200여 년 전인 15세기 초 르네상스 시기에 플랑드르 지역에는 이미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만큼 혁신적이며, 유명한 미술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겐트 제단화>를 완성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년경 ~ 1441년)다.


얀 반 에이크는 동시대 예술가 중에서는 누구도 그를 모방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술적으로나 기교적으로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가 유화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기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초로 유화 그림을 그린 것은 분명치 않지만, 그것을 대중화하고 자신의 예술적 도구로 많이 활용했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작품을 표현할 때 유화 물감을 여러 층으로 덧칠하며 그림을 그려 나갔다. 밝은색에서 어두운 색까지 최소 세 겹 이상으로 유화 물감을 엷게 덧칠하여 사물을 표현했는데, 이는 사물을 세밀하고 깊이감 있게 표현할 때 쉽게 쓰는 기법이었다. <겐트 제단화>도 이런 기법을 사용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어린 양의 그림부분 복원전(좌) 덧칠을 벗겨내고 복원후(우)


도난과 약탈로 수난 겪은 '겐트 제단화'

유럽의 모든 미술사에서 <겐트 제단화>만큼 많은 고난을 겪은 그림은 없다고 할 정도로 이 그림은 손상과 도난 및 밀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고난을 겪은 그림으로 유명하다.


첫번째 위기는 종교개혁 때였다. 16세기 중반, 겐트市의 종교는 가톨릭에서 칼빈교로 바뀌게 된다. 종교 개혁주의자들은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성상 숭배에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성상 파괴 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성 바보 대성당'의 <겐트 제단화>도 그 대상이 되었다. 다행히도 가톨릭 수사들이 종탑에 패널을 분리해 보관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1781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조세프 2세가 유명한 <겐트 제단화>를 보기 위해 겐트시를 방문하는데, 황제는 아담과 이브의 벌거벗은 묘사를 보고 외설적이라고 비판하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황제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당시의 겐트 시장은 아담과 이브의 중요 부위를 가려서 따로 보관하기도 했다.


또 프랑스 혁명 시기에 프랑스 군대가 <겐트 제단화>를 파리로 가져갔고, 최고 컬렉션 작품 중 하나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가 영국에 패배한 후에 제단화를 다시 제자리로 반환한다.


이 밖에도 1934년에는 제단화의 빈 프레임에 프랑스어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에서 가져옴"이라는 메모와 함께 세례자 요한을 비롯한 두 패널이 사라졌다. 발신자가 1백만 벨기에 프랑을 요구했고 실제로 패널을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세례자 요한의 패널을 돌려주면서 협박했다. 아직도 다른 한 패널인 '정의로운 심판관' 패널은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왼쪽에 도난당한 텅 빈 모습의 패널부분

그러나 전쟁과 종교개혁 등으로 많은 수난을 겪은 <겐트 제단화>는 그 가치만큼 세계의 보물이 되어 지난 2020년 마침내 복원을 마치고, 벨기에 겐트시의 본래의 자리인 '성 바보 대성당'에 돌아오게 되었다.


<겐트 제단화>가 끝내 제자리를 늘 찾아왔듯이, 우리의 잃어버린 해외 문화재들도 우리 곁에서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코로나를 보내고 세계가 양육강식의 야만의 시대로 접어든 이 시기에, 우리가 소망과 은총을 구했던 제단화의 의미와 그림 한 점이 주는 감동을 떠올리면서, 네로가 반려견 파트라슈와 함께 숨을 거두기 전에 했던 마지막 말을 되새겨 본다.


“파트라슈 힘들었지? 그렇지만 보고 싶었던 그림을 봐서 너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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