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기업 대리, 월급으로 말하는 나의 자리
사람은 왜 일을 하고 왜 돈을 버는가.
갖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누구나 다 그러니까 나도 따라서 그냥 돈을 버는 것 일수도 있고, 나의 원대한 꿈을 직장에서 펼쳐 승승장구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나 역시 막연히 아무 생각 없었다. 우리 집이 일 안 해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는 당연히 아니고, 내 성격상 사업을 하지는 못할 것 같고, 남들이 입사해서 돈 버니까 나도 그렇게 했다. 여러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운 좋게 이름만 대도 누구나 다 알 정도의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초봉부터 나름 괜찮았다. 내가 속한 조직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괜찮았다. 좋은 차를 타면 승차감보다는 내릴 때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인 하차감이 기분 좋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성공한 인생이라고 느꼈고 승승장구하는 장밋빛 미래와 청사진을 그렸던 시기가 짧게 있었으나 이는 나의 오만과 무지였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조직이라는 큰 수레를 굴리는 셀 수도 없이 수많은 톱니바퀴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직원들을 갈아서 굴러간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옛 말에 돈을 많이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더니만 바로 그런 양상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으로 집에 밤 11시 넘어서 도착하면 씻고 침대로 직행하여 잠만 자고 다시 일어나서 출근하는 나날들. 심한 날은 회사 내에서 자정이 지나 날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퇴근한 날도 많았다. 그나마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월화수목금이 힘들었으며, 퇴근하고 주어진 두어 시간에는 그 흔한 티비 볼 겨를도 없이 다음날을 대비해야 했다. 그렇게 주말을 맞이하면 주말 역시 무언가를 해본다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체력보충에 힘써야 했다. 요즘이야 좀 덜해졌지만 입사 초기에는 회식도 정말 자주 했는데, 10시에 문 닫고 나와서 회식 시작하면 기본으로 새벽 1시 2시가 되었고, 막차는 진작 끊겨 총알택시 잡고 집에 가면서 그냥 근처에 방 잡아 자고 바로 출근할까 싶은 생각도 여러 번 하였다.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었는데 연애할 시간은커녕 운동이나 취미생활 할 시간도 없었다. 가족과 있어도 그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기보다는 기진맥진한 질 낮은 시간들이 계속되었고 이렇게 사는 삶이 맞나 싶었다.
내 삶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며, 막말로 돈은 많이 버는데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나는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직장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일이 힘든 건 어떻게든 버티는데 사람이 힘든 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동료직원들과의 관계가 힘들거나 불특정 다수의 대고객업무를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일이 물리적으로 힘들거나 많은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지금은 사회밥을 오래 먹어 많이 나아졌지만 입사 초반에는 눈치가 썩 빠른 편은 아니어서 더욱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보상체계가 확실하다면 사람은 힘든 줄 모르고 일하게 된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보상이라 함은 직장 내에서의 시기적절한 승진이나 좋은 부서로의 영전도 포함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해보면 느껴지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공부머리가 따로 있듯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회머리도 따로 있고, 내 성격을 나타내는 MBTI 가 있다면 직장에서의 MBTI도 따로 있는 것 같다. 특별히 가시적인 성과를 낸 적은 없지만 또 동시에 특별히 뭔가 잘못하지도 않았던 평범한 사원1 이었던 나는 승진에서 한 해 두 해 밀리기 시작했고, 거대한 조직 내에서 잊혀져 갔다. 물론 나에게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내가 기회인 줄 모르고 놓치기도 했고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운 없게 성사되지 않기도 했다. 직원수가 엄청 많은 조직이라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써줄 수 없어서 내가 누락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이유로 내가 눈치 없이 행실을 잘못해 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유는 인사부만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나는 현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했고 이제 곧 40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지만 아직도 대리이다.
나는 여전히 보통의 직장인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내 위로는 내 후배들이 계속 치고 올라가고 있다. 나는 직장에서 말이 없어졌고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다 보니 점점 더 사람들의 평가에서 멀어졌고, 어느샌가 스스로를 직장 내에서 완벽히 소외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