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님에게 안부를 묻다.
어떤 인연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무너질 듯 위태로운 한 시절을 온몸으로 지탱해 주기 위해 필연의 옷을 입고 찾아온다. 내게 '숙이'가 그러했다. 그녀는 가장 미숙하던 청소년 시절을 함께 건네준 친구였다.
중학교를 시골에서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 낯선 도시 천안으로의 진학은 어린 마음을 한없이 움츠러들게 했다. 60여 명의 낯선 눈동자가 빽빽한 교실에서 숫기 없는 나는 외딴섬이었다. 시골집에서 이모가 살고 있는 대처로 오게 되었다. 중학생 사촌 동생과 좁은 방에서 생활하며 한참 사춘기인 동생과 부딪히며 번민하는 시기였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불편한 마음을 짝인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속사정을 들은 숙이는 은밀한 손길처럼 말을 건넸다. 나 혼다 자취하는데 “나랑 같이 살래?” 그 한마디는 복잡한 내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는 신호탄이었다. 발타자르 그라 시안의 말처럼, 나는 숙이를 통해 또 하나의 인생을 선물 받았다.
종갓집 맏딸이었던 숙이는 체격은 나와 비슷하고 살짝 곱슬머리와 하얀 피부를 갖고 서글서글한 눈매와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결의 삶을 살았지만, 타향살이라는 쓸쓸한 들판 위에 던져진 어린 새라는 점에서는 같았다. 우리는 아침마다 준비하는 도시락통에서 고단함이 시작되었다. 숙이 어머니는 당시 나는 처음 본 전기밥솥을 주셨고, 이모는 미안해하며 자취방을 수시로 찾아주었고 어머니들이 정성껏 채워준 일주일 치 반찬은 우리의 최소한의 양식이었다.
그 시절, 노처녀인 S 선생님은 발랄한 여고생에게 호랑이 여선생님이었다. 가정을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은 나와 친구를 꼭 집어 조리실로 호출했고, 관내 고등학교 요리 경진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여하라고 우리에게 요리를 가르쳤다. “여자는 손끝에 온기가 있어야 한다”라는 고집스러운 철학 덕분에 우리는 방과 후 조리실에서 두 시간씩 칼질을 익혔다. 담임은 숙이의 가정사를 익히 알고 뽑은 듯했다. 숙이의 칼질은 제사와 차례를 치러낸 종갓집의 손녀답게 거침없고 단단했다. 반면 나의 칼질은 서툴고 조심스러워 많은 시간 꾸중을 들었다. 그러나 반복적인 연습은 결국 오이를 돌려 깎는 데 성공했고, 우리는 겨자냉채의 알싸한 맛을 연습하며 김치볶음밥도 만들어 먹는 최고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해 가을 9월, 담임 선생님 지도하에 대전에서 열리는 고교생 요리경진대회에 참여했다. 우리가 우수상을 받으며 함께한 그 시간의 떨림은 우정이라는 이름의 완벽한 호흡이었다.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의 위상을 높인 학생이라고 칭찬받았다.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 그때 땀 흘리며 조리실에서 익힌 기본적인 손맛은 결혼 이후 새댁이 음식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기본적인 밑천이 되었다.
여름밤이면 마당 평상에 누워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읊조리던 열일곱의 우리. 숙이는 내가 도저히 넘지 못할 담장을 가뿐히 넘게 해주는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숙이의 손을 잡고 사복차림으로 몰래 극장에 들어가 장미희가 주연배우인 '성 춘향전'을 보던 짜릿한 일탈, 빵집에서 딸기우유와 곰보빵을 먹으며 수줍어하던 남학생과의 첫 미팅의 기억들….
소심했던 시골 소녀는 밝고 씩씩한 성격의 친구 덕분에 대담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으로 그 시절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나의 보호자였고, 가족이었으며, 그 시절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2학년이 되면서 대입이라는 현실 앞에 방과 후 학원 수강까지 우리는 시든 꽃잎처럼 풀이 죽어 보냈다. 졸업과 동시에 우리는 연락처 하나 남기지 못한 채 각자의 세상으로 흘러갔다. 6년 뒤,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잠시 멈췄던 열일곱의 시계를 다시 돌렸으나, 삶의 거센 파도가 우리를 갈라놓았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결혼과 육아로 폭풍 같은 시절을 보내야 하는 일상은 외부와는 단절의 다른 이름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수소문한 소식은 가슴을 치는 비보였다. 숙이는 10년 전, 긴 병마 끝에 52세 때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했다. 그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열일곱의 나는 시린 가슴을 안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야 할 시기에, 그녀는 나를 위해 등불을 켜두고 정작 본인은 너무 일찍 이승의 소풍을 끝낸 것이다. 아이들도 독립하고 시간도 많은 이 시점 여고 시절 조리실에서 호랑이 선생님 흉보며 냉채 연습하던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추억과 아픔은 늙지 않는지, 조리실의 고소한 볶음밥 냄새와 별을 세던 여름밤의 까만 하늘 아래 서늘한 공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숙이야, 그곳에선 아프지 않니?”
어떤 인연은 남겨진 한 사람을 평생 살아가는데 특별한 흔적을 남기고 스쳐 간다. 내 생의 가장 연약했던 문턱을 함께 넘어준 친구. 그녀는 내 인생을 짧게 스쳐 지나갔으나,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우정과 사랑'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먹물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