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시계
세상에서 만남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은 혼자 태어났다 혼자 떠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사이의 시간은 수많은 인연으로 엮여 있다. 처음엔 어색하고 서먹하던 사이도, 몇 번의 마주침이 거듭되면 우연은 어느새 필연이 되어 함께 걷는 사이가 된다. 산책길에서 건넨 "오늘 날씨 좋네요" 인사 한마디가 한 시간의 동행이 되듯, 인연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사소한 만남에서 관계가 시작된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도 다르지 않다.
1994년, 결혼 10주년을 맞아 미국 동부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을 두고 오랜만에 둘이 걷던 뉴욕의 거리는 낯설고도 설레었다. 여행지 면세점 유리 진열장 안에서 하나의 시계에 시선을 빼앗겼다.
금빛이 과하지 않게 흐르고, 팔찌처럼 가느다란 선이 손목을 부드럽게 감쌀 것만 같은 디자인.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 시계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집에는 결혼 예물 시계도, 여름이면 애용하는 진주 장식 시계도 있었다.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먼저 다가갔다. 하루를 망설이며 진열장 앞을 몇 번이나 오갔고, 결국 이튿날 다시 찾아가 그것을 손에 넣었다. 어떤 선택은 계산이 아니라, 마음의 끌림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그날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외출할 때면 습관처럼 왼 손목에 그 시계를 채웠다. 금빛 원이 자리를 잡으면 하루가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수영장 가는 날도, 친구를 만나는 날도, 가족과 외식하는 날도 언제나 함께였다. 비 오는 날에도, 햇살이 따가운 날에도, 기쁜 날과 눈물의 날에도, 그 작은 원 안에서 시간은 언제나 차분히 흘렀다.
화장대 위에 올려두면 조용히 숨을 고르는 듯했고, 다시 손목에 채우는 순간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그 초침은 나의 시간을 대신 뛰어주었다. 내가 시계를 찬 것이 아니었고, 시계가 나를 품고, 하루를 데려다주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여름,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서랍을 뒤지고 옷장을 열어보고 자동차 좌석 아래까지 살펴봐도 찾을 수 없었다. 괜한 의심이 일었고, 스스로를 탓하게 되었다.
다른 시계를 손목에 채워보았지만, 마음은 전혀 채워지지 않았다. 삼십 년 넘게 함께한 시간을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애착 물건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나의 한 시절이 통째로 비어버린 듯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제야 나는 그를 단순한 장신구로 여긴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 위에 쌓인 나의 세월, 가족의 웃음, 친구들과의 약속,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과 함께 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두세 달을 속상해하다 결국 단념하기로 했다. 인연이 다하면 놓아야 한다고,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으려 했다.
지난가을, 이사를 앞두고 집 안을 정리하던 날이었다. 화장대 서랍을 비우다 안쪽 깊숙한 곳에서 금빛이 번쩍였다. 손을 넣어 꺼내보니, 그 시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었구나."
시계는 떠난 적이 없었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기회도, 젊음도. 그러나 어쩌면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 밖에서 잠시 숨 고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시계를 닦으며 괜히 미안해졌다. 괜한 의심을 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조용히 고마움을 전했다.
"떠나지 않고 있어 줘서 고맙다."
작은 화장대 위에 자리 잡은 시계. 내 삶의 결에 맞춰 가족처럼 함께 늙어가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 인연처럼, 미국에서 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나는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시계는 단지 초침을 움직일 뿐이지만, 그 위에 웃음과 눈물을 얹어왔다. 이제는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는 지혜를 얻었으며 소소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앞으로도 소중한 시계를 손목에 채울 것이다. 더 많은 주름이 생기고 걸음이 느려지더라도, 남은 날들을 그와 함께 할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이렇게 인연 따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깊이인지도 모른다.
손목 위의 작은 원 안에서, 오늘도 나의 하루가 모나지 않고 둥글게 완성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