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위의 화양연화

운동에도 시절이 있다.

by 수련

작은 공 하나가 삶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2002년 봄, 골프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수영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방향을 틀었다. 물 대신 잔디 냄새를 맡으며, 파란 하늘 아래 자연 속에서 운동이 시작되었다.

10년 넘게 해 오던 수영은 정직한 운동이다.

오십 분 동안 물살을 가르면 심장은 활어처럼 팔닥거렸고, 거친 호흡과 온몸의 열감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땀과 성취감이 정확히 비례하는 운동이 끝나면 깃털처럼 가벼운 몸은 언제나 개운했다.


그러나 골프는 달랐다.

연습장에서 곧게 날던 공이 필드에만 서면 낯선 생명처럼 달아났다. 산으로 치닫고, 물에 빠지고, 엉뚱한 곳에 멈춰 섰다. 골프와 자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난다. 욕심을 낼수록 공은 더 엉뚱하게, 더 비틀어졌다. 골프가 안 되는 핑계는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제야 알았다.

골프는 힘의 운동이 아니라 균형의 운동이라는 것을.

억지로 밀어붙일수록 사춘기 아이처럼 어긋나고, 풀어 줄수록 제 길을 찾는 것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흥미를 느끼며 같은 아파트 지인의 소개로 지역 골프 모임에 들어가 회원들과 골프의 결을 배웠다.


한 달에 두 번 회원들과 필드에서 운동을 하고, 주말이면 옆지기와 라운딩을 했다. 드라이버는 시원했지만, 그린 주변에서 버벅거리며 많은 타수를 잃었다. 멀리 보내는 일보다 마무리가 어려웠다. 초년의 직진보다 노년의 안정된 삶이 중요한 인생의 삶과 닮아 있다.


홀컵은 내 마음의 크기와 기분에 따라 달라졌다.

잘 풀리는 날은 그린 위의 구멍이 크게 보였고, 조급한 날은 바늘귀처럼 좁았다. 변하는 것은 홀컵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눈이 문제이다. 욕심이 앞서면 공은 달아났고, 힘을 빼면 소심하게 가다 정지한다. 적당한 간격과 힘조절, 작은 공을 통해 나를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매년 겨울 운동을 못하는 계절에는 치앙마이로 숙녀회 회원들과 골프 여행을 다니며 하루에 36홀을 돌면서 대단한 열정으로 푹 빠져 지냈다.

입문 3년 반이 흐른 5월의 봄날. 정규모임으로 기흥 골드 CC에서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바람이 잔디 끝을 낮게 눕히고 있다. 손끝은 차가웠지만, 머리는 맑았다.

“편하게 치세요.”캐디는 조용히 응원한다.


나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스윙은 가벼웠고, 공은 망설임 없이 허공을 갈랐다. 나이스 샷!

첫 홀, 파 4홀에서 파를 했다.

두 번째 홀은 파 5. 롱홀은 늘 욕심이 앞서던 홀이다. 그날은 마음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스윙을 했다. 두 번째 샷이 그린 앞에 떨어졌고, 어프로치는 홀컵 곁에 붙었다.

짧은 퍼트.

공이 천천히 굴러 홀 가장자리를 스치다 ‘툭’ 하고 사라졌다.

버디.

환호가 터졌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흥분은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후 18홀까지 홀들은 하나의 흐름이었다.

드라이버는 과하지 않았고, 우드는 그림같이 안정감으로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아이언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공은 바람과 다투지 않고 타협했다. 그린에 오르면 퍼트가 자석에 끌리듯 길을 인도했다. 홀컵은 유난히 넓어 보였다.


오직 지금, 이 샷에만 집중했다.

마지막 퍼트를 앞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려 했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의식적으로 힘을 풀었다.

그린 위 공이 내손에서 떠나갔다.

햇빛을 받은 흰 공이 잔디 위를 조용히 미끄러지더니, 마침내 홀컵 안으로 사라졌다.

78타. 싱글이라고 했다.


스코어카드의 숫자가 낯설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샴페인이 터지고 축하와 박수가 쏟아졌다.

내 안에 먼저 자리한 감정은 기쁨보다 놀라움이었다.

그날은 자연스럽고 호쾌한 샷과 정교한 거리조정, 자석처럼 끌려가는 홀인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온화한 날씨와 바람, 자연이 허락한 하루였다. 내가 공을 이긴 것이 아니라, 힘을 뺀 순간 공이 나를 받아준 것이었다.


가장 높은 점수는 욕심을 버린 날 찾아왔다.

그러나 봉우리는 오래 머무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후 더 좋은 스코어는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있다”라는 기억이 다시 몸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어깨와 목이 굳어 갔다. 병원 치료를 해야 했다. 한 방향으로 골프채를 휘두른 시간의 대가였다.


의사는 말했다.

“한 방향으로만 쓰는 운동은 오래 하기 어렵습니다. 잠시 쉬세요.” 몸에 부담이 덜한 수영을 하라고 권했다. 지난날의 영광, 아니 열정의 순간을 뒤로하고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왔다.

물속에 몸을 맡기자 통증이 사라진다. 자유형으로 숨을 고르고, 배영으로 하늘의 구름을 보며, 평영으로 깊게 전진했다. 수영으로 멋을 부리고 싶을 때는 접영으로 날아올라 주변의 시선을 끌곤 한다. 운동도 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이 맞아야 인연 따라 가능하다.


골프와 함께한 지난 시절은 거대한 자연의 잔디 위에서 보낸 나의 화양연화였다.

작은 공 하나에 웃고 울며 나는 욕심과 균형을 배웠다.

인생은 멀리 보내는 경기가 아니다. 오랜 시간 방향을 잃지 않은 채 깊고 다양하게 확장해 가는 일이다.

그 확장은 힘을 더하는 데 있지 않다.


오늘도 물 위에 몸을 띄운다. 운동도 인연 따라 건강상태에 맞게,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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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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