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사월

몸에 남아 있는 탄생의 기억

by 수련

벚꽃은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화사하게 핀다. 그러나 보는 느낌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4월이 오면 나는 꽃보다 먼저 그날의 냄새를 떠올린다. 소독약과 땀, 그리고 막 세상에 태어난 작은 몸에서 풍기던 뜨거움. 그것이 4월의 진짜 냄새인지 모른다.


예정일을 넘긴 불안을 몸 깊숙이 안고 병원으로 향한다. 10분 간격으로 오는 통증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공휴일 거리는 한산했고, 택시 안에서 부푼 배를 움켜잡고 창밖으로 흘러가는 봄을 바라보았다.


첫아이를 낳던 날은 식목일이다. 80년대 중반, 온 나라가 나무 심는 행사를 하는 날, 나는 신촌 세브란스의 분만 대기실에 누워 산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다.


대기실에는 2~3명의 산모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통을 견디고 있다. 소리를 지르는 이, 남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는 이. 참을성이 많은 나는 이를 앙다물고 숨을 고르며 여섯 시간을 버텼다. 태어날 아이가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정상이기를 기도하며 창밖의 흔들리는 연둣빛 아기잎을 바라보았다.


오후 두 시. 산통으로 인상을 찡그리며 꼭 감은 눈에 별이 몇 번 번쩍이고 응애 하는 첫울음으로 아이는 세상으로 나왔다. 뜨거운 체온을 품은 작은 몸이 내 가슴 위에 놓였을 때, 눈물은 몸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생명이 탄생한 경이로움, 문득 떠오른 어머니. 남편도 울고, 아이도 울고, 같이 울었다. 우리는 잠시 그 울음 속에서 하나였다.


딸이었다. 태몽이 큰 독수리였고, 부른 배의 몸태가 두리뭉실하다고 아들을 품은 배라며 시댁은 아들을 기다렸었다. 친정어머니는 방에 들어서자 "아이고, 어쩐다느냐"를 되풀이했다. 새 생명이라도 손이 귀하다는 집이라 아들인지, 딸인지에 따라 집 안의 공기가 달라지던 시절이었다. 시댁 식구의 그 미묘한 침묵의 결은 짧은 시간이고, 20년 만의 집안에 찾아온 새 생명 덕분에 귀여운 거짓말이 난무하며 웃음꽃이 피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아들에 대한 압박은 열 달 동안 내 곁을 따라다녔다. 시어머니는 친지 모임에서 돌아오면 "누구네 이번에 손자를 보았다"는 말을 은근히 흘리셨다. 밥상을 남자와 여자 따로 차리던 집, 아들과 딸이 다른 세계에 속하던 집. 나는 가족 몰래 철학관을 찾아가기도 하고, 바늘을 실에 매달아 손 위에서 흔들어 보기도 했다. 그 손끝의 흔들림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던 것은, 그만큼 혼자 감당하는 무게가 무거웠기 때문이다.


4월 3일, 아들이 태어났다.


그날의 분위기는 첫아이를 낳던 날과 선명하게 달랐다. 남동생을 봤다며 딸아이를 특별히 더 예뻐했다. 온 동네 친지들이 몰려왔고, 집 안에는 웃음소리가 대문 밖으로 넘쳐흘렀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4월 초순은 해마다 떠들썩했다. 두 살 터울이지만 이틀 차이인 남매 생일파티는 유치원 때부터 자연스럽게 합동으로 치르고, 집 안은 아이들과 친구의 엄마들로 가득 찼다. 축하 노래도 두 번, 케이크 두 개, 촛불이 두 번 켜지고, 웃음과 소란이 겹치며 생일파티로 매년 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엄마, 내 생일은 따로 하면 안 돼?"

차분하고 신중한 아이의 요청이었다. 이틀 빠른 동생 생일에 묶여 있던 아이, 자기만의 특별한 하루를 갖고 싶었다고 했다. 식목일이라 친구를 부르기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딸은 고집스럽게 본인 날을 원했다. 결국 가장 친한 친구를 데리고 롯데리아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그 시절 초등학생에게 햄버거집 생일 파티는 꽤 특별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마흔이 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몫을 하며 살아간다. 4월의 집 안은 더 이상 북적이지 않는다. 지난해, 아들이 낳은 손자가 4월 7일에 선물처럼 세상에 나왔다. 특별한 인연으로, 집안의 아이는 모두 꽃 피는 4월 초순에 태어났다. 손자는 좋은 날, 좋은 시를 선택하여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무거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개나리 피는 노란 봄날에.


올해 4월, 딸의 생일날 밥을 먹으며 어린 시절 생일 파티 이야기를 나눴다. 딸은 합동으로 하는 게 싫었다는 얘기를 아직도 했다. 아들과 손자는 해외에서 살고 있어 영상통화로 축하했다. 작은 화면 속 손자의 얼굴이 잠시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자식들 생일이 다가오면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7월에는 언니, 나, 남동생 세 명이 몰려 있어, 특히 몸이 고단하다고.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몰랐다.


올봄은 유난히 몸이 무겁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손마디가 뻐근하고, 몸이 부어 있다. 아이들 생일이 몰려 있는 4월이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몸 안 어딘가에 새겨진 진통의 기억, 탄생의 떨림. 그것이 해마다 4월이면 조용히 깨어나는 것이다. 잊히지 않는 문신처럼.


봄꽃은 올해도 같은 자리에 피었다. 지나온 것들과 견뎌낸 것, 그 모든 것 위에 피어난 것. 꽃은 매년 새로 피지만, 나무는 오래된 자리에 있다. 생일은 매년 오지만, 소중한 생명을 낳은 기억은 몸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4월은 특별한 인연이 찾아온 생일 주간이고, 오래된 기억이 숨 쉬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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