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퇴직하면 한가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맞이한 첫 월요일, 시계 초침 소리마저 낯설 정도로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이른 아침 커피도, 펼쳐 든 신문도 마음을 채우지 못했다. 텅 빈 집 안엔 적막만이 가득했고, 가끔 그 적막이 내 가슴을 눌렀다. 그냥 걸어 나온 길, 발길이 멈춘 곳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낡은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선 그 순간, 종이 냄새와 먼지 섞인 공기가 나를 따뜻하게 감쌌다. 책장에 빼곡한 책들이 “나를 선택해 줘” 속삭이는 듯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권을 집어 들었고, 그날 이후 나는 도서관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문득 중학생 시절,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고 교지에 실린 일이 떠올랐다. 어린 날의 꿈이 다시 심장에 불을 지폈다. ‘나도 다시 글을 써볼 수 있을까?’ 그 물음은 곧 행동으로 옮겼다. 평생학습관의 글쓰기 수업에 등록하며, 조심스레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 낭독 시간, 서툰 내 글을 소리 내어 읽는 일은 옷을 벗기는 듯 민망하고 두려웠다. 하지만 작가님이 건넨 한 마디, “쉽게 읽히고, 진정성이 있습니다.” 그 짧은 응원이 내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폈다.
2024년 12월 16일, 오랜 고민 끝에 브런치스토리 작가 신청을 했다. 하루 만에 도착한 승인 메일.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손끝에 닿는 문장은 따뜻했고, 마치 내가 지나온 시간이 한 줄 한 줄 인정받는 듯했다. 이른 봄, 얼어붙은 땅을 뚫고 피어난 새순처럼 반짝이는 기쁨이었다.
그 후, 나는 일상의 틈마다 글을 심었다. 산책길의 햇살, 샤워 중 스친 단어, 아침에 잠에서 깬 감정들까지 조각들이 흩어진 순간들을 주워 담아 문장으로 엮었다. 8개월 동안 주 1회 글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지켜내며 50편이 넘는 글을 썼다. 물론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때론 부담에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고, 피곤함에 지쳐 키보드 앞에서 졸기도 했다. 하지만 브런치 작가들의 라이킷과 공감 댓글, “글을 읽고 저장했습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다시 보려고.” 그 말 한 줄이 다시 나를 글 앞으로 불러냈다.
지금은 브런치 북 《그리운 음식 이야기》를 연재 중이고, 언젠가 에세이집과 단편소설 출간이라는 꿈을 품고 있다. 브런치 작가 활동 덕분에 새로운 길도 열렸다. 평생학습관 ‘무지한 스승’ 프로그램 기획단으로 참여하며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전문 강사는 없지만, 학습자들이 각자의 글을 나누며 진심 어린 공감을 주고받는 시간은 놀라울 만큼 깊고 따뜻하다. 간호사, 전업주부, 은퇴한 교직자 등 서로 다른 삶의 색이 모여 작은 파장을 만든다. 그 안에서 글동무가 곧 스승이 되는 힘을 믿는다. 다음 달엔 ‘브런치스토리 작가 되기’ 수업도 기획하여 4주 정도 직접 운영할 예정이다.
요즘은 피천득의 『인연』을 읽으며 투명하고 순수한 문장을 꿈꾸고,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을 필사하며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믿는다. 내게 글쓰기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길이자, 감정을 치유하는 시간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다리다.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긴장된다. 그러나 그 긴장 속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법정 스님은 말했다. “버리고 떠나야 새것을 채울 수 있다.” 불필요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오늘도 작은 씨앗 같은 문장을 한 줄 심는다. 언젠가 그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바라며 내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하며 위로가 되고, 봄바람처럼 따뜻한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