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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글쓰기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

by 수련

아침 공원은 오늘도 연둣빛 숨결로 나를 맞는다.

잎사귀 끝에는 아직 영롱한 물방울이 매달려 있고, 바람은 그것을 떨어뜨릴 생각이 없다.

열대야로 지친 밤을 보내고, 새벽 일찍 걸으며 마음을 다독인다. 녹턴의 잔잔한 건반 소리가 귀를 적시고, 여섯 시 반의 공기는 갓 짠 우유처럼 맑다.


뜨거운 해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 30분 남짓 걷기를 하고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한다. 굳은 몸을 풀기 위함이지만, 그보다 불볕더위로 후덥지근한 기분을 하늘을 향해 가슴을 쫙 펴고 날려 보내고 싶어서다.


넓은 잔디 위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그림 처럼 흩어져 있다. 무심한 눈빛 속엔 자유가 묻어 있다. 사람이 와도 움직임이 없다. 그런데, 산책로에서 조금 떨어진 잔디밭 한가운데,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인 검은 물체 하나가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처음엔 바람에 날린 비닐봉지인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것은 지친 날개를 바닥에 묻은 작은 새였다.


오목눈이 참새. 흰 털과 검은 털이 섞인 머리, 작은 날개, 몸집에 비해 긴 꼬리. 고양이의 날카로운 시선에 눌려 숨조차 가쁘게 쉬고 있다. 내 인기척에 놀란 순간, 그 작은 몸은 필사의 날갯짓으로 나무 위로 솟구쳤다. 고양이는 미련을 담은 눈빛을 보내다 풀숲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공원 끝자락으로 연결된 작은 동산의 숲 속은 밀화부리, 뱁새, 까치, 까마귀의 노랫소리와 풀벌레의 울음으로 시끌벅적하다. 숲 속에도 생존의 기싸움이 있다. 직박구리 한 쌍이 청설모 한 마리를 집요하게 몰아세운다.

직박구리는 청설모가 나무 위로 오르면 위에서, 내려오면 아래에서, 구역을 정하고 끊임없이 날카로운 소리와 날갯짓으로 위협한다.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다, 결국 지친 청설모는 숲을 벗어나 인도로 내달린다. 직박구리는 그제야 날개를 접는다. 이긴 쪽의 환호보다 진 쪽의 거친 숨소리가 오래 남는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아침 공원도 멀리서 보면 짙은 녹음과 고요가 평화롭다. 매미와 풀벌레의 화음, 벌과 나비의 바쁘면서도 한가로운 날갯짓, 여름꽃의 대표인 큼직한 얼굴로 인사하는 목수국, 꾸불꾸불 닭 볏을 닮은 맨드라미의 선명한 붉은빛이 어여쁘다. 그러나 그 속살은 다르다. 그 평화는 얇은 껍질이다.



고즈넉한 풍경의 이면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치열한 투쟁이 있다. 강자는 약자를 노리고, 약자는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숨고 달아난다. 그 숲 속의 난투극을 바라보니,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인생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각자의 고양이에게서 달아나야 하고, 또 다른 직박구리를 견뎌내며 산다.

삶은 늘 경쟁과 도전 속에 있고, 때때로 나무 위로 도망쳐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 필요한 건 날개가 아니라, 날아오르겠다는 강한 의지다.


산속의 밤송이는 말한다.

살아내라. 숨이 차도, 겁이 나도.

살아내는 것만이 오늘을 내일로 데려간다.

때로는 용감하게, 때로는 숨 가쁘게 반드시 살아내야 한다.


숲 속 길에서 굴 참나무는 내게 속삭인다.

불볕더위에 숲속에는 예민한 친구가 많다고,

이 또한 지나가면 평화롭고 풍성한 계절이 온다고.

소중한 오늘, 버티고 견디며 잘 살아내라고….

참나무.jpg 가을을 준비하는 밤송이와 도토리
도심 작은 숲 속의 다양한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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