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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글쓰기

기분 좋은 선물

by 수련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왔다. 제목은 “스토리 크리에이터 선정 및 응원하기” 전체 공지겠거니 했다. 요즘 많은 메일이 이것저것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작가님, “스토리 크리에이터”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괜히 메일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정말인가 다시 천천히 읽어본다. ‘나야 내가’ 무슨 일이지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거린다. 아싸!! 오랜만에 붕 뜬 몸이 몽실몽실 하얀 구름 위를 걷는다.


정년퇴직하고 3개월쯤 됐을 무렵이다. 집에서 편안하게 쉬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허로운 마음은 자꾸 어딘가를 서성거렸다. 회사에 다닐 때는 업무에 집중하느라 자연스럽게 책을 멀리했는데 시간이 많다 보니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보기로 마음먹고 동네 도서관이라는 정거장에 멈춰 섰다.


좋은 책은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고, 처음 만난 연인처럼 설레며 떨리는 존재다. 3개월 정도 도서관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문장들 사이를 걷다 어느샌가 ‘나도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움텄다. 봄날 씨앗이 흙을 밀어내며 빛을 향해 움트는 몸부림 같았다. 한 줄 문장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요동치는 마음을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지만, 막상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글쓰기의 기본을 배우고 싶었다.


정보검색을 하다 평생학습관의 ‘내면 글쓰기’라는 수업을 알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온라인 수업으로 매주 한 편씩 글을 밴드에 올린다. 작가님이 한편을 선정해 수업하는 날 글쓴이가 낭독하는 방식이다. 수강생들이 서로의 글을 미리 읽고 조심스레 의견도 주고받았다. 각자의 느끼는 감정을 나누는 합평 시간은 서로에게 글을 쓰게 된 이유와 목적을 공유하고 생각의 다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두려웠다. 두서없이 처음 쓴 서투른 글을 남 앞에 내보이는 일은 모르는 사람 앞에서 옷을 벗는 것보다 더 낯부끄럽고 아찔한 일이었다. 수업 시간 매콤하거나 씁쓸한 첨삭을 주고받는 시간은, 때론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깊이 있는 문학에 대한 토론의 방이었다. 수업을 이끄는 작가님이 맨 처음 나의 글에 대한 한 마디 “쉽게 읽히고 진정성이 있으며 따뜻한 글이다, 조금 다듬으면 아주 좋은 글이다”라는 평을 해주었다.


한겨울의 찬바람 속에 피어난 작은 불씨처럼 따뜻한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작가님과 함께하는 글동무 23명의 응원 덕분에 8주 동안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지난해 12월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주 1회 글을 올리면서 30여 편의 에세이를 발행했다. 5개월이 지난 지점인 지난주 '스토리 크리에이터' 란 배지를 선물로 주셨다. 이번에 받은 ‘스토리 크리에이터’라는 이름표는 책상 앞에서 힘겨웠던 시간에 대한 격려와 보상이라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빈 화면 커서만 깜박깜박, 한동안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하고 편두통이 뇌세포를 조여 온다. 심호흡을 하며 맨손체조로 10분 동안 몸을 이완시킨다. 제일 좋아하는 조개모양의 길리안 초콜릿 한 개를 커피와 함께 오물거리면 금세 편안해지면서 달뜬 기분이 될 때처럼 특별한 선물이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만난다. 피천득의 『인연』, 은유의『쓰기의 말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안정효의 『글쓰기 만 보』를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정독한다. 여기 나오는 문장들은 글을 쓰는데 많은 조언과 에너지를 주고 있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은 104개의 유명인 (데이비즈 실드, 프리드리히 니체, 마리아 릴케, 노희경 등)의 쓰기에 관한 문장을 발취하여 작가의 생각을 풀어낸 글이다. 제목처럼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필사하며 읽은 책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동경한다. 독자가 봐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을 쓰는 작업은 무료한 나의 일상 중에 내가 살아 있다는 긴장감과 건전한 스트레스로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는다. 말이 된 감정이 문장이 되어 종이에 남을 때, 내가 있는 자리를 확인한다. 글 동무들이 내 글을 읽고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 그림으로 연상된다’라고 평을 한다. 또한 글이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날것의 거친 표현이 없어 아쉽다는 평을 해준다.


글 동무들의 진솔한 피드백은 여린 마음에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지만, 지적질 또한 글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덕목이다. 서로를 응원하고 칭찬하는 것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게 만드는 시간이 된다. 때론 글을 써야 하는 부담감이 머리가 아프고 안구 건조증으로 실핏줄이 터져 빨간 토끼 눈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글 속에 내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글 동무들은 최고의 스승이다. 독자에게 공감 가는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해 소나기를 맞고 태풍에 생채기가 나도 후시딘을 덧 바르며 든든한 글의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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