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반자
나의 주방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냄비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물건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자주 그 냄비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오늘은 뭘 끓일 건가요?’ 묻는 게 아니고 ‘괜찮으세요?’ 같은, 슬며시 안부를 묻는 소리.
독일에서 건너온 스테인리스 냄비는 같이 생활한 지 서른다섯 해가 지났지만, 주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은색의 아무 무늬가 없는 손잡이가 붙어있는 무게가 좀 나가는 스테인리스 냄비는 밑바닥이 1.5cm 정도 두껍고 뚜껑에는 동그란 온도계가 유리 안에 들어있어 끓는 기점을 화살표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예열이 잘되고 두꺼워서 잔열로 뜸을 들일수 있다.
그동안 집을 세 번 정도 이사를 했고, 집이 바뀔 때마다 집 안의 물건들이 하나둘씩 바뀌었다. 냉장고는 10년 주기로 새로 구입을 했고, 세탁기에는 이제 버튼이 더 많아졌고, 텔레비전은 벽걸이형으로 변화했다. 유치원생이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독립해서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강산이 세 번 정도 바뀔 동안 이 냄비와 함께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30대 초반의 젊은 엄마에서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중년이 되어 이제는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어야 할 때가 되었다. 저 주방 싱크대 위에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은빛의 냄비, 독일 출신의 묵직한 냄비 3형제처럼 느긋하게 변함이 없이, 아무렇지 않게, 이 삶이 당연하다는 듯, 내 삶 한복판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일상의 동반자이다.
냄비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초보 엄마 시절, 결혼 전 요리를 해본 적 없어 거의 단품 요리를 하던 상황이라 TV에서 하는 요리 강습을 노트에 적으며 요리실력을 키우던 때이다. 건강프로그램에서는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각종 냄비와 법랑 냄비에서 환경 호르몬이 나와 건강을 해치고 뼈가 약해진다는 말이 유행처럼 들려왔다. 귀가 얇은 나는 난초가 그려진 예쁜 법랑 냄비와 라면을 즐겨 끓이던 노란 양은 냄비를 버려야 했다.
1990년 5월의 봄날, 이웃집 아주머니 부름에 들어간 거실에는 동네 친구분 5명이 앉아 있었다. 거실바닥에는 수입품 독일 냄비를 펼쳐놓고 빠르게 음식을 만들어 시식하는 방문판매 현장이었다. 보들보들 노란 계란찜도 만들고 물 없이 뚝딱 만들어내는 잡채와 약식 등 몇 개의 요리 과정을 보여주고 시식을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여 튼튼한 독일제 스테인 냄비로 교체한다고 구매를 했다.
앞치마를 두른 낯선 판매원의 유려한 말솜씨와 아주머니들의 바람에 이끌려 전골냄비와 국냄비, 작은 냄비등 한 세트를 들여놓았다. 그 시절 남편 월급의 절반이 넘는 큰 금액이었다. 판매자는 6개월로 나누어서 지로 납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냄비만 있으면 요리가 잘될 것 같았다. 아니, 조금은 불안했던 내 요리 솜씨에 기대고 싶은 무언가가 필요했던지도 모르겠다.
유해 물질이 없다는 안심 속에 튼튼한 냄비는 다양하게 사용했다. 작은 냄비는 굴밥이나 콩나물밥, 계란찜을 만들고, 중간 냄비는 국수를 끓였다. 전골 냄비는 명절이면 갈비찜과 잡채를 만들었다. 가족의 생일엔 미역국을 끓이고, 누군가 아플 땐 흰 죽을 끓였다. 시골에서 엄마가 보내준 한약을 중탕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사골국이 끓어오르다 눌어붙기도 하고, 넘치기도 했지만, 냄비는 지금껏 단단히 버텨줬다.
그 후로도 녹즙기, 훈제기, 식빵 제조기 등 호기심에 주방기기들을 다양하게 사들였지만, 처음에는 몇 번 사용하다가 석 달도 못 되어 창고로 들어가거나 싱크대 수납장 안으로 숨었다. 때론 사서 먹는 식빵이 저렴하다고 이유를 대고 어떤 것들은 버려야 할 핑계를 대며 떠나보냈다. 하지만 냄비에는 변덕을 부리지 않았다.
1990년대 독일에서 만들어졌지만 요즘 인덕션에도 사용이 가능하고 아직도 문제없이 잘 쓰고 있다. 묵은지 같은 은근한 정이 간다. 냄비는 사람과 닮았다. 너무 뜨거우면 타고, 너무 차가우면 익지 않는다. 적당한 예열과 기다림, 그 온도의 조율이 중요하다. 그것이 삶이고, 사랑이며, 관계다.
냄비는 내게 말 없는 든든한 조력자이며 친구다. 새것처럼 반짝이진 않지만, 시간이 낸 윤기가 있다. 그 속엔 아이의 웃음, 아침의 분주함, 때론 소리 없는 눈물도 함께 끓었다. 냄비를 조용히, 정성껏, 마치 친구의 등을 쓸어내듯이 닦는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랬으면 좋겠다. 쉽게 흥분하여 뜨거워지지 않고, 권태기를 겪으며 의욕이 식지도 않으며, 오랜 시간 곁을 지키는 존재처럼 진중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게 결국, 세상을 살아내는 방식 아닐까. 닦을수록 빛나는 건 금속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스며든 시간과 마음 때문이다.
오늘도 심란할 때는 냄비를 닦으며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어제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그리고 내일도, 그 은빛 그릇에 마음 한 조각을 담아 조용히 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