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CCO Sep 08. 2023

문화유산의 보호와 향유, 그 경계에서

문화유산은 사람과 자연, 인간과 문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그러나 일부 문화유산은 더 이상 사람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그저 ‘보호’받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혹은 제한적으로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는 문화유산을 만나보고, 문화유산이 가지는 가치를 최대한으로 지키기 위해 보호와 향유, 그 경계의 적정선이 어딘지 알아보자.



1년에 한 번, 석가탄신일마다 개방되는 석굴암

석굴암 내부 (C)한국관광공사

석굴암은 고대 불교예술과 한국 사찰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불교 유적이다. 석굴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장부의 둥근 돔 형식이다. 신라인들의 과학과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굴암 내부로 들어가 이러한 돔 형식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일 년에 딱 하루, 석가탄신일밖에 없다. 왜일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돔을 보수공사한 모습 (c)신라문화진흥원


그 이유는 석굴암의 설계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복원에 있다. 일제강점기 문화유산 복원에 대한 무지로 석굴암은 콘크리트 건축물이 되었다. 내부의 결로현상을 막아주던 자연 샘물 또한 외부 배수관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증기 세척으로 인한 조각 훼손, 에어컨 설치로 인한 화강암 손상으로 결국 석굴암은 내부관람이 제한되었다. 지금은 유리벽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정면의 본존불상만 멀리서 볼 수 있다.


이는 석굴 내벽의 불교 조각, 돔 형식을 직접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뛰어난 예술성과 기술력으로 인정받았는데, 대중들은 그 가치를 직접 확인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유리 속에 갇힌 원각사지 십층석탑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정교한 조각과 고유의 형식을 볼 수 있는 국보 문화유산이다. 경천사지를 모방한 아자형 구조, 석탑에서 보이는 목조건축 양식, 화강암을 활용하는 대부분의 석탑과 달리 대리석을 활용한 모습은 원각사지 십층석탑에 이국적이고 이색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1999년부터 거대한 유리 보호막에 씌워져 있다. 비바람, 비둘기 배설물 등으로 대리석 손상이 심해, 보호를 위해 전문가들이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유리 보호막은 빛의 반사, 얼룩 등으로 관람객의 세밀한 관람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보호’에는 성공했지만,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확인하며 상호작용할 기회는 줄어든 것이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원각사지 십층석탑(좌)와 현재 원각사지 석탑의 모습(우)  (c)국가문화유산포털


6층으로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석탑은 독특한 구조와 역사적 가치를 가진 우리나라 최대, 최고의 석탑이다. 3탑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 1층 내부의 十자형 구조와 사각형 돌이 수직으로 4층까지 쌓아올려진 탑 중심부는 다른 석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특히 미륵사지 석탑에서 보이는 목조건축의 특징은, 목조건축에서 석조건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을 잘 보여주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본래 9층이지만 6층으로 복원되었다. 상단부 부서진 부분도 그대로 남겨두었다. 추정에 의한 복원이 문화유산이 가진 역사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덕분에 미륵사지 석탑은 불완전하지만, 천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사람들 곁에 남아있다.

복원 전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좌)와 복원 후 모습(우)  (c)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유산의 보호와 향유, 그 경계에서

‘문화유산 보존’은 단순히 문화유산을 역사적 기록물로서 보호한다는 의미를 넘어, 그 의미와 가치를 후대에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훼손 방지를 위해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느낄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 진정 ‘보존’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일까? 이 ‘보호’의 방법이 결국 문화유산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는 결과를 야기하진 않을까.


경복궁 별빛야행 (c)한국문화재재단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궁궐 행사로 사람들은 궁궐을 더욱 친근하게 느끼고, 그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궁궐 방문이 역사 탐방인 동시에 우리들의 문화생활이 된 것이다. 궁궐 행사를 통해 과거의 사람들이 그랬듯, 궁궐은 다시금 사람이 살고, 즐기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 생과방, 덕수궁 밤의 석조전 등 인기 행사들은 현재의 사람들에게 과거 사람들의 생활양식,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를 통해 궁궐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이 되어, 더 큰 의미와 기억을 가진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그러나 문화유산 자체의 보호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문화유산 원형의 보존이 선행되지 않으면 인간과의 상호작용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화유산을 향유하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일까?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향유하는 방법

창덕궁 후원 연경당 (c)연합뉴스

먼저 문화유산 원형을 보존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고, 그 안에서 최대한 문화유산과 상호작용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유리 보호막을 설치하되 얼룩 제거, 돋보기 설치 등으로 관람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미완성인 채로 남더라도 정확한 원형을 남겨 제대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방, 관람이 제한된 문화유산을 볼 기회가 생겼을 때, 잊지 않고 방문하여 최대한 문화유산을 즐기는 것이 핵심이다.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만큼 놓치지 말고 직접 문화유산을 경험하고 확인하며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문화유산은 사람들 기억 속에 계속 머물며 새로운 역사를 품은 채 진정으로 ‘보존’될 수 있다.

.

YECCO 예코 콘텐츠기획팀 차누리


작가의 이전글 폐허를 세계유산으로 만든 '기록'의 정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