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특색을 담은 차례상 이야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에서의 추석은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기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은 모두 하나와 같지만, 산지, 해안, 평야 등의 여러 지형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차례상을 올린다. 지금과 같은 차례상이 있기까지 차례가 걸어온 여정을 살펴보고,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차례 음식들에 대하여 알아보자.
‘차례’는 ‘차를 올리는 례’라고 하여 본래 약식 제사의 성격을 띠었다. 고려 말 주자학이 전래되며 제사 문화가 함께 도입된 것이다. 다만 고려는 불교사회였기에 조선에 들어서야 민간에 장려되었다. 처음부터 제사가 보편화되었던 것도 아니다. 조정의 중신과 일부 양반 사이에서만 행해지다가 조선 중기 이후 평민들에게도 일반화되었다.
조선 중기 처음 제사 문화가 보편화될 쯤에는 원래 의미에 따라 차례상이 소박하고 정갈했다. 햇곡식, 과일, 송편이나 토란국 등을 올려, 한 상 가득 차리지 않고 기존에 있는 음식 몇 가지를 활용하는 형태였다.
그렇다면 ‘홍동백서’, ‘조율이시’와 같은 규칙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유교고문헌에 ‘홍동백서’나 ‘조율이시’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실제 조선의 유교 예법에 큰 영향을 미친 『주자가례』에서 주희는 ‘그때 나오는 제철음식을 올려라’라고 했다. 『격몽요결』의 율곡이이 또한 ‘계절에 맞는 음식을 형펀껏 올려라’라고 설명한다. 이밖에 『가례집람』, 『사례편람』에서도 차례상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현재 널리 알려진 차례상 규칙은 1943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의례준칙’에서 차례상에 대해 규정하며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1969년 민속종합보고서에서 ‘홍동백서 등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라고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 일제강점기부터 차례 규칙에 대한 개념이 전승된 것이다. 이에 더해, 가문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점점 제사상과 차례상의 음식 가짓수가 늘어나며 한 상 가득 찬 화려한 차례상이 탄생했다.
2022년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설날과 추석의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발표했다. 음식 수도 최대 9가지면 충분하고, 음식 순서 없이 편하게 배치하면 된다. 초기 차례상의 모습으로 돌아가 차례 음식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각 가정의 결정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각 지역에서는 고유한 전통을 고수하며 지역의 개성이 물씬 드러나는 차례상을 차린다. 간소화된 차례상을 적용하기에 앞서, 각 지역의 특별한 차례 음식들을 살펴보며 당신이 속한 지역의 오랜 전통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동시에, 산이 국토의 반을 넘게 덮고 있는 우리나라. 산과 바다는 물론 평야와 갯벌까지, 없는 지형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만큼 교통·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조상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의 힘을 빌려 차례상을 차려왔다. 규칙에 따라 범 지역적으로 반드시 올리고자 했던 음식들도 있었지만, 동시에 특정한 환경의 영향을 받아 차려진 특색있는 음식들도 이어져 내려왔다. 지역별 전통을 반영한 특별한 차례 음식들에 대하여 알아보자.
내륙 지방인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는 전이나 고기 반찬과 더불어 통북어나 굴비 같은 마른 생선을 올린다. 북어의 재료가 되는 명태는 알을 많이 낳아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북어의 눈알이 잡귀를 물리친다고 여겨지기에, 머리까지 달린 통북어를 상에 놓는다.
육지와 바다에 두루 둘러쌓인 충청도는 인접한 지역에 따라 제수가 달라진다. 경상도와 가까운 곳은 건어물을, 내륙지방에서는 배추전을 올린다. 서해안 인근에는 우럭포를 올리기도 한다.
비옥한 평야가 펼쳐진 전라도에서는 풍부한 식재료와 다양한 조리법이 활용된다. 양념장을 올리지 않은 참꼬막 데침과 홍어가 전, 찜, 회 등의 형태로 상에 놓이기도 하고, 특유의 향이 강한 홍어를 대신해 가시가 적고 살이 많은 병어가 올라가기도 한다.
산간 지형이 많은 강원도는 감자와 산나물을 이용한 차례 음식이 많다. 감자전, 감자 송편, 메밀전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강릉과 같이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명태전과 같은 해산물을 활용한 음식이 놓이기도 한다.
바다와 가까운 경상도는 해산물을 활용한 차례 음식들이 유명하다. 절인 상어 고기인 돔배기와 가자미식해가 대표적이다. 특히, 선비 문화가 발달한 안동에서는 문어(文魚)를 차례상에 올린다. 이떄의 '문'은 글월 문(文)으로, 문어는 글을 아는 물고기로 여겨졌다.
바다로 둘러쌓인 제주도는, 옥돔과 생선국을 차례상에 올린다. 육지의 과일들을 대신해 귤을 놓기도 한다. 화산 지형에서 쌀 재배는 힘들었기에, 보리로 만든 떡인 상애떡이 대신 올라가곤 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보리빵과 더불어 카스테라나 롤케이크가 제주 차례상의 단골 손님이다.
이북 지역 역시 송편을 차례상에 올리는데, 가지각색의 모양과 속재료를 지닌다. 황해도의 송편은 크게 빚어 손가락 자국이 나있고, 평안도의 송편은 모시조개를 닮아 아기자기하다. 콩, 감자, 숙주, 무, 양배추 등 안에 든 속의 재료도 천차만별이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정을 나누는 추석. 추석 차례상은 우리의 민족적 감수성을 두루 잇는 동시에, 각 지역과 가정만의 고유함을 부각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가족은 차례를 지내는가? 만약 지낸다면, 차례상에는 어떠한 음식이 올라가는가? 이번 추석을 맞아, 앞에 놓여있는 차례상에 어떠한 사연이 숨어있는지 관심 있게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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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예코 콘텐츠기획팀 심민주, 차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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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jesa.do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05197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940.html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2512&cid=43667&categoryId=4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