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미(美)의 완성
창문을 통해 풍광을 맞이하기 좋은 날씨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창문’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왔을까?
창문은 단어 '창호'의 잔재이다. 창호란 창과 문의 총칭을 의미하며, 채광과 통풍의 기능을 하는 창(窓)과 사람이나 물품이 드나드는 기능을 하는 호(戶)가 결합한 단어이다. 창호의 영향으로 우리는 현재에도 창과 문을 결합한 단어인 창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형태의 단어이다. 이렇듯, 특별한 우리의 창호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알아보자.
창호는 사람의 눈이다.
창호는 건축물 중간에 위치하여 한옥 건축 입면 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사람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창호는 곧 건축물의 인상을 결정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건축 입면을 보면 다음과 같이 3분(分)을 하고 있다. 이러한 건축입면에서의 3분(分)의 적용은 천부경의 천지인일체로부터 적용된 개념이다. 천지인일체란 하늘과 땅과 사람이 3이라는 수로 조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건축물의 터, 지붕 그리고 기둥과 대응하여 적용할 수 있다. 이를 전통 가옥에 적용해 보면, 지붕, 기둥, 그리고 기단 부분이 각각 상분, 중분, 하분의 수직적인 삼분체제를 이룬다. 이러한 삼분체제는 건축 요소뿐만 아니라 척도로서 조화로운 비례를 가져야 하다는 입면구성의 원칙을 보여준다.
창호는 삼분 중에서 기둥, 벽체와 함께 중분을 구성하는데, 창호의 분절, 문양, 그리고 배치는 건축 입면 중에서도 중요한 건축의 인상을 결정하는 동시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듯, '창호' 역시 건물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결정짓는 막중한 기능을 수행한다.
창호는 아름다움이다.
창호가 건축에서의 아름다움을 담당한다면, 창호의 아름다움은 창살이 담당한다. 창호의 아름다움은 내부와 외부에서 모두 느낄 수 있다. 창호지와 창살, 그리고 빛의 조합은 방 내부에 은은한 정취를 더하며, 외부에서도 관찰 가능한 살의 문양은 입체적인 질감을 더한다. 살의 문양은 무궁무진한데, 대표적으로는 대표적인 띠살(세살), 정(井)자살, 빗살(교살), 완(卍), 아(亞)자살, 꽃살이 있다. 이들을 응용하여 보다 다양한 문양의 살을 만들 수 있다.
띠살(세살)
창틀에 가는 세로 살을 촘촘히 박거나, 띠처럼 가로살을 위, 가운데, 아래로 나누어 짜 넣은 형식으로 한옥 창살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다. 주로 궁궐, 주택 사찰의 덧창호나 방의 출입문 등에 사용되며, 봉정사 대응전, 부석사 조사당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井)자살
정자 모양으로 된 형식으로 격자살, 우물살, 만살이라고 불리곤 한다. 살칸이 많아 튼튼하며 띠살과 더불어 널리 사용되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장곡사 상대응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빗살(교살)
살대를 45도 135도 빗겨 교차하여 짠 살으로 마름모무늬가 만들어지고 정자살을 모로 뉘인 모양이다.
완(卍)자살
만자살이라도 불리며 사각형의 네 귀를 다른 사각형의 변으로 물러놓은 형식으로, 문 살에 일직선과 직각으로 된 부분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모양새가 동적이고 우아하여 주로 궁이나 사대부집의 안채나 사랑채 별당에서 흔히 사용되었다.
아(亞)자살
문살에 아(亞)자 모양을 짜 넣은 형식으로, 중앙에 사각형을 놓고 사면에 살을 붙여 이를 위아래로 연결한 모양이다. 살의 짜임새가 아기자기한 멋이 있어 주로 여성의 공간인 안채나 내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꽃살
말 그대로 문살에 꽃무늬를 새겨서 만든 것이다. 널판에 꽃을 조각하여 만들 수도 있으며(통판 투조 꽃살), 대게 위의 살들에 꽃을 조각하여 만든다.
살의 문양은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데, 위에 주로 위의 살들을 조합하여 각양각색의 디자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입면구성에 있어서 일정한 비례체계를 가지고 있어 아름다움은 더욱 극대화된다.
창호는 매개체이다.
한국의 전통건축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을 해하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을 설치했다. 이에, 건축물이 자연환경과 분리되지 않은 채 오히려 유기적으로 융합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도입했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선조들의 마음은 창호 제작에 있어서도 관찰할 수 있는데, 창호의 개폐는 건축 내부를 자연으로, 자연을 건축 내부로 들어오게 해 준다. 대표적 사례인 들어열개문을 통해 자연과 건축의 융합을 엿볼 수 있다. 닫혀있던 문을 위로 올려 고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들어열개문의 구조는 건축 공간의 완전한 개방을 가능하게 했다. 자연과 건축을 한 풍경의 일부로 연결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간의 개방감과 폐쇄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다. 창호의 개방은 건축의 공간이 외부의 넓은 공간으로 확대되어 나가기에 개방감을 준다. 반면 창호를 닫으면 공간을 명확하게 하여 폐쇄감을 준다. 따라서 우리는 창호를 통해 개방감과 폐쇄감이라는 정반대의 감각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창호는 두 가지의 공간구성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창호는 정성이다.
창호은 못질과 접착제 없이 오로지 짜임과 이음으로 제작된다. 쉽게 말하면 나무조각들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밑의 사진처럼 나무들 사이에 홈을 만들어 두 가지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한국 건축의 주재료는 바로 나무이다. 나무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에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따라 창호의 나무가 쉽게 뒤틀릴 수 있다. 따라서 굉장한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창호의 제작은 단순한 조각을 하는 것 이상의 작업이며, 그 과정은 목재의 선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구성이 강한 창호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재가 매우 중요하며, 대개는 소나무를 사용한다. 목재를 선정하고 나면, 이를 자르고 대패질하여 수직과 수평을 맞춘다. 이후 올거미(창틀)와 살을 차례로 만들어 준다. 이 과정에서 창호의 문양이 되는 살을 조각한다. 만약 꽃살 문양의 살을 만든다면, 꽃문양으로 살을 조각하면 된다. 다음으로 조각된 살 부분을 조립해 주고, 조립된 살들은 올거미에 맞추어 조립해 준다. 이후 창문을 벽에 붙인 뒤(박배) 창호지를 붙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 요구되는 정성과 정교함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아름다운 창호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창호는 한옥의 건축 입면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종종 다른 부분들에 비해 쉽게 지나치기도 하는 듯하다. 날 좋은 요즘, 창문을 통해 풍광을 느끼며 전통 창호에 관심을 한 번 가져보는 게 어떨까?
.
YECCO 콘텐츠기획팀 임지혜, 심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