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me) 구출작전
남편은 짧은 연애기간 동안 자신의 결혼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기는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갖고 싶고, 그리고
조심스레 맞벌이를 하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나는 난감했지만,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맞벌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직장생활보다는 아르바이트처럼 단기간 잠깐씩
했던 일이 전부다 보니 맞벌이는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자신이 없으면 못하는 거고, 못하는 건 안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무기력한 시간들은 보내고 있었다.
졸업장과 자격증이 없으니 못하는 거고,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가난한 부모 탓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함께 살고 싶은 이 남자 앞에서 내 부모 탓을 할 순 없었다.
돈 버는 일은 자신 없었지만, 다행히 돈을 안 쓰는 일은 자신 있었다.
그렇게 나를 구해낼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남편은 남자가 (돈) 계산해야 한다는 허례허식이 없었다.
연애 그리고 결혼으로 가는 과정에서 연애비용은 결혼으로 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난 돈이 없었다. 돈이 없으니 방법은 연애기간을 줄이는 것뿐이었다.
남편은 혼자 살고 있었으니...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면 될 것 같았다.
뭐 나쁠 게 있겠는가! 돈을 좀 아끼자는데.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였다. 도시는 온통 축제분위기 였고, 사람들은 같은팀 을 응원하는 같은 편 이라는 인류애로 모두에게 너그러웠다. 동거 하기 딱 좋은 시기 였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생활은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남편은 짐 싸서 자기 집으로 들어온 나를 보며
당황했었다고 한다. 나는 몰랐었다. 그때 남자가 당황했다는 사실을...
그때 내 나이 31살.. 남자 나이는 25살이었다.
아참, 우리가 많이 사랑했었다는 얘길 했던가?
지금 큰아들은 군생활 중이고 작은 아들은 대학입학과 동시에 학교가 있는 도시로 떠나고..
오래전 그때처럼 남자와 둘이 산다.
우리의 건물 1층 상가에서는 아직도 15년째 과자를 만드는 중이다.
아들들에게 쉬운 '포기' 보다 어렵지만 도전하고 힘들지만 해내고야 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15년 동안 수제과자집을 하면서 겪었던 실패와 작은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살아낸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