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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복이 Nov 11. 2024

4. 소녀.. 그후

소녀, 집을 떠나다

술, 여자, 그리고 바람... 왜 바람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식물 키우는걸 좋아한다. 식물의 성장조건은 물, 햇빛, 바람이다. 

바람이 없으면 식물은 죽거나 성장을 멈춘다. 

아빠의 바람은 한창 성장해야 하는 나를 키우지 못했다.

그렇게 무서운 바람이 지나가고 아빠는 위암 판정을 받았다.

내 나이 13살이었다.

못살 것 같은 세상에서 정말 못살던 내가 중3이 되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3 늦가을, 엄마는 처음으로 학교에 오셨다. 

엄마와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묻지 않고 나를 결정하셨다.

그다음 엄마와 선생님은 나에게 허락하셨다.

집에서 고속버스로 2시간 30분 걸리는 곳에 있는 산업체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그해 12월초였다. 

사물함에 짐을 정리하고 집에서 들고온 가족사진 몇장을 붙히고 난 뒤 엄마와 나는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현실이 체감온도 만큼이나 살갓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엄마의 슬픔을.. 그런 엄마 앞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시고 그 다음날 여공들을 위한 축제가 벌어졌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위로해주기 위한 사측의 전략이였을 것이다.

음악과 노래와 조명은 그곳을 화려한 파티장으로 위장하기에 충분했다.

어린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3교대 근무를 했다.

거대한 기계.. 쉴새 없이 돌아가는 커다란 실타래.. 

무서운 기계 속으로 손을 뻗어 끊어진 실을 연결해야 하는 작업은 

17살 정도면 머리 묶는 일처럼 주저 없이 해내야하는 일이였다. 그곳에선...

3개월이 지나고 봄이 오고 사측에서 제공하는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공단 안에 있는 무슨 무슨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이었다.

나는 크고 넓고 높은 그곳의 담장을 뛰어 넘어가고 싶었다.

해질녘 빨간노을을 볼 때면 집이 너무 그리웠다.

노을아... 너는 우리집이 보이니?

엄마와 동생들은 지금 뭐하고 있어?

집에서 먹었던 빨간무조림이 생각나는 노을은 늘 집 생각이 나게 했다.


그렇게 빨갛고 힘든 공장생활은 소녀들을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내 얼굴에 코피가 흘렀다. 같은 조였던 싸가지 없던 어떤 소녀는 

나를 보며 "어머 너도 코피가 나네... 나도 코피 났었는데.. " 

마치 사랑의 징표라도 본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 잘난척 싸가지 없던 소녀는 나를 진정한 동지로 받아주겠다는 듯, 

내 코에서 나오는 피가 빨간잉크라도 되는냥 내 피로 동맹을 맺을 기세였다.

그렇게 소녀들은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

그해 7월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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