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인석 Dec 31. 2017

1인기업 2년차의 아듀 2017

일-삶-육아 삼위일체 1인 기업가의 연말 멘탈결산


정말 진부해서 부끄러울 지경의 표현이지만,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라는 말 이상의 수식어를 당겨올 수 없는 한 해였다. 삼십 대 중반이 되면 인생이 어느 정도 완성되리라는 상상을 했던 어린 날들이 부끄러울 만큼 지금의 나는 활화산과도 같다. 


글을 통해 내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고, 너무 바빴던 나를 토닥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한번 살펴보려 구글 캘린더를 1월로 돌려보니, 시작부터 아주 꽉 차있었네! 하하. 만 2년 차 생존 중인 1인 기업가의 2017 이야기, 그리고 내년 계획을 정리해 보자.


3개의 비즈니스, 하나로 압축하다.


거의 4분기가 되어서야 나의 방향성은 아주 또렷하게 정리가 되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사실 표리부동했던 셈이다. 완전히 자유의 몸인 나는 그냥 해보고 싶은 일을 '되는대로 했었'다고 해야 맞을 듯.


길게 쓰기는 복잡하고 사연이 깊다. 유튜브 마케팅 에이전시, 패션 브랜드 <오스바> 마케팅,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컨설팅 & 디자인. 이 3개의 타이틀 중에서 지금 내가 전력을 다하는 분야는 프레젠테이션 컨설팅&디자인 사업이다. 이 3가지 일을 모두 하느라 끙끙 거리던 어느 날, 절친한 친구가 한마디를 툭 던진 것이 정리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바빠 죽겠다고 엄살떠는 게 재밌냐? 너 어차피 하나만 하라고 하면 어차피 PT 할 거 아냐?"


올해 4월의 구글 캘린더  캡쳐. 컬러별로 다른 비즈니스. 정말 미치도록 바빴던 날들이었다.


나는 그다음 날부터 바로 청산을 시작했다. 그 말에 전혀 반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던 그때의 초심을 생각해보니, 내가 제일 잘하고 즐거운 일을 해보자는 방향에서 봤을 때 유튜브 에이전시나 패션 마케팅은 오히려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2개의 비스니스 모두 함께 하던 파트너에게 완전히 넘기고, 나는 4분기 즈음부터 완전히 PT에 올인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이 하나만 집중을 했더니만 다시 또 3가지를 바삐 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금세 바빠졌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역시 오직 이 사업만 생각하며 이 영역에서 내 입지를 다져 갈 생각이다. 프레젠테이션 하면 떠오르는 온리 원 엑스퍼트, 그것이 내 미래다.


정말 쉴 새 없이 프레젠테이션 작업을 했다. 업역의 경계는 없었고, 내 작업의 스펙트럼은 올 한해 많이 넓어졌다.


과거에 나는 디자인에 관심 있는 마케터였다면, 지금은 스스로 디자이너이자 컨설턴트라고 소개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졌다. 올해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데, 프랑스계 명품 브랜드로부터 일을 받아 멋지게 수행해 낸 프로젝트였다. 보통은 기업의 마케팅팀이나 영업팀, IR 부서나 교육팀, 스타트업 등에서 프레젠테이션 의뢰를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이름만 들어도 헉- 할만한 명품이었고, 심지어 의뢰자가 디자이너였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도전에 보름을 밤낮으로 씨름했고, 결국 멋지게 성공했다. 크게 만족한 해당 클라이언트가 연이어 일을 또 맡겨서 무려 2건이나 연속으로 대히트! 난 적어도 프레젠테이션 구성과 디자인에서만큼은 특급 전문가라고 자신한다! 하하.


육아 대디, 제법 스타 되다.


올해 내가 아주 일삼아 열심히 한 것 하나가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1인 기업이기에 많은 이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이 출퇴근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육아로 연결되는 큰 장점이기도 한데, 나는 제법 지능이 낮은(;;) 딸바보였기에 특히 아침시간을 딸과 함께 하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즐겼다. 아내가 먼저 출근하고 없던 매일 아침, 나는 딸과 함께 일어나 밥을 먹고, 옷도 입히고, 함께 등원을 했다. 그리고 매일 문 앞에서 등원하는 딸을 한 장씩 찍어 인스타그램에 착실하게 올렸다.


딸과 나는 아침마다 사진놀이에 아주 푹 빠져있다!

올해 초 내 계정의 팔로워가 30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랜선 이모들의 응원을 받으며 약 7700명 즈음되는 계정이 되었다. 이 어설픈 아빠의 손길이 느껴지는 유쾌한 딸내미의 모습을 많은 이들이 즐겁게 바라봐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 @indori)

베스트베이비 12월호. 잡지도 탔습니다. 바보인증.

이즈음 되자 동네 마트에 갔는데 알아보고 인사해주시는 분을 만나기도 하고, <베스트베이비>라는 잡지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색다른 추억이 될 인터뷰도 남길 수 있었다. 참 커다란 교훈을 여기서도 하나 얻는 것이, 내가 즐거워서 하면 보는 이도 즐겁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 딸과의 추억을 쌓아가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고 큰 기쁨인데 이것을 공감해가며 함께 웃는 수많은 분들이 생겨서 더 좋다. 지금은 아내도 1인기업이 되어 아침에 함께 있지만, 등원만큼은 내가 내년에도 킵 고잉(Keep going-) 해야지!






일과 삶과 육아의 경계? 그런 거 없다.


나는 제법 보수적이고, 정리된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아내가 보면 웃으려나) 일에 계획이 수립되고 그대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공들여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 성향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그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더라는 것을 2년 정도 지내보니 터득했다.


프로젝트 베이스로 움직이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감일이다. 그 안에만 주어진 프로젝트를 배분하여 해결 해 내면 되기에 '자유롭게' 시간을 배분하면 된다. 여기서 <자유>는 제법 매력적인 단어처럼 보이지만, 실은 참 무겁다. 음.. 아까 글의 앞에서 출퇴근이 자유롭다고 표현했는데, 다시 정정하자면 퇴근이 없다고 해야 할까? 하하.


나는 일단 아주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면 일단 일정을 딸에게 맞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도 일하기 위해 준비하고 책상 앞에 앉으면 보통 11시가 다 된다. 그럼 그즈음부터 열심히 달려 점심은 간단히 때우고 6시 반 정도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저녁시간엔 다시 딸과 시간을 보내고, 씻기고, 재우고 하면 대략 밤 11시가 다된다.

자 밤 11시다.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여기에서 일과가 끝난다면 아주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잠든 딸과 아내를 확인하고, 보통 다시 눈을 비비며 나와 책상에 앉는다. 보통은 2시 즈음까지는 일을 할 때가 많고, 늦으면 세시가 넘는 경우도 다반사. 누군가는 나의 일상이 매우 여유로워 보이겠지만, 실제의 나는 누구보다도 피곤하다.


어디서든, 잠깐이라도 랩탑만 펴면 30초 내 업무모드.

프로젝트에 많이 쫓길 때면 일과 삶과 육아의 볶음밥 속에서 나도 폭발하기 직전에 이를 때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러한 위기 몇 번을 넘어오다 보니, 이제 문센(문화센터) 쫓아가서 앞에 기다리면서 일하고, 딸내미 응가하고 씻는 동안 장표 하나 만드는 것에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처음엔 계획대로 시간표가 돌아가지 않는 것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어찌 되었든 마감을 향해 돌아가는 시곗바늘 아래 짬짬이 일하는 것도, 집중해서 새벽에 힘껏 달리는 것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조금 더 보폭을 넓게 보고 맞춰나가도 크게 문제는 없더라는 것. 올해 지나며 찾은 멘탈의 여유라면 여유다. 다만 아직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여유의 영역이 있는데, 그건 좀 뒤에 적어봐야겠다.




발목이 부러지다.
깁스 하고 처음 약국 들렀던, 어이 상실한 나를 찍어준 아내.

실은 아직도 깁스를 하고 있다. 내 인생에 깁스란 것은 처음 해 봤고, 이 정도로 불편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무엇보다도 장애에 대한 간접체험을 하고 보니, 얼마나 건강이 중요한 것인지 많이 깨닫고 있다. 제법 보살급 멘탈(?)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쉽사리 올라오는 짜증, 그리고 괜히 나 때문에 번거로움이 배가 되는 가족에게 너무도 미안한 존재가 되고 만다. 무엇보다 건강이 먼저다. 명심하자. (어휴 길게 쓰고 싶지도 않다!)




집을 사다!


모든 뉴스 중 어쩌면 가장 큰 뉴스! 올해 드디어 집을 샀다. 묘하게 나는 집주인을 쫓아내는 기운이 있는지 나의 전셋집 주인들은 어째서 짤 없이 항상 계약이 끝날 때 팔려고 하더라! 2년 주기 이사에 스트레스가 과하여 과감히 마음을 먹고, 집을 사서 싹 인테리어도 하고 들어왔다. 결론적으로, 어떻게든 집 앞이라도 나가서 일하던 내가 (깁스를 한 탓도 있긴 하지만) 요즈음은 집돌이가 되었다. 그만큼 좋다! 하하 :)


이사한 집에 꾸며놓은 작업실. 심야에 분위기가 더 좋다. 우측의 표어 주목.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딸이 있다!


1인 기업가를 위한 주택대출 팁!? 집 사기 전년도의 종합소득세 신고가 대단히 중요하다. 주택 구매를 빚 없이 일시불로 준비하기엔 버거운 시대이기에, 대출 전략이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 직장인이 아니라서 막연히 대출이 안 나오면 어쩌나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직장인은 소득신고에 융통성이 전혀 없지만, 사업자들은 소득 신고에 다양한 절세 팁을 활용하여 법적 테두리 안에서 소득 수준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다. 나라에서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주거 안정용 대출들을 이용하려면 소득 기준이 대단히 중요한데, 그 커트라인을 생각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정 수준을 타깃으로 소득을 신고해 두면 대출 조건이 아주 좋아진다. 아자!



실력으로 버티고 서면 죽으란 법은 없다.

글이 제법 길어졌다. 마지막 즈음하고 싶었던 이야기, 진짜 그냥 좀 내려놔도 문제없더라-라는 깨달음을 글감으로 꺼내어 본다. 나도 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수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이 불안함은 좀처럼 익숙해지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언젠가 일이 끊겨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이 불안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힌다. 2017년 내내, 이미 나는 충분히 바쁜데도 불구하고 새롭게 들어오는 일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가 프로젝트 일지를 보고 지금 리뷰를 해보니, 올 한 해 내가 처리한 크고 작은 프레젠테이션이 110건이 넘는다. 산술적으로 3일에 하나 꼴로 프로젝트를 한 셈이니, 얼마나 바삐 달렸는지! 대단하다고? 당장의 수입이야 월급쟁이 시절보다 좋아졌지만, 이 수입이 다음 달에도 계속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달리고, 달리고, 달려야만 했던 이 가장의 마음이란. 하하.


그러나 바쁜 시기 다 지나고 한숨 돌리며 2년의 역사를 돌아보니 아주 또렷한 사실 하나는, 사람이 그냥 죽으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이 끊길 즈음이 되면 반드시 그에 앞서 일이 들어온다. 독립을 준비하시는 분이 있다면 어디서 그렇게 계속 들어오는지 궁금할 텐데, 바로 '내 클라이언트의 소개'에 의한 연결이 생각보다 많다. 회사에서 마케팅 실무를 할 적에 "바이럴, 바이럴" 하면서 억지스럽게 돈 써서 SNS에 흥행시켜보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있는데, 입소문이라는 게 진짜 이런 거다 싶을 만큼 생각보다 파급력이 있다. 하나하나 클라이언트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들의 소개에 의해 연결되는 새로운 만남들이 늘어가고, 거미줄이 퍼져나가듯 생각보다 넓은 네트워크가 되는 것 같다. 결국은 내가 인정받을만한 전문가라면 찾는 이는 생기고 생각보다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공언했다. 나 잠깐 좀 쉬겠다고. 하하. 쉬엄쉬엄 걸으면서 나를 소진하는 일 외에 나를 더 채우는 일을 한동안 좀 해보겠다고. (라고 해봤자 이미 수주되어 있는 프로젝트들이.. 하아) 조금 더 자신감을 갖자. 쉬어도 된다. 계속해서 주문을 외워야겠다.



2018년 키워드, Be Sexy!


나를 아는 모든 이가 보자마자 웃을 단어, Sexy! 하하. (전혀 어울리는 얼굴이 아니죠!) 무엇을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를 고민하다 결론에 이른 단어이다. 무엇이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생각하니 결론은 여유와 자신감이다. 고백하건대, 2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나는 전혀 Sexy하지 못했다고 자평한다. 너무 열심히, 일과 삶에 매몰되어 살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돌아보니 나는 그다지 멋진 남편도, 인스타그램에서 칭찬 많이 받는 아빠라고 하기엔 진짜 그 정도인지도, 전문가로서 묵직한 포스도,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올 해 중 이 사진이 가장 여유있어 뵌다.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이고 싶다.

더 멋지게 프레젠테이션 사업을 해나가기 위해서, 나는 파트너 하나와 함께 새롭게 간판을 달고 지평을 넓혀 볼 생각이다. 진짜 프레젠테이션 하면 떠오르는 아주 예리한 엣지를 가진 전문가가 되어야겠다. 대외적으로 떠들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바쁘긴 했지만, 이제 지금까지의 노하우와 성과들을 차례로 릴리즈하며 나를 홍보하고, 더 큰 물로 나가보려고 한다. 커밍 순!


그리고 진짜 멋진 남편이자 아빠가 되기 위해서, 평일 중 하루는 온전히 시간을 내어 아내와 딸만 위해서 시간을 얌전히 써볼 생각이다. 주말에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주말엔 등 떠밀려 함께 있는 것이고, 내가 홀로 여유 있을 때 그녀들을 생각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므로. 이건 연초부터 한번 꼭 지켜봐야지!


그리고 정말로, 나는 깁스하고 거의 8주를 지내느라 앉아서 일만 하고 먹기만 해서 살도 엄청 쪄버렸다;; 물리적인 자신감(?)을 위해서 운동도 꼭 해보겠다고 (매년) 다짐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진짜 죽기 전에 한번 즈음은 스스로 만족할만한 몸매를 만들어보는 것도 멋진 일 아닌가! 과연 내년엔 해낼 수 있을까- (깁스는 아직도 하고 있다.)


내가 이토록 멋대로 살 수 있도록, 아침에 까르르 딸내미 목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고백하며, 긴 멘탈결산을 마친다. 지금 이 밤이 올해의 마지막 밤이구나. 너무도 분주했던 2017년을 정리한다. 아듀-2017.





고인석

FMCG 소비재 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팅, 완구 제조사에서 B2C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다 퇴사, 현재는 프레젠테이션 전문 컨설팅 및 디자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일과 삶과 육아의 공존에 대한 실천적 고찰을 2년째 하는 1인 기업이자 보편의 딸바보 아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후 독립? YOLO는 개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