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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석 Sep 11. 2017

퇴사 후 독립? YOLO는 개뿔

1인기업 20개월차 초보의 번아웃 고백

아주 오랜만에 미간에 힘이 풀린 느낌이야.


아내와 제주행 비행기 체크인을 하고선 여유롭게 커피를 한잔씩 하며 건넨 말이었다. 아이는 때마침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후- 정말 그랬다. 눈을 뜨고 잠드는 시간까지,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제외하곤 줄곧 미간에는 긴장이 흘러왔던 것 같다.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뭔가를 했다. 그것은 마치 생산 강박에 가까운 느낌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마땅히 고칠 수 없었다. 


뜨거운 여름이 한창이던 지난 8월 중순, 갑자기 아이가 아프게 되는 바람에 계획했던 여름 휴가도 취소한 채로 바쁘게 바쁘게 보내다보니 내가 병이 나버렸다. 난 원래 1년에 한두번 감기를 앓을까 말까 한 사람이었는데, 8월 초에는 지독한 코감기, 8월 말부터는 지금껏 기침을 콜록거리고 있다. 심지어는 너무 기침이 심해 옆구리에 담이 와서 몸이 쑤시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던 내가 제주행 티켓을 끊고 아내와 마주보고 커피향을 느끼고 있자니 눈 주위에 풀려나가는 긴장이 스스로도 느껴졌던 것이다. 아내와 손잡고 제주에 가는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려와서 벌써 4일이 지났고 오늘 올라가야 한다. 

아쉬운 새벽, 나는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선택과 집중, 하나를 먼저 제대로. 


필자는 스스로가 잘해서, 무슨 노하우를 전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님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오히려 이렇게는 하지 말자는 의미의 셀프 반성을 담고 있으니 퇴사 후 독립을 원하는 많은 분들이 꼭 읽고 경계 해 주셨으면 좋겠다. 솔직히 난 지금 번아웃 되었으니까!


대단히 또렷한 특정 아이템이나 서비스를 계획하시는 중이라면 필자와는 결이 좀 다르지만, 본인의 경력과 재주를 통해 1인기업을 꾸리시려는 분이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일의 선택'이다. 뭘 하느냐의 관점보다는 '무엇을 버릴 것이냐'의 관점. 아직 체감되지 않으실 수도 있는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회사가 아닌 정글, 야생에 나오니 자꾸 손 닿을 거리에 비즈니스 기회들이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왠지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만나는게 중요할 것 같아서 이사람 저사람 만나면서 본인의 핵심이 흐트러지는 일이 생기면 안된다.


부끄럽지만 지난번에 글을 쓰면서도 선택과 집중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글 링크 : 생존1년, 앞으로의 10년 ] 내가 선택을 정리하면서도 여전히 욕심이 많다고 스스로 웃으며 쓴 글인데, 지금 한번 더 조금 더 쎄게 말해보자면 '사실상 온리 원' 을 선택하고 올인하는게 맞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지난 글도 욕심이었다고 지금 자백한다;;)


지난 글에서는 크게 프레젠테이션 컨설팅과 패션 스타트업 브랜드 마케팅을 하겠다는 선택 정리 및 다짐이었는데, 솔직히 그 두가지 모두를 하다가 번아웃이 와버렸다. 뭘 해도 효율도 떨어지고, 열렬히 뭔가를 하려다가도 금방 귀찮고. 아.. 이게 번아웃이구나. 무기력함이 덮치니 괜히 작업 환경 탓을 하고 싶었는지, 급기야 아내에게 제주도로 이주도 이야기했었고 실제로 이번에 여행을 오면 집을 좀 보러 다닐 참이었다. (이 이야기는 좀 뒤쪽에 다시) 

답답하면서 할일은 쌓여 있고, 해야되는데 진도는 안나가고, 시간이 지나니 또 답답하고... 번아웃이다.

무튼 최근의 어떤 바쁜 날, 내가 인상을 푹푹 쓰며 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친구놈이 툭 쳤다. 야, 너 만약에 진짜 딱 하나만 하라고 해도 지금 그거 계속 할꺼야? 헉.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뜯던 내게는 카운터 펀치같은 섬광이었다. 왜냐면 아니었으니까. 생각보다 그것에 대한 답은 머리 속에 클리어했던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동질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테고, 한심히 여기는 분도 계실 것이다. 분명 전자는 초보, 후자는 베테랑 1인기업가이리라 생각한다. 독립을 준비하시는 분이 있다면 제발 부탁한다! 하나를 궤도에 제대로 올릴때까지는 하나만 하자. 여러사람 만나고 다니며 많은 이야기들, 좋은 기회들을 발견하는 것은 오히려 독 일수도 있다. 일단은 내가 독립을 꿈꾸며 생각했던 단 하나의 이미지를 위해 열심히 달리도록 하자.


 

스스로 만드는 휴식의 중요성


선을 긋는 휴식. 이 또한 내가 너무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임과 동시에 앞서 이야기한 선택과 집중에 버금가는 중요한 이야기이다. 과감히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용기. 며칠 쉰다고 사실 바뀌는건 거의 없다. 


이번 제주에 내려와서 난 아예 3일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메일도 들어가보지 않았다. 부재중 통화도 굳이 재회신하지 않았는데, 사실 급하면 두번 세번이고 왔을꺼다. 하지만 우연인지 모든 전화는 그저 단 한번 뿐이었다. 지금 새벽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몇몇 중요한 메일이 있었으나 역시나 다음주에 해도 될 일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발자국 떨어져보면 이렇게 사실 내 소중한 일이란 것도 쉴 구석은 충분한 것이다.

 

제주 여행 마지막 날 새벽. 곤히 자는 아내와 아이를 두고 조용히 나와 일출을 찍으러 나왔다. 혼자 바닷가에 서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제주에 내려오기 며칠 전, 아내가 나에게 이런 이야길 했다. 퇴근하고 애 재워놓고 둘이 쇼파에 뒹둘며 티비보던 시간은 어디로 갔냐며, 문득 그때가 생각날 때가 있다고. 정말이지 그랬다. 나의 일과란 참으로 타이트해서, 아침에 아이 등원시키고 오전 10시 즈음부터 저녁 7시까지 열일하고, 7시부터 11시까지는 아이와 밥먹고 놀고, 책도 보다가 재우고 나면 다시 새벽 작업이었다. 늦을땐 새벽 3시까지 책상에 앉아 일을 하기도 했다. 쉼이 없었던 것이다. 


엊그제 JTBC의 <말하는대로> 라는 프로그램에서 조승연 님의 강연을 우연히 보았다. 마디를 짓지 않고 사는 삶은 무게에 눌려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 멍때리는 시간의 중요성. 짧게 보면 잠을 자는 시간까지. 그런 것들이 결국 삶을 살아내는데에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정말 쉼이 없이 달리다 보면 이것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 같다. 


열심히 사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도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제대로 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더 중요하다. 제주에 와서 이 짧은 시간이지만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바람맞으며 운전하고, 아이랑 바닷가서 뛰어놀고. 저녁에 충분히 자고. 이것만으로 나는 제법 충전이 된 느낌이었다. 애써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한 휴식! 스스로 정하는 휴식 시간이 1인기업가에게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YOLO(욜로)는 없다. 모험이다.


요즈음 참 욜로, 욜로 말들 많이 한다. You Only Live Once! 참 멋진 표현이다. 말쟁이 마케터들이 아주 수고가 많다. 혼술, 혼밥부터 세계일주, 전원생활, 심지어는 1인기업에도. 뭐든 좀 주목받는다 싶으면 앞의 수식에 YOLO 가 붙는다. 난 사실 이 표현을 앞세운 모든 선동이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따지고보면 지극히도 '소비중심적' 사고다. 지름신의 합리화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 역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너무나도 크게 양보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보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요즈음 떠드는 YOLO란 어차피 어려운 미래 걍 지금을 즐기기 위해 "다 써버리자" 라는 느낌이다. 내 생각에 이건 소비자에 대한 마케터의 승리다. 


따지고 보면 또 10여년 전 즈음 싸이월드 미니홈피 프로필에서 쉽게도 볼 수 있었던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이라는 표현이 제법 비슷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생각이 난 김에 그 이야기를 찾아보니 YOLO 와 Carpe Diem 은 큰 차이가 있다. 후자는 쾌락추구적 의미보다는, 현재의 삶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른 것이다. 지금 좀 힘들어도 즐기자,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자. 이런 의미라고나 할까. 


카페에서 가끔 밖을 보면 나는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밖이 저렇게 빛나고 있는데! 하하.

퇴사를 하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옆에 두고 일하다가 나른 할 땐 낮잠도 자고. 서점가서 책도 좀 보고. 남들 못보는 평일 조조영화도 즐겨보고. 이런 1인기업가의 여유로운 모습, 특권은 물론 허상은 아니다. 좋은 면이 정말 많고, 보이지 않았던 시간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 주도의 주체성을 두고 YOLO라고 칭하기엔, 1인기업가의 머릿 속은 너무도 치열하다. 그 여유로운 카페 공간과 달리 랩탑 안의 업무는 차고 넘친다. 모든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요소다. 정글 모험이라고 생각하는게 좋다. 그렇기에 우리는 YOLO 보다는 Carpe Diem 을 외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번아웃을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


참 우습게도, 번아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할 일은 태산이고, 미래는 여전히 변화무쌍하기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은 항상 늘면 늘었지 줄지 않는 느낌이었다. 점점 떨어지는 업무 효율은 나의 태만이라 여기며, 빨리 여기까지만 하고 쉬자. 여기까지만 하고 쉬자. 라는 말을 반복한 것이 벌써 제법 지난 일이다. (가만보니 나도 참 어지간히 스스로 괴롭히는 타입이었던 듯)


번아웃이야. 그냥 좀 쉬자. 미룰 수 있는건 미루자. 이렇게 마음 먹고 다음 TO DO를 늘리지 않고 여행도 다녀오고 나니 마음이 제법 편안하다. 그냥 이렇게 며칠이 더 지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어 볼까? 하는 생각에 떠올리게 된 아이디어가 나쁘지 않은 것도 같다. 쉬지 않았다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이라. 


다음번엔 내가 해보니 좋았다, 내가 이렇게 하니 성공적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노하우가 쌓인 1인기업가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1인기업가 여러분, 퇴사준비생 여러분 모두 화이팅 하시길!! 



고인석

FMCG회사의 Assistant Brand Manager 로 5년반 닳고 닳은 마케터로 제품 개발과 유통, 프로모션 전반에 오지랖을 부리다가, 장난감회사 Marketing Communication 담당으로 자리를 옮겨 키즈 전문 유통, 커뮤니케이션, 유튜브 마케팅을 경험하고 퇴사하였다. 현재는 8년의 마케팅 경력 내 PPT 작성, 프레젠테이션 경험을 바탕으로 프레젠테이션 컨설팅 & PPT 디자인을 하는 1인기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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