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 어떤 어른이 나에게
“내가 어릴 때는 시간이 참 천천히 흘렀었는데, 지금은 바빠져서 시간이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네...”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나도
“저는 왜 아직 아이인데도 시간이 왜 이리 빨리 흘러갈까요.”
하고 말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건 초점이 아주 먼 미래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고,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건 현재를 살기 바빠서, 혹은 그리 먼 미래를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24년이 지나갔다고 하니 기분이 오묘하다. 그전까지 쭉 이어져오던 시간이 12시를 기점으로 해서 끊겨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히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그전까지 평범하게만 느껴지던 다음날이 어색해진다.
인생도 게임처럼 눈에 보이는 레벨업이 있어서 1년이 지나가면 갑자기 능력치가 바뀌면 좋겠지만 기분만 묘할 뿐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전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 바뀐 거라고는 새 달력과 새 학용품 정도일 뿐. 어릴 때는 이렇게 큰 시간의 개념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언젠가 내일이 오리라고 믿었고, 언젠가는 어른이 되리라고 믿었다. 내가 언젠가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리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죽으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건 내 예전 기억이다.
“엄마, 잠이 안 와.”
내가 자려고 누운 뒤 몇십 분이 지나서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어. 만약에 갑자기 천장에서 전등이 떨어지면? 갑자기 지진이나 불이 나면? 화산이 폭발하거나 전쟁이 일어나면 어떡해!”
그러자
“그런 생각은 안 해도 돼. 그냥 내일 뭐 하고 놀지만 생각해. 내일 누구랑 무슨 일 하고 놀지만.”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무서운 생각 대신 다음 날에 어떤 걸 하고 놀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진짜로 잠이 잘 왔었던 것 같다.
요즘에도 가끔씩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다. 이제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말하지 않고 나 스스로 생각을 돌리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 예전엔 그냥 그런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면 지금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일들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핸드폰을 충전하며 자는 날이면 이게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갑자기 전등이 깜박거리는 날이면 저기에서 불이 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 그리고 늘어난 인간관계와 사회생활들, 그리고 수많은 해야 할 일들이 밤이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그런 날이면 나는 잠깐 몸을 일으켜서 시간을 보기도 하는데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생각은 한 10~20분 정도 한 것 같은데 벌써 1시간, 2시간이 훌쩍 가있다. 아무리 시간은 상대적인 거라지만 이 정도로 상대적인 게 맞나 싶을 만큼 빨리 간다. 사람들은 다들 잘 적응해하며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시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게 어려운 걸까?
이건 내가 써두었던 글이다.
난 흘러가는 게 싫어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
시간은 왜 흐르는지
넌 절대 이해 못 할걸
꿈만 쫓아다니면서
앞만 보고 달리면
그냥 흐르는 데로
맞춰 살아가라는
말은 버거워졌어
멈춰 버리고 싶어
잠깐 쉬었으면 싶어
네가 되어보고 싶어
2025년이 되어서 어지러운 마음을 시간을 멈추어서 그만 흘러가고 싶다는 가사로 써 내린 것이다. (물론 나는 음악을 공부한 적 없어서 그냥 내 마음대로 노래를 만들어보았다.) 마음이 진짜로 뒤숭숭하다고나 할까? 느낌이 너무 이상하다. 진짜 시간이 멈춰버려서 내가 2025년에 적응을 할 때까지만 기다려 주었으면 싶다. 잠깐만이라도 이 복잡한 머리가 쉬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