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혼돈의 리듬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일본영화도 좋아하니?-(2)

by Mr Pink

※ 주의 아직 이 영화를 안 보셨다면 아무런 정보 없이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안 본 눈을 사고 싶어요)


글 특성상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엉망이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뛰고 카메라는 흔들리고

좀비 분장은 대충이고 배경은 텅 비었는데 소리는 괜히 크고

배우들은 어딘가 어색하게 대사를 틀린다.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아 이거 망했네'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망했다'는 감정을 30분 동안 아주 충실히 쌓는다

진짜로 망한 줄 알게 만든다

심지어 나는 이 영화의 첫 파트를 보면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영화인지, 영화라는 이름을 붙인 재난 현장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30분 뒤에 갑자기

이 모든 게 처음부터 철저히 계산된 기획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실수처럼 보였던 대사를 틀린 부분도

어색했던 동선도, 너무 가벼워 보였던 슬랩스틱도

모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치밀한 설계였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는 완전 다른 각도에서

그 재난 같은 촬영 현장을 다시 보여준다.

아까는 오류였던 장면들이 이번엔 계획대로인 장면이 된다.

그 전환이 너무 극적으로 자연스러워서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기적처럼 귀엽다'라고 말하는지 이해가 된다.


나는 이 두 번째 전환을 보며 조금 뜨거워졌다.

뜨거운 건 감정이라기보다

그 순간 이 영화가 가진 이상한 근성 같은 거 때문이다.

"아무도 안 믿어도 어쨌든 우리는 찍는다."

영화 전체가 이 말을 반복한다.

그 말이 너무 바보 같고 너무 마음이 뭉클해지고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성공한 결과만 보고 그 과정은 틀린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틀린 것처럼 보이는 과정이

사실은 결과를 위해 필요했던 리듬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완벽한 장면들이

가장 망해 보이는 틈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잘되기 위해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차피 어딘가 조금씩 틀리면서 맞춰지는 것일 수도 있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는 대사를 잊고 카메라는 흔들리고 소품은 부서지지만

다 합쳐보면 그것도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가 정말 귀여운 이유는

어떤 실패도 실패로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넘어진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 장면을 이어간다.

예상 못한 사고가 터진다

그러면 그걸 장면 안에서 무리하게 자연스럽도록 소화해 낸다.

마치 바퀴가 하나 빠진 자동차를 억지로라도 굴려서

결국 목적지까지 데라다 주는 느낌이다.


나는 그 모습이 꽤 기억에 남았다.

좀비 영화의 패러디를 보러 들어갔는데

결국 남은 거는

"우리는 어찌 됐든 만드는 쪽이다"라는 희한한 의지 같은 거였다.

웃기지만 묘하게 감동적이고 한없이 가벼운데 뜨겁다.

실수인데 완성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누군가를 감동시키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대신, 만든다는 일에 대해 조용히 웃어주는 영화다.

'대충 해도, 좀 틀려도, 계속 가면 된다'

이 말이 이 영화의 결론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결론이

사람의 마음을 생각보다 오래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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