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도 좋아하니?-(4)
글 특성상 괴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괴물>은 개봉 전에 봤다.
운이 좋게도 왓챠에서 진행한 작은 이벤트에 당첨됐고
그 덕분에 시사회에서 먼저 볼 수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조금 먼저 본다'는 사실에 묘한 설렘을 느끼곤 하는데
그날의 나도 딱 그 정도의 가벼운 기분으로 영화를 봤다.
문제는 영화가 시작되고 10분 만에
그 설렘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들 조용했고,
난 그 조용함이 영화 때문인지
시사회의 분위기 때문인지 구분이 잘 안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애매한 긴장감 자체가
<괴물>이라는 영화의 결과 꽤 잘 맞았다.
<괴물>을 처음 보면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문제를 피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세 방향 모두가 서로를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아무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는 그런 정지 상태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복잡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아이들은 설명하지 않고,
어른들은 설명하려 하지 않으며,
둘 사이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간이 생긴다.
문제는 대부분 그 공간 안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른들이 그 공간을 너무 빨리 단정하는 순간
이야기는 더 깊은 오해 속으로 들어간다.
어떤 장면들은
한 번 보면 잘못 보이고,
두 번 보면 조금 정확해지고,
세 번 보면 아예 다른 의미가 된다.
하지만 이상한 건 세 번 봐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괴물>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정답이 설명되지 않는 이유'를 보여주는 영화다.
어른들은 모든 사건을 말로 정리하려고 한다.
진실, 책임, 문제, 해결.
하지만 아이들은 그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른들과 같은 방식으로 알고 있지 않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이 전혀 다른 결로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잊히지 않는 순간 중 하나는
교정이 아주 단정적인 어조로 대사를 말할 때 이다.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 부르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까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
이 말은 이상하게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많은 공백을 가진 문장이다.
어른들은 저 말을 '정리'라고 부르고
아이들은 저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어긋남이 이 영화의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다.
어른들은 행동의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어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하려 하고
아이들은 행복이라는 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같은 공간을 공유해도
서로 다른 세계를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영화는 세 번 반복되는 시선으로
같은 사건을 보여주지만
어느 시선도 완전한 진실이 되지 않는다.
관객에게 선택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시선이 동시에 진짜이고 동시에 불완전하다'
이게 이 영화의 골격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어른의 세계에서 필요한 일이다.
괴물이라는 단어는 처음엔 사건의 이름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 가면 그저 시선의 방향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누가 누구를 어떤 각도로 바라봤느냐에 따라
괴물은 생기고, 괴물은 사라진다.
영화가 마지막에 도달할 때쯤
무엇이 진실인지 따지는 일은 이상하리만큼 의미가 없어진다.
누가 거짓말을 했고, 누가 진실을 말했고, 누가 침묵했는지는
더 이상 중심이 아니다.
대신 남는 건 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생긴
작은 흔들림 들이다.
<괴물>은 누가 옳았는지를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누구도 완전히 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조용하게, 아주 천천히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설명하려고 하면 멀어지고,
가만히 두면 조금씩 모양이 드러난다.
그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공기처럼 느껴졌다.
<괴물>이 남기는 자리는 원래 그런 종류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