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설명하지 않는 세계 <릴리 슈슈의 모든것>

일본영화 특별편 <릴리 슈슈의 모든 것>-(1)

by Mr Pink

글 특성상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처음 보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이야기는 분명히 있고, 사건도 분명히 일어나는데

그 사건이 왜 생겼는지, 누가 무엇을 잃었는지는

끝까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감정이 설명되지 않고 관계가 분류되지 않고

폭력이 이유 없이 생겼다가

아무 말 없이 흩어진다.


이 영화는 '왜?'라는 질문이 무력해지는 세계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일어난다.

그 부재가 폭력을 만든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화가 났는지, 사라지고 싶은 건지, 누구에게 기댈 수 있는 건지

그걸 스스로 말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대부분 오해된 채 남고

말하지 못한 조각들이 다른 사람에게 엉뚱한 형태로 튀어나온다.

릴리 슈슈의 세계는 그 조각들이 만들어낸 세계다.


호시노는 처음부터 폭력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처가 많은 아이였고

그 상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상처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전에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번지는 방식을 먼저 배운다.

호시노의 폭력은 악의라기보다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그 어쩌지 못함이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된다.


영화에서 잊히지 않는 건

폭력 자체보다 폭력이 '일상'이 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밀치고

그다음에는 가볍게 괴롭히고

그다음에는 이유 없이 공격한다.

아이들은 그 과정이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장난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도망칠 타이밍을 잃고

누군가는 끝내 그 세계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

적응한다는 말은

어른들에게는 포기처럼 들리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냥 '살아남는 법'이다


이즈미와 호시노의 관계도

폭력과 공포를 중심으로 보면 너무 단순해진다.

둘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훨씬 많다.

상대에게 끌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이 네 가지 감정이 순서 없이 동시에 들어오면

그건 아이들에게 너무 복잡한 일이 된다.

그래서 감정은 폭력이나 침묵 같은 단순한 형태로 바뀌어버린다.

이 영화의 폭력은 복잡해서 단순해진 폭력이다.


어른들이 이 세계를 보았다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어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스스로 감정을 말할 수도 없고 스스로 폭력을 멈출 수도 없다

그런데도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어른은 없다.

어른이 부재한다는 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항상 가장 약한 방향으로 터진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누군가를 밀어내고

누군가를 조용히 지워버린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괴롭히면서도

왜 그러는지 모른다

폭력이 진짜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는 것.

그 잠시라는 시간을 위해 누군가는 무너진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폭력은

거대한 분노보다 작은 감정의 쓰레기 조각에 가깝다.

이해받지 못한 감정들, 말할 수 없었던 순간들, 누구도 읽어주지 않은 표정들

그 조각들이 쌓여 폭력이 된다.

폭력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폭력은 말하지 않은 감정이

말할 수 없는 형태로 굳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누가 악인인지 말하기 어렵다.

그들은 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돌처럼 멈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아이들은 자신이 한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다음 날을 맞는다.

그게 더 슬프다.

폭력을 만든 사람도 폭력에 무너진 사람도

전혀 어른이 아니다.

전부 어른이 되기 너무 먼 곳에서 자기감정과 싸우지 못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1편은

폭력을 분석하는 글이 아니다,

폭력을 만드는 감정의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글이다.

폭력은 감정의 부재에서 생기고

감정의 부재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생긴다.

아이들은 단지 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이 세계에서

누구도 완전히 잘못되지 않았고

누구도 완전히 괜찮지 않다.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폭력은 너무 쉽게 생긴다.

이 아이들의 세계는 그런 폭력의 가능성 위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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