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특별편 <릴리 슈슈의 모든 것>-(완)
글 특성상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1편의 글이 바깥의 세계, 학교와 관계
폭력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편은 아이들이 그 세계를 견디기 위해
어디로 숨어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릴리 슈슈는 그들이 도망친 장소이자 잠시 머무를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릴리 슈슈의 음악은 위로도 아니고 구원도 아니다.
이 음악의 기능은 감정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잠시 '멈춰두는 것'에 가깝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고통이 퍼지는 소리를 잠시 약하게 만드는 정도
그 정도의 틈이 이 아이들에게는 필요했다.
영화 속 릴리 필리아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익명으로 떠다니는 문장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쓰인 고백과 감상들은
실제로 무엇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 문장들을 읽는 동안만큼은 세상이 너무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 거리감이 아이들을 살린다.
사람은 때때로 구체적인 위로보다 '방해받지 않을 공간'을 더 필요로 한다.
릴리 슈슈의 음악은
이 아이들이 사는 현실과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학교의 소음, 폭력의 긴장, 사라지는 우정, 어긋난 감정들
이 전체와 릴리 슈슈의 음악은 연결되지 않는 두 조각처럼 보인다.
바로 그 단절이 아이들을 끌어당긴다.
현실과 정반대에 있는 세계일수록 현실을 견딜 힘을 주는 법이다.
영화는 음악을 감정의 해답이 아니라
감정의 '정지'로 사용한다.
어떤 사람에게 음악은 감정을 증폭시키지만
이 아이들에게 음악은 감정을 잠시 눌러놓는 장치다.
침몰을 지연시키고 호흡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데 필요한 것
그게 릴리 슈슈였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은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이 닿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이르게 배웠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빨리 배운다
말이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다 말 대신
음악 위에 감정을 올려두면
그 감정은 현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다
그 '지연'이 아이들의 생존 방식이다.
릴리 슈슈의 음악이 나오는 순간들을 보면
감정이 폭발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눌려 있는 상태가 된다.
숨을 고르는 짧은 시간
그 짧은 틈 덕분에
아이들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찾아낸 도피처는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멈춰두는 공간이다.
호시노와 이즈미의 내부 세계도 음악과 함께 잠시 멈춰 있다.
누군가는 음악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확인하고,
누군가는 음악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같은 음악이 각자에게 다른 의미가 되는 건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정답을 만들지 않는다 정답을 미뤄준다.
그 미뤄짐 속에서 사람은 살아남는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아이들이 릴리 슈슈에게 의지하는 방식은 점점 더 절박해진다.
현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데 관계는 계속 무너지고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폭력은 반복된다.
그런데도 음악은 흐른다.
릴리 슈슈의 목소리는 '괜찮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잠시 멈춰도 된다'라고 말한다
이 두 문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완전히 다르다.
'괜찮다'는 실제로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은 대부분 현실을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쓰인다.
반면
'잠시 멈춰도 된다'는 버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릴리 슈슈는 그 시간을 준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통해 버티고, 숨고, 잠시 멈춘다.
그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도망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그 사이에 있는 모호한 감정
그 지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내부 세계는 말해지지 않는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감정들은 정확히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음악은 그 감정들을 정리가 아니라 붙잡아두는 쪽을 선택한다.
붙잡히는 동안 사람은 잠시 살아남는다.
그 정도면 충분한 때가 있다.
영화가 끝날 때 남는 건
고통의 구체적인 장면이 아니라
아이들이 잠시 숨을 돌렸던 그 '틈'이다.
그 틈이 없었다면 영화의 어떤 장면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은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구원이 없었던 세계의 여백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