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음에 대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일본영화도 좋아하니?-(완)

by Mr Pink

※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혹시라도 보지 않으셨다면 영화를 감상하고 글을 읽으시는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저의 글로 이 영화를 접하면 굉장히 아까울 수도 있어요....)


글 특성상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영화는

처음에 제목만 보면 감정이 과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막상 보면 정반대다.

과하지 않고, 선명하지 않고, 어떤 장면도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영화가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크게 울리지는 않는데 쉽게 지나가지도 않는 종류의 영화

그런 영화들이 오래 남는다.


영화는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선고받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날 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나타나 하루를 더 살고 싶다면

세상에서 어떤 것을 하나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사라지는 방식은 단순하다.

그 물건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로 바뀌고,

그 변화 이전을 기억하는 사람은 주인공 하나뿐이다.

영화는 이 비대칭의 세계를 배경으로

사라짐이 관계에 어떤 틈을 만드는지를 조용히 따라간다.


'사라진다'는 말은 이 영화에서

단순히 어떤 물건이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세계는 그 물건을 모르는 쪽으로 재구성되고,

주인공만 이전 세계의 흔적을 들고 남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단절은 언제나 한쪽 방향으로만 일어난다.


전화가 사라지는 날,

주인공은 가장 먼저 세계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전화기가 없고, 전화번호부가 없고,

연락이라는 행위 자체가 기록되지 않은 세계가 되어있다.


주인공과 여자친구의 관계는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목소리만으로 이어진 첫 연결은

얼굴보다 억양이 감정을 먼저 만들었고,

만남보다 대화가 관계의 중심을 차지했다.

그래서 전화가 빠져나간 세계에서는

둘 사이의 감정적 통로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여자친구는 그 잘못 걸려왔던 전화도,

그 전화에서 이어졌던 감정의 흔적도 기억하지 못한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되돌아간다.

주인공만 그 단절을 겪는다.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데 혼자만 과거를 붙잡는 순간.

첫 번째 균열은 그렇게 생긴다.


둘째 날, 영화가 사라진다.

이번에도 세계는 주인공을 제외한 모두에게 완벽하게 새로 구성된다.

극장 간판은 역할을 잃고, DVD 대여소는 존재 이유를 잃고,

집 안 책장에 꽂혀 있던 디스크도 흔적 없이 빠져나간다.


주인공과 친구를 이어준 것도

'영화를 좋아하던 마음' 하나였다.

같은 장면을 떠올리며 웃고, 감독의 변덕을 두고 말다툼을 하고,

한 장면을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둘 사이의 온도가 미묘하게 달라지던 관계.

그러나 영화가 사라진 세계에서는 그 취향을 구성하던 감정이 사라진다.

친구는 '우리 사이에는 한 때 영화라는 언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관계의 기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억은 주인공에게만 남고, 세상은 그 기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잔인함은 늘 이렇게 조용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마지막 선택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없애면 하루를 더 살 수 있지만

그 세계는 주인공에게조차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고양이는 단순히 집 안의 생명이 아니라

주인공의 엄마가 남긴 마지막 리듬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밥 주던 방식, 문이 열릴 때 고양이가 반응하던 습관,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바라보던 작은 몸짓들까지

그 모든 것이 집 안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엄마의 흔적에 가까웠다.


고양이가 사라진다는 것은

생활의 빈자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엄마와 연결된 마지막 감각 하나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일에 가까웠다.

주인공은 그 감각이 사라진 세계를 어떤 방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양이가 사라지는 선택 대신

자신이 사라지는 쪽을 고르게 된다.

그 결정을 마주하며

아주 조용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내가 사라진다면, 그 사실을 슬퍼해줄 사람은 누구일까?'


주인공의 아버지는 고양이와 각별한 관계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은 알고 있었다.

고양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사라진 자리에서

슬퍼할 사람은 아버지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많이 나누지 않은 관계라도 함께 격은 시간만큼의 무게는 남는다.


그래서 그는 고양이를 남기고

자신이 사라지는 쪽을 받아들인다.

남겨진 아버지는 그 이유를 모른 채

아들의 부재를 조용히 견디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관계는 그렇게 이어지고, 그렇게 끝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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