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열정이 다시 움직일 때 <싱 스트리트>

B급 말고는 뭐를 좋아하는데?-(완)

by Mr Pink

글 특성상 싱 스트리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감상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싱 스트리트를 보면 대부분은 주인공인 코너를 응원한다.

맞다.

코너는 사랑도 하고 음악도 하고 갑자기 삶이 반짝이며 열리는 그런 경험을 한다.

그럴만하다. 그게 청춘이니깐


근데 나는 이상하게도 처음 봤을 때부터

주인공인 코너가 아닌 코너의 형인 브랜든에게 시선이 꽂혔다.

꿈이 있었지만 현실이 훨씬 더 빨랐고, 가고 싶었던 길을 결국 본인 손으로 접어버렸고

그래서 동생만큼은 그 길을 가길 바라지 않는 사람. 그 복잡한 마음을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고 담담하게 견디는 사람.


나는 솔직히 말해서

코너 같은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내 인생은 대체로 브랜든에 가까웠다.

'하고 싶은 건 항상 많았지만 어쩐지 시도하기 전에 혹은 시작하자마자 이미 지쳐있는 사람'

현실은 계속 속도를 올리는데 나는 출발선에서 신발끈만 묶다가 게임이 끝난 느낌.

사실 매번 신발끈을 꽉 조여매지 않았던 건 그냥 무서워서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이제 와서야 인정한다.

(슬프지만 한 편으로 굉장히 웃기네)


영화 중에서 브랜든이 격양되어 코너에게 말하는 대사가 있다.

"나도 삶에 열정이 있었어."

난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아... 나랑 똑같구나'싶다.

한 때 뜨거웠던 마음은 있었는데 그게 어느 순간 연기처럼 빠져나가버린 사람.

어쩌면 내가 놓친 건 열정이 아니라 열정을 믿을 만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뭐, 이미 지나간걸 뭐라고 하겠나.

그냥 인정하고 사는 수 밖에는 없다.

어른이라는 건 결국 자기 합리화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더 웃긴 건 그거다.

나는 브랜든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막상 지금의 나의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어딘가 있겠지?'라고 말하지만 정작 어디를 뒤저야 하는지는 모른다.

아마 해마 내에 있는 먼지 쌓인 서랍 구석 같은 데 있지 않을까? 열어보기 귀찮아서 문제지


브랜든은 결국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하지 못 했던 걸 동생에게 밀어주는 사람이다.

그게 대단한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그냥 인간적이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게 너무 나 같아서

나는 이 캐릭터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


영화 마지막에 코너가 배를 타고 떠날 때

나는 코너보다 브랜든을 떠올린다.

그 순간 코너는 자신의 미래로 가는 중인데 브랜든은 뒤에서 환호하며 서 있다 혼자 차에 돌아가 감정을 정리한다.

본인은 못 가본 길을 동생이 대신 가는 걸 바라보는 마음

그게 기특하면서도 조금은 미칠 것 같은 씁쓸함.

그게 현실이고 그게 인생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씨는 정말 다 꺼진 걸까,

아니면 그냥 오랫동안 방치돼서 내가 못 찾고 있는 걸까


진짜 솔직히는 불씨가 남아 있다고 믿는 게 더 무섭다.

남아 있으면 다시 불을 붙어야 하니깐.

귀찮고, 어렵고, 책임도 생기고 실패하면 더 아프고

그래서 나는 가끔 불씨가 다 꺼졌다고 스스로 속이는데

이 영화가 그럴 때마다 손가락으로 나를 쿡쿡 찌른다.

'아직 여기 살아있잖아'

이런 식으로


그래서 나는 싱 스트리트를 조용히 본다.

누구랑 같이 보기도 싫고, 웃는 척하기도 싫고, 감동받은 척하기도 싫어서

그래서 그냥 혼자 본다.

혼자 봐야 덜 아프고, 혼자 봐야 조금 덜 웃기니깐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잠깐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나도 삶의 열정이 있었지'

말하기 민망해서 그렇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 것 같다.

살아있으니깐.


그 정도면 됐다.

나는 그걸 원한 것 같으니깐

그래서 당신의 잃어버린 열정을 찾게 해주는 아주 사소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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