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해, 긴 밤에 찾아오는 불청객

계절성 우울증, 이렇게 대하세요

by Yoo Hajin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오후, 창밖을 응시하다 문득 깨닫습니다.


"그래, 작년 이맘때도 이렇게 마음이 가라앉았었지."


해는 예전보다 훨씬 빨리 지고, 퇴근 무렵이면 이미 집 안에도 어둠이 먼저 들어와 있습니다. 몸은 평소보다 더 무겁고, 단것이 유난히 당기고, 아침에 눈을 뜨는 일조차 힘든 과제를 마주한 듯 버겁게 느껴집니다.


지난해 딸아이와의 대화가 떠오릅니다.


"엄마, 나 요즘 너무 우울하고 아무 의욕도 없어.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고, 그냥 계속 자고만 싶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딸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잘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와요.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대답을 고르지 못한 채, 딸의 옆모습과 창밖의 어둠을 함께 바라보았습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 이 감각. 단순히 "날씨 탓이겠지"라고 넘기기에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패턴이 분명했습니다.


딸의 고백은 사실 우리 모두가 계절의 문턱에서 한 번쯤 마주하는 내면의 독백이기도 합니다. 이 마음의 변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요?


단순한 ‘가을 타기’가 아닌, 몸이 보내는 신호. 많은 분들이 가을이 되면 기분이 저하되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가을을 탄다'며 낭만적이거나 가벼운 뉘앙스로 넘기지만, 어떤 이들에게 이것은 삶을 멈추게 만드는 명백한 질환입니다.


계절성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은 1984년 정신과 의사 노먼 로젠탈(Norman Rosenthal)에 의해 처음 명명된 이후, 주요 우울장애의 한 유형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주로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나 겨울에 시작되어, 봄이 되면 나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해가 짧아지면 우리 뇌에서는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Serotonin)이 감소합니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그 양이 줄어들며 기분의 저하를 가져옵니다.


둘째,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Melatonin)이 과잉 분비됩니다. 어둠이 길어지니 뇌는 “이제 잘 시간이야”라는 신호를 너무 일찍, 너무 길게 보냅니다.


셋째, 햇빛 부족으로 비타민 D가 줄어들며 우울감이 깊어집니다. 비타민 D는 단순한 영양소가 아니라 세로토닌 생성에도 관여하는 중요한 신경조절 물질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계절성 우울증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 우울증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주요 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를 겪는 분들은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입맛이 떨어져 체중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이 안 오고, 밥맛이 없다”고 호소하시는 것이 전형적이지요.


하지만 계절성 우울증은 정반대입니다. 잠을 10시간 이상 자도 피곤한 '과다 수면', 빵이나 초콜릿 같은 탄수화물을 끊임없이 찾는 '과식'이 특징입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날 때, 많은 분들이 스스로를 비난합니다.


“내가 게을러서 그래”, “의지가 약해 빠져서 그래.”


하지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몸이 부족해진 에너지를 보충하고, 줄어든 세로토닌을 억지로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탄수화물을 찾는 생존 본능에 가깝습니다.


계절성 우울을 이기는 실천법


계절성 우울증의 원인이 ‘빛의 부족’에 있다면, 해결책 역시 명확합니다. 우리 몸과 뇌에 부족한 빛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실천은 아침 햇빛 산책입니다.


기상 직후 30분, 흐린 날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 강력한 빛이 눈을 통해 들어올 때, 뇌는 비로소 "아침이 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생체 시계를 다시 맞춥니다.


딸아이는 출근 전 15분 일찍 나가 한 정거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2주 뒤부터 아침 기상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실내 환경을 바꾸는 것입니다.


낮 동안에는 커튼을 활짝 열어두고, 책상을 창가로 옮겨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채광이 좋지 않거나 증상이 심하다면, '광치료 램프'를 사용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전문가와 상의 후 10,000럭스 광치료 램프를 매일 아침 30분씩 사용하면 훌륭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일반 실내 조명이 200~500럭스인 것에 비해 훨씬 강한 빛이기 때문에,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측면에서 쬐는 것이 안전합니다.


세 번째 식단의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단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당길 때, 그 욕구를 무조건 참기는 어렵습니다. 이때는 정제된 설탕(과자, 케이크) 대신 복합 탄수화물(고구마, 통곡물, 귀리)을 선택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혈당을 천천히 올려 기분의 롤러코스터를 막아줍니다. 또한, 오메가-3(고등어, 연어, 호두)와 비타민 D를 챙기는 것도 뇌의 염증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네 번째, 자신의 몸의 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눕니다.


몸이 자꾸만 처지고 무거울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게으름 피우지 마! 일어나! 움직여!"라며 자신을 다그치곤 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키기 전에, 잠시 멈춰서 몸이 보내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판단하지 않고 인정해 주는 것,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타당화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몸이 자연의 리듬을 따라 쉬고 싶어 하는구나."


"지난 계절들을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겨울을 나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구나. 지금 내 몸이 느끼는 이 피로감은 지극히 당연한 거야."


나의 힘듦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정이 옳다고 타당화하고, 고생한 몸에게 공감해 주는 것. 신기하게도 나를 비난하는 대신 편들어주는 이 따뜻한 수용의 과정이, 우리를 짓누르던 죄책감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모든 계절성 우울을 혼자서, 생활 습관만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속 기간이 길어지거나 증상이 심해질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계절성 우울의 경우에는 광치료, 항우울제, 인지행동치료 등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치료법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증상이 거의 매년 비슷한 시기에 반복된다면, 가을이 오기 전부터 예방적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겨울 다음에는 반드시 봄이 옵니다.


지난 겨울, 딸아이는 작은 변화들을 시도했습니다. 아침에 조금 걷고, 점심시간에 옥상에서 햇볕을 쬐고, 저녁에는 스마트폰 대신 따뜻한 차를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는 듯했지만, 봄 햇살이 길어질 무렵 딸의 표정에는 다시 생기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우울했던 시간이 힘들긴 했는데… 그 시간이 없었으면 제 몸을 돌보는 법을 영영 몰랐을 것 같아요.”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도, 무거워진 몸과 마음 때문에 힘겨워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해 주세요. 지금 찾아온 우울은 당신이 나약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몸이 자연의 리듬에 아주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울을 억지로 쫓아내려 애쓰기보다, 잠시 멈추어 빛을 쐬고 몸을 돌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 보시면 어떨까요? 이 신호를 알아차리고,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빛, 리듬, 움직임, 따뜻한 말—을 조금씩 채워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아담 그랜트(Adam Grant)는 말했습니다.


"번아웃은 에너지의 고갈이 아니라, 의미의 고갈이다."


계절성 우울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 몸이 빛을 필요로 한다는 것, 나는 자연의 리듬 안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겨울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옵니다. 그리고 그 계절의 흐름 한가운데서, 우리 안에 여전히 꺼지지 않는 ‘여름’이 조용히 숨 쉬고 있음을 기억할 수 있다면, 계절성 우울은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는 적이 아니라 나를 돌보라는 자연의 초대장이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


“한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In the depth of winter, I finally learned that within me there lay an invincible summer.)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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