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 전에 미국에서 온 남편의 외삼촌 가족들과 함께 미국인의 시선으로 진하게 한국 여행을 했다.
1970년 혈혈단신 미국 유학을 가서 캠퍼스 커플로 중국계 코스타리카 국적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외삼촌은 뉴욕에 정착하여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세 자녀가 장성하여 미국인 배우자들과의 사이에 다시 각각 셋씩의 아이를 얻어 총 17명의 대가족을 이뤘다.
맏아들 부부만 직장 때문에 맨해튼에 거주하고, 외삼촌과 둘째, 셋째네 가족은 롱아일랜드의 한 동네에 산다. 한 달에 서너 번씩 17명 가족 전원이 함께 모이는 전통을 고수해 온 이들은 몇 년 전에 자신들의 뿌리인 한국을 방문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경제인, 의사, 언론인 등으로 각자 바쁜 직업인 데다 줄줄이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지난해 막내딸의 마지막 아기가 출생하면서 모든 가족이 한꺼번에 나서는 한국 여행을 추진하게 됐다.
이번 고국 여행에는 사돈지간인 둘째 아들의 미국인 장인 장모와, 그들이 입양했던 한국 태생 아들까지 합류하여 총 20명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 거다.
82세의 외삼촌부터 한 살배기 유아까지 모든 연령대가 섞인 대가족이 항공권 티켓팅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와 남편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아이들 아홉 명은 10대가 3명이고, 7살부터 줄줄이 아래로 이어져 돌도 채 되지 않은 갓난쟁이까지 6명이다.
미국 현지 여행사에서 받은 8박 9일의 고국 여행 견적은 항공권을 빼고도 6천만 원이 넘었으므로 다른 방법을 찾아서 가격을 낮춰야 했다. 무엇보다 이처럼 연령대가 각기 다른 대가족을 여행사에 맡긴다는 게 불안했다. 뉴욕에 갈 때마다 극진한 환대를 받았던 우리로서는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이들의 한국 방문을 책임지기로 하면서 팔자에 없는 한국여행 가이드를 하게 됐다.
최종 여행 일정은.
*서울 인사동 3박
*경주, 부산 3박
*서울 강남 2박으로 확정됐다.
미리 가족별로 룸을 예약한 덕에 인사동 오라카이 스위츠에서 편안하게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 사흘간은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 (한복 입고), 창덕궁, 청계천, 익선동을 둘러봤다.
대형 28인승 리무진을 타고 3박 4일 떠난 지방 여행에서는 문경의 선산에 들러 모든 가족이 산소에서 간단한 제사를 지낸 후 경주로 향했다.
경주에서는 불국사와 첨성대, 괘릉을,
부산에서는 통도사와 감천마을, 자갈치시장을 거쳐 해운대에서 숙박을 하며 여유 있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서울에 돌아와서는 한국에 사는 모든 사촌들이 모여 총 50여 명이 함께 하는 친척 모임을 가졌다.
다음날 롯데월드와 코엑스에서 실컷 놀고, 마지막 날은 남대문시장과 명동 거리에서 쇼핑을 즐겼다.
9일 동안 남편과 둘이 한국 가이드가 되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쉴 틈 없이 정신없이 다니며 미국인의 눈으로 보는 한국을 함께 느꼈다.
전체 일정 중 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익선동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익선동에 가서 인파가 북적대는 갈매기살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Awesome"을 외치며 휴대폰을 들어 촬영하기 바빴다.
청와대 관람 버스에서 한 번, 첨성대 화장실에서 한 번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찾자 '뉴욕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여행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간 후 사촌 동생이 처음 보내온 메시지는 쓰레기가 넘쳐나는 맨해튼의 쓰레기통 사진과 함께 '드디어 집에 온 실감이 난다'라는 한숨 섞인 글이었다.
일행이 가장 신기해하던 것은 서울의 지하철이었다. 왁자지껄한 역 구내를, 승강장의 슬라이딩 도어를, 청결하고 밝은 차량 내부를 보며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지하철이 있다니!'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다니는 내내 국뽕에 젖게 하는 여행이었지만 느낀 점도 적지 않았다.
서울 시내를 다닐 때는 걷는 길이 많아 걱정을 했더니 '뉴요커들은 걷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라며 큰소리를 쳤다. 매일 1만 5 천보에서 2만 보에 달하는 거리를 아이들과 노인들 모두 정말 잘도 걸었다.
서울의 깨끗한 지하철은 자랑스러웠지만 쌍둥이 유모차를 밀고 가다 갑자기 계단을 마주칠 때마다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현실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하긴 맨해튼 지하철도 엘리베이터 없는 곳이 꽤 있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는 리무진 버스에서 기사님이 아이들 심심할까 봐 TV 화면에 만화를 틀어줬더니 부모들이 바로 모니터를 꺼달라고 했다. 길고 긴 버스 여행에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지루한 줄 모르게 놀았다. 길에서 기다릴 때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흙놀이도 잘하고 할아버지가 손으로 음식을 떼어 먹여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평소에는 아이들의 요구를 귀담아 들어주고 존중해 주면서도 자제시켜야 할 땐 엄격하고 단호하게 교육을 시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통도사 법고식에서 스님이 북을 치는 동안 조용히 하라고 하니 두 살 배기 아이가 흙장난은 할지언정 소리 안 내고 30분 지루했을 시간을 잘도 참아냈다.
둘째 날 다섯 살배기 아이가 속이 안 좋아 길에서 구토를 했는데, 아이 엄마와 아이만 호텔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걱정도 않고 잘도 다녀서 신기했다. 지방 여행 중간 두세 명이 몸이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도, 과도한 걱정도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데려간 한국 식당마다 얼마나 맛있다고 감탄을 해가며 먹는지 처음엔 '엄청 맛있게 먹네. 식당을 잘 골라서 다행이야.' 하다가 나중에야 항상 그런다는 걸 알아챘다. 입에 맞지 않아도 새로운 음식은 꼭 한 번씩 맛보고, 어느 식당에서도 불편한 내색을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10대 큰 딸 셋이 젖먹이부터 7살까지의 사촌 동생들을 손 잡고 업어주며 얼마나 잘 챙기는지 우리나라에선 7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가족의 가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아 부러우면서도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40대의 사촌 동생 부부 6명은 모두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 맨해튼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다.
각각 셋씩의 아이들을 부부가 번갈아가며 잘 보살피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면서도 아름답기만 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경향이 반드시 돈 문제 때문만도 아니지 않은가. 언제쯤이면 우리도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자라나는, 그래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 올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간이었다.
팔자에 없는 가이드를 하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인천공항에서 헤어질 땐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정도 많이 들고 무척이나 보람찼던 가이드 경험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왓츠앱에 올라온 인사를 보며 그때의 추억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