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에서 독일까지 넘어가, 라인강변을 따라 여행하던 중 일이 터졌다.
하필이면 유럽 여행 중 가장 작은 방, 가장 작은 욕실에서 묵은 날이었다.
나는 샤워 중이었고, J가 뭔가를 전해주려고 화장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순간, 화장실 문이 닫히면서 문손잡이가 툭 빠져버린 거다. 독일답게 문은 견고하여 틈 하나 없이 딱 맞아 있었고, 문손잡이 걸쇠는 밀려 들어가 열 수가 없다.
이 호텔은 셀프 체크인 시스템이라 직원들은 밤에 근무하지 않는ㄷ. 그리고 욕실엔 전화도 없다. 휴대폰은 침대 위에 덩그러니. 내일 아침 룸메이드가 올 때까지 꼼짝없이 화장실에 갇혀 있어야 하나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와중에 J는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문은 독일제 섀시라서 빈틈이 하나도 없네. 너무 딱 맞아 공기도 안 통한다.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어. 손잡이를 끼우려면 안의 걸쇠가 나와야 하는데. 블라블라"
('나도 알거든! 다 보이거든!')
나는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수건만 두른 채 욕실을 둘러봤다. 창문은 없고, 변기에 앉을자리만 간신히 있는 작은 공간. 하지만 천장에 팬이 돌아가고 있어서 질식사는 면하겠지 싶었다.
그때부터 둘이 탈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둘 중 하나.
문손잡이를 고치거나 큰소리를 내어 옆방에 구조를 요청하거나...
문제는 독일문의 방음이 너무나 잘 되어 옆방까지 소리가 전달될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손잡이를 고치는 것. 화장실 안을 뒤져봐도 쓸만한 도구는 나오지 않았는데 그나마 작은 손가위 하나가 있었다. 걸쇠 구멍을 쑤셔봤지만 꿈쩍도 안 한다.
결국 빠진 문손잡이를 들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시끄럽게 꽤 오랫동안 두드렸더니, 우리 방 문을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오, 드디어!)
하지만 이 호텔 방은 비밀번호 입력으로 열리는 구조라서, 비밀번호를 모르면 문을 열 방법이 없다. 그래서 떨어진 손잡이로 "2333" 비밀번호를 두드려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땅땅 땅땅땅 땅땅땅 땅땅땅. 그 다음엔 입으로 츠바이, 트라이, 트라이, 트라이! 목이 터져라 외쳐댔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확실히 독일 문의 방음은 세계 최고였다.
기다리다, 두드리고, 외쳐보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다시 가위를 걸쇠에 끼워 조심조심 당겨봤는데, 이번엔 걸쇠가 움직였다! 살살 문손잡이를 맞춰 끼우고 돌리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
얼추 한 시간 이상 갇혀있었던 것 같다.
근데 이 상황… 어딘가 영화에서 본 것도 같은데? 코미디 영화였나?
밖으로 나가보니 복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면서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방으로 돌아온 뒤, 호텔 측에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방금 욕실에 갇혀있다 탈출했다. 욕실 문고리가 빠지면서 잠겨서 1시간 넘게 갇혀있었다. 문손잡이 좀 고쳐라.'
호텔 측 답장은 다음날 체크아웃할 즈음에야 왔다..
'어제 옆방 게스트가 소음을 듣고 심상찮은 상황인 것 같다는 연락을 해서 알았다. 게스트가 112에도 신고해서 연락을 받고 가려고 했는데 문제가 해결됐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문고리가 그런지는 정말 몰랐다. 정말 미안하다. 다음에 또 오면 10% 깎아주겠다.'
다음에 오면 10프로 할인이라니 너무한 거 아냐? 씨름하기도 귀찮고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라 미련 없이 떠났었다.
그래도 한 시간 만에 탈출한 거면 운 좋은 편이지 하면서.
이 일이 벌어진 게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지난달에 같은 경로로 스위스 바젤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그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 다시 그 호텔 가서 잘까? 10프로 할인해 달라고 하고?"
J의 웃음 섞인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50퍼센트라면 모를까.
그때 50퍼센트 해달라고 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