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국의 과속 과태료

by Bora

해외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발신지는 영국.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바로 전 겨울에 렌터카로 한 달 동안 영국과 스코틀랜드 지역을 돌았었다.


겨울철의 유럽은 낮이 짧은 데다 비가 자주 내리고 우중충해서 사람들이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서, 나는 겨울 유럽 여행이 좋다. 유럽 대륙이 아닌 영국과 스코틀랜드 여행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비수기의 호텔은 꽤 저렴했고 어딜 가나 주차가 편리했다.


날씨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바닷바람은 찼지만 하늘의 구름이 낮게 깔리며 스펙터클 하게 움직였고, 때론 아침나절에 파란 하늘을 볼 수도 있었다.


물론 난관도 있었다.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다.

맛집? 찾아가 봐야 아무 소용없다. 어차피 다 문 닫았으니까.

평점 좋고 분위기 좋아 보이는 식당, 구글 정보에 문 열었다고 하여 30분을 달려갔는데 입구에 '쏘리, 이번 계절은 문 닫아요'라고 쓴 메모가 떡하나 붙어 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면 그저 문 연 식당만 봐도 감지덕지다.


영국 여행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운전이었다. 운전석이 반대편에 있어서 불편했던 건 아니다. 그건 곧 익숙해진다.


문제는 도로의 폭이었다. 영국의 시골길은 그동안 내가 운전해 본 어떤 도로보다 폭이 좁아서 차선을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를 방문하려면 마을 안까지 한참을 찾아들어가야 했고, 회전 교차로에서 제 차선을 타지 않는다 싶으면 여지없이 뒤차가 뻥빵 클랙슨을 눌러댔다.


운전은 피곤했지만 스코틀랜드 북동쪽 오크니 섬과 북서쪽 스카이 섬까지 하이랜드의 황야지대를 다니며 짙은 회색 구름 아래 히스풀이 나부끼는 독특한 풍경을 즐겼다.


어쨌든 무사히, 만족스럽게 영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과속 과태료 통지가 날아온 것이다.


올 것이 왔구나. 그토록 조심을 했건만 4주 여행에 과속 딱지가 단 한 장이라니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소문보다 영국 일처리가 빠르다.


유럽에서 과속딱지 뗀 게 한두 번이던가? 처음 독일에서 렌터카 여행을 했을 때 생각이 난다. 독일 아우토반은 무제한이라기에 신나게 달렸다가 과속딱지 몇 장을 받았던지. 유럽 본토에선 과속에 걸라면 렌터카 회사에 결제했던 카드번호로 통보 없이 자동 결제되곤 끝나던데 이번엔 왜 우편으로 통보를 하는 걸까?


얼마인고 하며 뜯어보니 귀여운 영국 경찰.

편지 내용이 실소를 자아낸다.


A4용지 절반을 장황하고 형식적인 내용으로 채우더니 본론은

'귀하가 운전한 ***차량이 O월 O일 몇 시에 노포크지역 OO에서 과속으로 찍혔습니다. 그 차를 운전한 사람이 귀하가 맞는다면 동봉한 서류에 귀하의 인적사항을 적어 회신해 주세요.

회신하지 않으면 200파운드 벌금을 맞게 됩니다.'


일단 30만 원을 뺏길 순 없으니 국제등기료 4,000원을 내고 얼른 답장을 보냈다.


2주쯤 지났나? 두 번째 편지가 왔다. 앞뒤로 꽉 찬 3장의 종이가 들어있었다.


내용인즉슨,

'귀하의 답신을 통해 귀하가 속도위반자 본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귀하에게는 앞으로 세 가지 옵션이 있다.

첫째, 범칙금을 내는 것이다. 100파운드, 당시 15만 원.

둘째, 교통안전교육을 받는 것이다. 교육을 받을 사람은 범칙금 항목에 체크하지 말 것.(누굴 바보로 아나?)

셋째,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다. 이것을 선택할 사람은 첫째나 둘째 항목에 체크하지 말 것.(그렇군, 첫째나 둘째 항목에도 같이 체크하는 사람도 있나 보다.)


교통안전교육을 받으면 벌금이 줄어드나 하고 뒷장을 봤다. 영국 각지의 교육장 리스트가 나와있다. 교육만 받으면 되나? 하고 찬찬히 살펴보니 교육받으면 90파운드. 10파운드를 깎아준다. 그리고 벌점이 없으니 이걸 권장한단다.


만오천 원 줄이자고 교통안전 교육을 받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갈 수는 없는 일.


벌금을 내려고 했더니 영국 경찰서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내야 한단다. 그걸로 끝이냐고? 그럴 리가!


우편으로 답신용지와 함께 면허증 사본을 부쳐야 한다. 원래는 원본을 보내야 하는데 외국인이라 특별히 봐주는 것이라고. 여기에도 신상 정보와 면허증 번호를 써야 한다. 만일 벌금만 내고 면허증 사본을 보내지 않으면? 몇 년 내 영국으로 입국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시 한번 4000원 내고 국제등기로 부쳤다.

영국에서 과속하시는 분들 부디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