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탈리아와 한국의 의료시스템 비교 (1)

이탈리아의 골절 수술 체험

by Bora

보험금이 입금됐다. 드디어 작년 성탄절에 시작된 골절 사고와 그 이후 이어진 치료, 정산까지 모든 과정이 마무리됐다.


사고는 이탈리아에서 났고, 골절 수술은 로마의 병원에서 받았다. 마무리 철심 제거 수술은 귀국 후 한국, 서울의 병원에서 했다.


평소 병원 치료를 거의 받아본 적도 없고, 실손보험도 없어 의료 시스템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사고로 두 나라의 치료 과정을 직접 세세히 관찰하게 됐다. 내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비슷하리라 보고 그 과정을 공유해 본다.




사고는 로마 근교 작은 마을 피우지의 숙소 복도에서 일어났다. 이탈리아 한 달 반 살기의 절반이 지난 무렵, 바티칸 성탄절 미사를 보기 위해 새벽에 길을 나섰다. 아파트 복도를 바삐 걷다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물(또는 기름)을 밟으며 그대로 미끄러졌다. 몸이 통제력을 잃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팔꿈치가 먼저 깔리고, 다리가 부딪치고, 얼굴까지 바닥에 부딪혔다.

'설마 부러진 건 아니겠지?'


하지만 성탄절에는 로마행 시외버스가 운행하지 않았다. 다음날, 퉁퉁 부은 팔을 부여잡고 미리 찾아둔 로마의 병원으로 향했다. 이탈리아 공공병원은 무료이지만 대기 시간이 길다고 해서, 평이 좋은 국제병원을 선택했다.


파이데이아 국제병원은 뒤로 멋진 공원을 품은 현대식 건물이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싸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쓰라고 여행자보험을 들어둔 것 아니겠는가.


응급처치실 같은 방에 들어가 부어오른 팔을 보여줬다. X레이를 찍어보니 골절이었다. 팔꿈치 뼈가 부러져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수술팀을 구성해야 하는데 휴일이라 어려우니 다음날 오후로 하자고 했다.


그날부터 입원하라 했지만, 짐을 챙겨야 하니 내일 오겠다고 했다. 가기 전 깁스를 해주었는데, 팔을 90도로 꺾어 석고를 붙이고 마지막에 초록 접착테이프로 마무리하며 물었다.

"노랑도 있고, 빨강도 있어요. 핑크도 있는데 핑크로 해 드릴까요?"

그냥 녹색으로 해 달라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살짝 후회했다. 기브스 색깔을 고를 수 있다니 꽤 멋지지 않은가.


깜짝 놀란 건 의료비 정산을 하면서였다. X레이와 석고붕대만 했는데 거의 1,000유로, 약 160만 원이었다. 내가 든 여행자보험의 해외 의료비 한도는 2천만 원, 다음날 아침 받은 수술 견적서는 11,000유로였다. 첫날 비용까지 합치면 1,900만 원이 넘는다. 차후 치료비까지 고려하면 보장액을 초과할 게 뻔했다.


미국에서 병원비 협상으로 금액을 낮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나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견적 잘 받았습니다. 제 여행자보험 한도는 총 1만 유로입니다. 어제 치료비와 차후 치료비를 포함해 1만 유로 이내여야 합니다.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1인실 입원하지 않아도 되니 총 1만 유로에 맞출 수 있는 방안을 알려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1만 유로로 가능하다면 1시까지 병원에 가겠습니다.

이렇게 메일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나는 "안 깎아준다 하면 여기서 수술 못 받는다. 며칠 더 걸리더라도 다른 병원을 찾겠다. 차라리 비행기 타고 서울 가서 수술받는 게 싸겠다!" 하고 버티다 일단 병원에 가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다행히 병원으로 가는 길에 답장이 왔다.

존경하는 고객님,
저희는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의료팀과 상의 후 새로운 견적을 드리겠습니다. (중략)
- 파이데이아 병원 재무팀, 안드레아


병원에 도착해 긴 기다림과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는 위협, 그리고 협상 끝에 1,500유로를 깎았다. 치료는 절반을 먼저 결제해야 시작할 수 있었다. X레이 비용으로 150유로를 추가로 냈다. 한 번 찍는 데 24만 원이라니!


X레이를 다시 찍은 뒤 병실로 안내됐다. 병원은 모두 1인실이라고 했는데, 이것만 남았다며 특실로 데려갔다. 거실, 테라스, 넓은 소파까지 갖춘 660유로(약 백만 원) 짜리 럭셔리 병실이었다. 별도의 어메니티도 있었다.


"보호자도 병실에서 잘 수 있나요?"라고 묻자 "물론이죠. 90유로입니다."란다. 완전 바가지 천국 같았다.


수술 전, 간호사가 나타나 "보호자 오늘 여기서 주무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얼른 "노"라고 했지만, 나가려는 간호사를 J가 붙잡고 통역기를 켜서 물었다.

"여기서 자면 돈을 내야 하나요?"

"원래는 내야 하는데, 제가 눈감아주면 괜찮아요."라며 눈을 찡긋했다. 역시 백의의 천사다!


수술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마취에서 깨 비몽사몽한 상태로 병실에 옮겨졌다. 철심 두 개를 박았다고 했다. 진통제를 계속 투여받았지만, 왼팔은 꼼짝할 수 없었다.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아팠지만,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이탈리아 병원(적어도 내가 간 곳)은 처치가 참 심플했다. 작은 링거 하나와 진통제가 전부였고, 밤에는 그것마저 빼준다. 수면제와 진통제 덕인지 밤새 잘 잤다. 간호사는 몇 번 조용히 들어와 붓기를 확인하고 혈압을 재며 상태를 살폈다. 아침에 일어나니 통증이 사라지고 팔도 움직일 수 있었다.


기대했던 호텔식 병원의 아침은? 크루아상 하나와 차 한 잔. 아주 심플했다. 대신 고급 마비스 치약과 병원 전용 탄산수, 일반 생수가 제공됐다. 아침을 먹고 나니 직원이 나타나 침대 시트를 갈아주겠다고 했다. 11시 체크아웃이라면서 말이다.


10시쯤, 수술을 집도한 파브리 박사가 나타났다.

"통증은? 기분은? 손가락을 움직여보세요. 좋아요. 손목도 돌려보세요. 좋아요. 팔꿈치는 살살 접어보세요. 아니, 어깨는 돌리지 말고, 팔꿈치만 조금씩 접으세요. 그렇죠. 통증이 오면 멈추고, 괜찮으면 계속 그렇게 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다음 주에 봅시다."


이번에는 깁스 대신 거즈로 두툼하게 감은 소프트 처치였다. 깁스보다 훨씬 편해 옷도 입을 수 있었다. 천문학적인 병원비만 남았지만, 그동안 낸 보험료를 생각하며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퇴원 처방은 진통제뿐이었다. 약한 것부터 강한 마약성 진통제까지 강도별로 알아서 먹으라 했지만, 더 이상 통증이 없어 아예 사지도 않았다. 이후 1주일 뒤 파브리 박사 개인 병원에서 드레싱, 3주 뒤 스테이플러 제거까지 추가 요금 없이 마무리됐다.


해외 의료비는 영수증을 메일로 보내고 열흘 만에 입금됐다. 현지 환율에 맞춰 카드 수수료만 제외하고 깔끔하게 처리됐다. 수술한 팔은 깨끗하게 아물었다.

나는 한 달을 더 여행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