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젠틀 오로라 (3)

by Bora

처음엔 오로라가 맞나 싶었다.

밤 8시가 넘은 시각, 아이슬란드 북쪽 외딴 마을의 게스트하우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막 들어가려는데, J가 외친다.

“오로라 좀 봐!”

하늘이 반원형으로 뿌옇게 덮여 있다. 카메라로 찍어보니, 오로라였다.


그러나 “뿌연 오로라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는 동안, 점점 초록빛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온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진하지는 않지만, 동쪽에서 북쪽 하늘까지 전체를 휘감아버리니 마치 수채물감으로 하늘 도화지를 칠한 듯했다. 별들은 총총 반짝이고, 마침내 군데군데 진초록 소용돌이와 연한 오로라 커튼이 나타났다.


오로라 지수는 2도 되지 않아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부드럽게 퍼지는 오로라라니.

미약하지만 밤하늘을 가득 덮으며 살짝살짝 포인트를 주는 그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붉은빛도 살짝 섞여 있다.

이내 아주 연한 반원형 커튼으로 은은하게 남더니, 이번엔 횃불처럼 아래에서 위로 퍼져 올랐다.


별들이 반짝이는 아이슬란드의 밤하늘에서는 오로라 지수와 상관없이 오로라를 만날 수 있다.

지금 KP 지수는 1.67에 불과하지만, 아이슬란드 전역이 오로라 오벌 한가운데에 들어 있다.

한 시간 넘게 하늘에는 별과 함께 점묘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느릿느릿, 하늘 곳곳에 연둣빛 물감을 뿌려놓은 듯했다.


그러나 이 풍경을 카메라에 온전히 담을 수는 없었다. 하늘에 너무 넓게 퍼져 있으니, 일부만 잘라 찍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눈에는 연둣빛 물감으로만 칠한 수채화 같은 풍경이, 카메라 렌즈를 통하면 상층에 붉은 기운을 머금은 진한 오로라로 변한다.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꼭 물감으로 표현하고 싶은 풍경. 나에게 이번 젠틀 오로라는 수채화로 남을 것 같다.


이런 오로라도 나쁘지 않다.

보는 마음이 조급하지 않아 모든 것이 여유롭다. 오로라도 여유롭고, 내 마음도 여유롭다.

외진 곳에 자리한 이 숙소는 사방이 캄캄하다. 문만 열면 부드럽게 퍼지는 오로라가 펼쳐져 있다. 한참을 바라보다 추워지면 들어가 쉬고, 다시 나와 다른 녹색 그림을 바라보는 맛이라니.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은 2주 일정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 기간 예보에는 사흘을 제외하고 오로라 지수가 모두 미약하기만 했다. 게다가 KP 지수가 높아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오로라를 만날 확률은 더욱 낮아진다.


하지만 약한 오로라는 하늘만 열려 있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지수가 1이나 2밖에 되지 않는 날이라도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면, 오로라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다만 너무 약해서 맨눈으로 보기에는 뿌옇게만 보인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미약한 오로라도 조금만 기다려주면, “나도 오로라야” 하고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온다.


비록 내가 생각한 ‘진정한 오로라’는 아닐지라도, 강렬한 오로라가 오지 않은 날에도 별빛 반짝이는 밤하늘을 연초록빛으로 덮어주던 그 풍경은, 내 마음속 오로라 풍경 중 하나로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