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가장 강렬한 오로라를 온몸으로 마주한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큰 욕심이 없다. 지난번에 스치듯 지나가며 이미지로만 남아 있던 아이슬란드의 땅을 이번에는 구석구석 밟아보고, 기회가 된다면 몇 번쯤 오로라를 다시 만나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아직 오로라 극대기라 할 수 있는 시기이니, 2주 정도 머무르면 아이슬란드 곳곳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로라 예보와 날씨 상황에 맞춰 움직이기 위해 일부러 첫날 숙소만 예약해 두었다.
작년 11월 말, 10개월 전에 미리 잡아두었던 여행의 시간이 마침내 다가왔다. 런던을 경유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몸과 마음을 다시 오로라 체이서로 리셋해 본다.
오로라 초보 시절, 아무 준비 없이 아이슬란드를 찾던 때와는 달라졌다. 이제는 아이슬란드에 특화된 여러 유용한 앱들이 있다. 오로라 앱은 물론이고, 변화무쌍한 날씨를 알려주는 Vedur 앱, 그리고 수시로 차단되는 도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Safe Travel 앱도 손쉽게 쓸 수 있도록 화면에 옮겨 놓았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주일 내내 맑던 날씨가 우리가 도착한 다음 날부터 연일 비 예보로 바뀐 것이다. 오로라 앱의 예보에 따르면, 우리가 머무는 2주 동안 KP 지수가 4 이상으로 오르는 날은 단 세 번뿐이다. 게다가 앞으로 일주일간 비가 계속된다 하니,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득 ‘욕심’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결국 만족을 좇는 마음이 아닐까.
쉽게 얻을 수 없을 때 간절함이 깊어지고, 그 간절함이 충족되는 순간 더 큰 행복이 찾아오지만, ‘이제 충분하다’고 느끼는 그때부터 간절함은 서서히 사라져 버린다.
날씨가 비관적으로 바뀔수록, 오로라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드디어 오로라를 만났다.
아이슬란드에서 다시 맞이한, 12년 만의 재회였다.
처음엔 구름인가 싶었다.
희뿌연 빛이라 구분이 어려워 휴대폰으로 찍어보며 확인해 보니, 사방이 오로라였다. 붉은빛이 섞인 오로라가 하늘 군데군데 피어오른다. 너무 약해서 맨눈으로는 흐린 구름처럼만 보이는 게 아쉬웠다.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이라, 오로라가 조금만 더 강하게 나타나면 좋으련만 너무 미약했다.
그러나 잠시 후, 구름처럼 희뿌옇던 것들이 점점 진한 초록으로 변하며 부드럽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진하지는 않지만 붉은빛이 은은히 섞여 있었다.
드디어 카메라를 통하지 않아도 그 존재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넓은 하늘 위에 길게 다리를 놓은 듯 펼쳐지다가, 양쪽에서 부채꼴로 퍼져 나간다. 초록빛 사이로 붉은 기운이 섞이며 칼날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
12년 전 그때 보았던 오로라와 닮아 있다.
어느새 북쪽, 서쪽, 남쪽 하늘로 제각기 갈라지며 퍼져나간다. 곧 칼날 같은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한 형체로 부드럽게 번진다.
이번 오로라는 움직임이 크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밝아졌다가 스르르 사라지고, 다시 커졌다가 희미해지길 몇 차례 반복했다. 처음의 가벼운 춤사위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본 오로라 중 가장 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흘 만에 중급 수준의 오로라를 만났으니 한숨은 덜었다. 예보에 따르면 앞으로 세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고, 오늘이 그 첫 번째 만남이었다. KP 지수가 5 이상으로 오를 예정이라 하니, 우리의 동선도 그에 맞춰 다시 조정하기로 했다.
12년 전에는 한겨울의 아이슬란드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오로라를 찾아다니느라 풍경을 즐길 겨를이 없었다.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1번 국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로가 통제되고, 가게도 드물어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초록이 남아 있는 가을의 아이슬란드는 기온, 복장, 편의성 어느 면에서도 겨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온통 눈 세상뿐이던 그때와 달리, 부드러운 초록빛이 대지를 감싸고 있는 풍경은 마치 전혀 다른 나라에 온 듯하다.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