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여행 (3)
우리가 에콰도르에 온 이유는 연말에 이어지는 축제를 보기 위해서다. 그 여정의 첫 도시는 아수아이주에 있는 쿠엔카, 아수아이주는 외교부에서 [출국 권고 구역]으로 표시한 지역이다.
구도심이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구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첫 목적지가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역이라는 점, 그리고 키토까지 육로로 8~10시간이 걸린다는 점 때문에 부담도 컸던 곳이다.
출발 전 교통편을 꼼꼼히 찾아본 끝에 쿠엔카 지역에서 공인된 아주택시(Azu Taxi)를 이용해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했다. 공항에 들어오는 택시는 모두 아주택시였고, 깔끔하게 미터기를 켜더니 4km 남짓한 거리 요금이 3달러도 되지 않는다.
구도심 안에 자리한 호텔은 100년도 넘은 고풍스러운 건물로 방은 쾌적하고 깔끔했다. 호텔 직원은 이곳이 에콰도르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며, 버스를 타고 키토로 이동하는 것부터 밤늦게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까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것 봐. 항상 인터넷이 과장된 게 많다니까?”
에콰도르의 치안 이야기를 계속하며 불안해하던 나에게 J가 한마디 던진다.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이브, 에콰도르에서 가장 상징적인 종교 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Pase del Niño Viajero(파세 델 니뇨 비아헤로)’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여행하는 아기’라는 뜻의 이 축제는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로, 아기 예수의 이미지가 전 세계를 순례하며 축복을 받았다는 믿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퍼레이드가 열릴 도로에는 만국기 대신 쿠엔카 깃발이 펄럭이고, 축제가 시작되는 성당 앞은 전날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폭죽을 사 공중으로 쏘거나 표적을 맞히며 흥겹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미, 특히 에콰도르에서는 밤 외출을 삼가야 한다는 말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했다. 불안해 보이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고, 우범 지역 특유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조명이 반짝이는 밤길을 가볍게 산책하고 돌아왔다. 해발 2,500미터가 넘는 적도의 도시 쿠엔카는 12월에도 산들바람이 불어와 쾌적하고 시원했다.
쿠엔카에서 매년 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축제는 종교적 신앙에 원주민의 전통문화가 융합된 대규모 행사라더니, 도시 전체가 이미 축제 분위기에 잠겨 있다.
다음 날인 12월 24일, 구시가 중앙의 대성당에서 미사가 끝난 뒤 화려하게 흩날리는 장미꽃잎 아래 행렬이 출발하면서 본격적인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아기 예수를 형상화한 다양한 복장을 입고 가족들과 거리를 누빈다. 직장, 마을, 학교, 가족 단위로 복장을 맞춰 입은 행렬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행진을 한다.
오전 10시, 장미꽃으로 장식한 꽃차와 함께 시작된 퍼레이드는 오후 4시가 넘도록 쉬지 않고 이어졌다. 에콰도르와 콜롬비아가 세계 최대의 장미 산지라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웨딩 장미의 70퍼센트가 이 지역에서 수입된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퍼레이드 속 종교적 복장과 원주민의 화려한 민속 의상은 놀라울 만큼 잘 어울렸다. 구경꾼과 행렬의 경계는 없었다. 누구든 원하면 자연스럽게 행렬에 합류할 수 있는, 노래하고 춤추며 함께 즐기는 열린 축제다.
안데스 산맥에 둘러싸인 쿠엔카는 스페인 양식의 철저한 도시 계획에 따라 건설된 식민 도시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다.
도심을 걷다 보면 격자로 이어지는 길이 종과 횡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도를 보면 한 블록의 길이는 100미터로 정사각형을 이룬다. 한 블록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건물이었던 흔적이, 지금은 여러 상점과 호텔로 잘게 나뉘어 남아 있다.
100미터나 되는 건물을 따라 걷다 보면 상점이나 식당, 호텔로 구분되어 있는데 안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없는 경우가 많다. 호텔에서 넓은 정원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다가 직원에게 그 이유를 들었다. 길가에는 좁은 문만 있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퍼즐처럼 각각의 집 공간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제각각 스페니시 기와를 얹은 건물들은 토착 양식과 유럽 양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햇살 가득한 거리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은 단 번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즐기고, 나누고, 먹을 것을 건네며 축제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축제의 마무리였다. 처음 꽃차와 함께 퍼레이드를 이끌었던 추기경과 정부 관료, 기마 군악대가 행렬의 마지막을 지나가자 곧이어 청소차와 쓰레기 수거차, 청소부들의 행렬이 뒤따랐다.
장미꽃으로 시작되어 10만 명의 인파 속에 말똥과 쓰레기로 어지럽혀졌던 거리는 여러 단계의 청소 작업과 물청소를 거치며, 축제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말끔해졌다. 시작과 끝이 이토록 분명한 축제라니.
치안 부재의 오명이 높은 에콰도르 제1의 도시 키토와 제2의 도시 과야킬과 달리, 제3의 도시 쿠엔카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겠지만, 에콰도르의 첫 도시 쿠엔카에서는 적어도 불안한 마음으로 거리를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