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버스 여행

중남미 여행 (4)

by Bora

에콰도르 남쪽의 도시 쿠엔카에서 키토까지 이어지는 여덟 시간의 버스 여행은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최고의 경험이었다. 호텔 매니저 윌머가 예약해 준 버스는 대형 버스가 아닌, 11명까지 탈 수 있는 미니버스 ‘부세타(Busetta)’였다. 우리나라의 16인승 미니버스를 가로 3석, 세로 4열로 배치한 구조라 좌석이 널찍했다. 뒤로 젖혀지는 의자에 쿠션도 폭신해 생각보다 훨씬 안락하다. 승객은 우리 둘과 키토에서 온 학생 남매까지 단 네 명뿐. 수상한 사람을 경계할 필요조차 없는 조합이다.


해발 2,500미터가 넘는 쿠엔카를 출발한 버스는 8시간 내내 해발 3,600미터까지 안데스 산맥을 오르내리며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푸른 산자락과 도로변에 보이는 원주민들, 밭에서 일하는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처음 두세 시간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느라 살짝 어지러웠지만, 중간 지점인 리오밤바를 지나면서 도로가 넓어지고 머리에 만년설을 인 안데스의 고봉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에콰도르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6,263미터의 침보라소산이다. 기사 뒷자리에 앉은 우리는 어느새 가이드가 된 기사 아저씨의 손짓을 따라가며 설산 구경을 제대로 했다. 에콰도르 사람들은 침보라소산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주장한다. 기사 아저씨 역시 “에베레스트 노!”를 외치며 침보라소가 최고라고 강조한다.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 아니라 적도 부근이 더 불룩한 타원형이어서, 지구 중심에서의 거리로 따지면 침보라소가 더 높다는 것이다. 자기 나라 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삿갓처럼 흰 눈을 이고 있는 코토팍시산은 정말 멋있었다. 해발 5,897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중 하나인 이 산은, 5,000미터부터 시작되는 적도 빙하를 품고 암바토에서 키토로 가는 내내 웅장한 자태를 보여줬다.


8~9시간쯤 걸릴 거라던 예상과 달리, 막힌 길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추월과 과속을 계속한 버스는 8시간도 채 되지 않아 키토 중심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타기 전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쾌적하면서 안데스의 풍경까지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멋진 버스 여행이었다. 버스 여행에 자신이 생긴 우리는 택시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바꿔 이후의 단거리 이동도 버스로 해보기로 했다.


다음 날에는 완행버스를 타고 키토 북부의 오타발로로 향했다. 남미 최대의 원주민 시장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사전에 답사해 두었던 키토 북부터미널 카르셀렌(Terminal Terrestre Carcelén)은 다소 허름했지만, 지나치게 북적이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불안해 보이지도 않았다. 버스 회사마다 작은 창구를 두고 표를 팔고 있었는데, 수요가 많은 오타발로행이 맨 앞 부스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떠나는 버스표를 주는 대로 사서 올라타는 시스템이라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하고 쾌적한 버스를 고르겠다는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아래 짐칸에 싣고 버스에 올랐다. 카메라 캐리어를 어떻게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차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의자 밑에 두라고 한다. 생각보다 공간이 넉넉했다. 배낭은 머리 위 짐칸에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J가 삼십여 년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야간버스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의자 아래에 두었던 카메라 가방을 뒤에 있던 도둑이 슬그머니 끌어당겨 카메라만 빼간 이야기였다. 결국 카메라 가방을 꺼내 다리 사이에 끼고 가기로 했다.


출발 전 배낭은 안녕한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 머리 위에 올려놨던 배낭이 한 칸 뒤로 옮겨져 있다.

'어떻게 된 거지?'

다시 앞쪽으로 옮겼다가 안 되겠다 싶어 무릎에 안고 가기로 했다.

잠시 후 차장 비슷한 사람이 다가와 배낭을 위에 올려야 한다며 거의 뺏다시피 한다. 필요 없다고 두 팔로 껴안고 버티자 별말 없이 돌아간다.


터미널을 벗어나자마자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계속 올라탄다. 이 와중에 통로 건너편에 앉은 복권장수는 내 팔을 툭툭 치며 복권을 사라고 권한다.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팔걸이 위에 복권장수 아저씨 손이 올라가 있다. 자기 팔걸이는 비워둔 채 왜 남의 팔걸이에 손을 올리고 있는지. 내 손, 내 가방에서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 손을 뻗은 채 아저씨는 쿨쿨 자고 있다.

'아저씨 팔걸이 옆에 있잖아요.'

를 통역기에 썼다가 괜히 일이 복집해질까 봐 그냥 지워버린다.


어느새 버스는 만원이 되었지만, 머리 위 짐칸에 짐을 올려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우리 배낭만 위에 올리라고 했는지, 왜 남의 팔걸이에 손을 얹고 자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버스 안의 분위기는 옛날 우리나라 시골 버스를 떠올리게 한다. 승객들은 가다가 어디서든 내리고, 어디서든 손을 들어 잡아탄다. 과일 몇 알, 과자 몇 봉지를 든 잡상인들이 수시로 올라와 한 바퀴 돌고는 마음대로 내린다.


에콰도르에서도 전통 원주민 문화가 잘 보존된 마을로 알려진 오타발로로 가는 길에는 대규모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이어진다.


바로 우리나라 강남고속터미널 꽃상가에 웨딩 장미를 수출하는 장미 재배 단지라고 한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일 년 내내 봄 날씨가 이어지는 이 지역은 장미를 키우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편안한 여행은 아니었어도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나머지 버스 여행도 주의만 기울인다면 무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