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에서 보름을 지내며

중남미 여행 (7)

by Bora

에콰도르의 물가는 마치 20여 년 전쯤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물가가 저렴해 살기 좋다고 알려진 콜롬비아보다도 더 싸게 느껴진다.


지방 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웬만한 것은 모두 1달러, 이른바 ‘운돌러’다.

잘 익은 아보카도 네 개에 운돌러,

붉게 익은 애플망고 세 개에 운돌러,

시외버스 요금도 운돌러,

망고 하나를 잘라 가득 담아 준 컵도 운돌러,

맛있게 구운 꼬치 한 줄 역시 운돌러다.


식당에서 ‘오늘의 메뉴’인 메누 델 디아는 3-4달러다.

고기 수프 한 그릇에 고기 요리, 삶은 콩과 흰쌀밥, 샐러드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오고, 여기에 생과일주스 한 잔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국토의 중앙에 솟아있는 안데스 산맥을 따라, 에콰도르의 마을들은 대부분 살기 좋은 해발 2000미터 이상의 고산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적도의 나라라지만 고도가 높아 평균 기온은 일 년 내내 봄가을처럼 쾌적하다. 해 뜨는 시각도, 해 지는 시각도 대체로 6시 전후로 거의 변함이 없다. 일 년 내내 낮 12시간, 밤 12시간이 반복되는 나라다.


적도의 황혼은 유난히 짧다. 저녁 6시가 넘어서며 하늘이 붉게 물들어 ‘노을이 참 예쁘다’ 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5분이나 지났을까, 해가 순식간에 꼴딱 넘어가 버린다.

한 해에 적도와 북극권을 다녀보니 모든 것이 비교된다. 북극권의 겨울 해는 정말 천천히 움직였었다. 황혼이 서너 시간 동안 하늘을 천천히 물들여 시간이 멈춘 듯했다.


연중 큰 온도 변화가 없는 쾌적한 날씨 덕분에 난방 걱정도 없고, 집을 짓기도 수월하다. 적도의 따가운 햇볕 아래 농작물 재배와 목축 환경도 좋아 식재료비가 매우 저렴하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난으로 비록 통화는 미국 달러를 사용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물가다. 공산품 가격은 차이가 있겠지만, 생활 물가만큼은 지금까지 다녀본 나라들 가운데 가장 저렴하게 느껴진다.


외교부에서 경고하는 치안 문제는 주로 일부 마약 카르텔이 활동하는 에콰도르 최대 도시 과야킬 인근, 그리고 베네수엘라 난민이 몰리며 소매치기와 강도가 늘어난 수도 키토 일부 지역에 국한된 듯하다. 그 외의 지방 도시는 평화롭고 정겹기만 하다.


지방의 축제를 따라다녔지만 소매치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북적여도 모두 함께 즐기러 모인 인파일뿐, 남을 해치거나 탐내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다.


작년에 로마 근교에서 한 달 넘게 머물며 겪었던 소매치기 경험과는 대조적이다. 가볍게 멘 배낭은 수시로 지퍼가 열려 있었고, 지하철에서는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손길을 몇 번이나 막아야 했다. 요즘 스마트폰 도난 사고가 가장 많은 도시가 런던이라는 뉴스도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

거리를 걷다 보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바나나튀김 두 봉지를 들고 “바나나!”를 외치는 소녀, 과일 한 통을 들고 다니며 망고를 파는 아저씨, 옥수수 열댓 개를 놓고 옥수수알을 까고 있는 아저씨, 완두콩을 훑어 모아 한 주먹씩 파는 아가씨. 식당과 가게 앞에서는 주인들이 직접 나와 열심히 손님을 부른다.


저렇게 팔아 얼마나 벌까 싶지만,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 자체가 아름답다. 남의 것을 탐하거나 거저 얻으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멕시코시티에서 12월 12일에 열리는 과달루페 성당의 성모 축일은 십만 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가톨릭 행사다. 전날과 당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현장에 다녀왔지만 그저 신심 깊은 사람들이 질서 있게 모여들 뿐, 위험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뒤 네이버를 열어보니 검색 알고리즘 때문인지 남미 여행 카페의 글이 떠 있었다. 과달루페 성모 축일에는 성당 부근이 매우 위험하고 소매치기가 들끓으니 얼씬도 하지 말라는 한인 민박집의 공지였다. 직접 현장을 보고 온 나로서는 헛웃음만 나오는 이야기였다.


에콰도르도 마찬가지였다. 오기 전에는 흉흉한 소문에 외교부 공지까지 겹쳐 무척 불안했고, 이 일정으로 예약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콰도르에서 보름을 지낸 지금, 역시 ‘가 봐야 안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수도 키토는 조금 달랐다.


키토의 해발고도는 2800미터. 도시 전체가 경사진 길로 이어져 있다. 잘 보존된 운치 있는 건물들이 언덕을 따라 늘어서 있다.


내가 묵은 올드타운의 숙소는 광장과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낮 동안 중심 광장에는 사람들이 제법 모이고, 방탄조끼를 입은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그나마 안심이 된다.


하지만 지방 도시들과 달리 노숙자나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들도 눈에 띄게 많다. 광장 앞 노천카페와 식당들은 대개 저녁 6시면 문을 닫는다. 해진 뒤 퇴근이 부담스러운 탓일까. 규모가 큰 식당에는 총을 든 자체 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키토 시내의 작은 가게들은 하나같이 철문을 굳게 잠근 채 영업을 한다. 철문 안쪽에서 돈을 받고 물건을 건넨다. 얼마나 많은 도둑과 강도를 겪었기에 이런 방식이 굳어졌을까.


키토 구시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역이다. 한 블록만 이동해도 우리나라 명동성당보다 큰 규모의 화려한 성당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성당 옆으로는 수도원 건물들이 길게 이어진다.


독립 광장 앞, 수도원 건물을 개조한 식당에 들어가 보았다. 천장화와 벽 장식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몇백 년 전, 이런 수도원들이 즐비했을 도시의 과거를 상상해 본다


에콰도르 키토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문화와 잉카 제국의 토착 문화가 융합된 성당과 수도원, 건축물들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잉카 제국의 제2 수도였던 이곳에 세워진 바로크 양식의 성당과 수도원은 토착 예술과 결합하며 독특한 건축미를 만들어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라 콤파니아 데 헤수스 성당은 ‘황금 성당’이라 불린다. 7톤의 금이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는 과장이겠지만, 얇게 펴 발린 순금만 계산해도 50킬로그램이 넘는다고 한다. 천장과 벽, 조각과 프레스코화를 덮은 황금 장식은 스페인 제국이 잉카의 금을 얼마나 쓸어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무어 양식과 바로크, 고딕과 토착 전통이 함께 어우러진 키토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손꼽힌다. 나는 녹색 유약을 바른 세라믹 돔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옥상 전망대가 인상 깊었다.


낮고 평평한 기와지붕이 이어지는 키토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풍경, 유럽과는 다른 옥색 무늬의 돔들이 지붕 위로 이어지는 모습, 수도원 건물 너머 야자수 아래 펼쳐진 광장을 바라보는 순간들. 그저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이토록 볼 것도 많고 아름다운 키토는, 그러나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위험 도시로 분류된다. 인터넷 검색과 구글 리뷰에는 불과 며칠 전, 심지어 하루 전 강도나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경험담이 넘쳐난다. 모든 호텔 문은 이중 잠금장치가 되어 있고, 벨을 누르거나 신원이 확인되어야 문이 열린다.

해가 지면 곧장 숙소로 돌아가고, 이동할 때는 큰길을 택하며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방심은 금물인 곳이었다.


키토의 케이블카 ‘텔레페리코’를 타면 단 십여 분 만에 해발 4000미터 고지에 오를 수 있다.

산등성이에 서 있는 '구름 아래 그네'에 앉아, 안데스 고봉들에 둘러싸인 인구 200만의 대도시를 내려다본다.

평화로웠던 과거의 키토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거리마다 우뚝 서 있는 성당들을 바라보며, 이곳에도 다시 평온이 깃들기를 묵묵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