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게임, 예술이 되어가는 시간
게임이라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묘한 경계선 위에 서 있다.
누군가는 게임을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 부르며 수조 원의 가치를 지닌 고부가가치 산업이라 치켜세운다. 실제로 국내에는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굵직한 게임 기업들이 즐비하고, 경제적 성과는 눈부시다.
하지만 숫자가 증명하는 화려한 성적표와는 별개로, 우리 사회가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미적지근하다. 산업으로서의 가치는 인정받을지언정, 하나의 문화나 예술로서 온전히 존중받기에는 어딘가 모자란 대접을 받는 듯하다. 돈은 잘 벌지만, 내 아이에게 권하기엔 꺼림칙한 존재. 혹은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소모적인 유희. 이 거대한 간극 사이에서 게임은 오늘도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고 있다.
브런치 키워드 모음을 살펴보았다. 그림, 웹툰은 존재하지만 게임은 별도의 카테고리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떤 카테고리에 이름을 올려야 할까? 캐릭터들이 나오니 그림·웹툰 쪽일까? 하지만 게임 속 캐릭터들은 정지된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 IT 기술의 집약체이니 IT 카테고리는 어떨까? 그럴법하지만, 게임은 단순한 기술 그 이상의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은 어떨까? 영화가 이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것에는 거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또한 영화의 범주에 속하니 문화·예술 영역에 무리 없이 흡수된다.
하지만 이 익숙한 카테고리를 요리조리 살펴봐도 [게임]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 모호한 위치가 지금 게임이 처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카테고리조차 없는 이 세계에서, 게임은 과연 예술의 영역에 닿을 수 있을까?
게임을 예술로 보는 쪽은 게임을 인물, 서사, 음악, 기술이 집약된 복합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반대로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보는 논거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게임은 기술의 집약체이자 철저히 계산된 상업적 상품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예술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또한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으로 접근해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예술은 아래와 같이 명시되어 있다.
예술(藝術):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생각해 보면 게임만큼 모든 예술이 융합된 장르도 드물다.
눈으로 보는 그래픽은 미술이고, 귀로 듣는 BGM은 음악이며, 그 안의 시나리오는 문학이다. 심지어 캐릭터의 공간을 구축하는 것은 건축과 같고, 움직임은 무용이나 연기와 닮아 있다. 이 모든 재료를 코딩이라는 그릇에 담아 비빔밥처럼 맛깔나게 비벼낸 종합예술이 바로 게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은 적어도 기술적 예술의 범주에는 충분히 들어간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 즉, 심미적(審美的) 예술의 영역에도 온전히 포함될 수 있을까? 이것은 지금까지 꾸준히 논쟁이 오가는 부분이긴 하다.
흥미롭게도, 우리의 인식보다 법의 발걸음이 조금 더 빨랐다. 대한민국 법률은 이미 게임을 예술의 범주 안에 품었다.
2022년 9월, 문화예술진흥법이 개정되면서 게임이 문화예술의 정의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정의) ①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및 뮤지컬 등 지적, 정신적, 심미적 감상과 의미의 소통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 또는 타인의 인상(印象), 견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수행한 창의적 표현활동과 그 결과물을 말한다.
물론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으며 게임을 심미적 예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게임이 예술인가?"라는 진부하고도 뻔한 질문을 곱씹으며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는 아직 내 안에서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양쪽의 시각이 공존하는 이유도 분명히 알 것 같다.
사실 과거의 게임은 예술이라 불리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아케이드 시절의 게임은 기술적 제약으로 인해 화려한 그래픽이나 깊은 서사를 담아내기 어려웠고,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놀이 문화로만 인식되었다.
하지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게임을 단순한 놀이 그 이상의 단계로 끌어올렸다. 정교해진 그래픽과 사운드 위에서 플레이어는 단순한 조작자가 아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게임과 다른 예술의 결정적인 차이, 상호작용이 빛을 발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위기를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작가가 만든 세계에 나의 경험이 더해져 비로소 완성되는 이 독특한 구조야말로 게임만이 가진 예술적 가치일 것이다.
기술은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매일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마주한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게임을 예술이다, 아니다의 이분법으로 명확히 재단하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게임은 현재 놀이를 넘어 예술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서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등장하고 혁신적인 시도들이 층층이 쌓여갈수록, 게임을 바라보는 대중의 스펙트럼 또한 자연스레 넓어질 것이다.
비록 내 안에서도 여전히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삶에 깊은 잔상을 남기고 세계를 확장시킨다면 그것을 예술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 또한 없지 않을까?
여전히 게임을 향한 시선은 어중간한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을 담아 게임을 예술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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